1990년대 초 대학원에 다닐 때의 일이다. 수업 중 교수님께서 “우리 사회는 대학에서 배운 것은 묻지를 않고 어느 대학을 다닌 것만 따지니 결국 고등학교 3년 성적으로 나머지 인생을 사는 셈이다. 우리끼리 우물 안에서 살 때는 몰라도 앞으로 글로벌 시대가 올 터인데 걱정이다.”라고 하셨다. 순간 무릎을 쳤다. “맞다. 취직하러 가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공부 잘했다면서 뽑아달라는 격이지. 중요한 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거지.” 그때부터 나는 누가 먼저 묻지 않는 한 어느 대학을 나왔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무슨 학과를 들어가서 무슨 공부를 했다고만 한다. 그 교수님은 또한 다음번 도래할 글로벌 경쟁 시대도 내다보셨었다.
이제 30여 년이 흐르니 또 다른 흐름이 다가오는 느낌이다. 그동안 글로벌 시대는 각국의 경계를 넘어 경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그를 통해 지구촌 전체의 발전을 가져왔으나, 그 과정에서 국내외적으로 획일화되고 서열화되는 현상도 수반하였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다음 시대는 이미 종종 회자되는 글로컬(Global+Local) 시대라고 본다. 바로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국제적이고 일류가 되는 세상이다. 왜 그런가?
글로벌 시대를 통해 세계는 물질적 토대를 강화하였고, 더불어 민주주의도 확산되었으며 개인의 권리와 자유도 신장되었다. 아울러 IT 기술의 발전으로 상상한 것을 실현시키는 수단까지 얻게 되었다. 이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세계의 고객들은 개성이 뚜렷한 자아의 소유자로서 다양한 소확행을 중시하는 소비 패턴을 보이는데, 기업은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적 수단까지 모두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하나의 요소는 바로 내용, 즉 콘텐츠이다. 서구 선진국들을 추종했던 글로벌 시대의 유행은 그들을 닮아가려는 것이었고, 이미 그것은 달성되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중심부 대도시는 거의 똑같고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 식상한 것이 아닌 독특한 소재가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로컬한 것은 신선하고, 창의성에 대한 영감을 주며, 또 재미있다. 그것은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재료일 뿐 아니라 여러 산업을 파생시키는 허브가 된다. ‘오징어 게임’과 ‘기생충’의 문화 코드가 그런 것이다. 요즘, 외국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가족과 한식 체험을 하는 것이 유행이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패러디한 ‘관짝춤’으로 유명한 충북 충주시의 유튜브 채널, 최초로 전국노래자랑 본선에 참여하여 인기를 누리는 전북 진안군의 마스코트 빠망(빨간 망아지) 등 그런 사례는 늘어만 갈 것이다.
이미 남들이 모두 원하는 전통적인 그러나 뻔한 것을 목표로 치열한 경쟁을 뚫어 쟁취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아직도 이과에서는 의사와 문과에서는 변호사가 인기지만, 사양산업의 막차일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의료지식과 임상자료를 엄청난 속도로 학습하는 AI 의사를 더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미 국가기관 등에서는 과거 5급 사무관으로 특채하던 변호사를 6급, 심지어는 7급으로도 뽑아 가치는 하락하는데 오히려 지원자는 늘고 있다.
경남대학교 학생들은 글로컬 시대의 입지적 장점을 선점한 유리함을 가지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여, 자신의 특색과 개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능력을 특화 개발하면서 학창 시절을 즐기기 바란다. 필자가 예전 교수님 말씀을 인용했듯이 훗날 누군가가 오늘 필자의 얘기를 기억해 주기를 기대한다.
최영준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전 통일부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