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다. 마스크도 점점 벗는 추세에 있어 이 봄은 어느 해보다 반갑다.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는 기분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와 우·러 전쟁의 여파 속에서 길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개인적으로도 코로나 유행과 함께 어려워 졌다가 다시 재도약의 시간을 갖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일하고 있는 인천 송도의 바이오기업 연구소 창밖으로도 봄이 오고 있다. 월영동 449번지.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이 넘었는데도 번지수는 잊어지지 않는다. 교정의 벚꽃들도 조금 있으면 피겠지. 스무 살 신입생 시절의 그 환한 봄이 떠오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신문기자로, 공무원으로 서울 벤처 기업 대표로 20년을 보냈고 아이 둘을 키웠다. 크게 벌인 화학 사업은 부도를 맞았고 묘지 관리인 어시장 잡부 등을 전전했다. 그 뒤 여유가 생기고 해서 은퇴를 선언했는데, 다시 코로나가 찾아왔다. 주식도 반 토막, 빌려준 돈도 떼였다. 그리고 다시 취직. 마산 집을 떠나 인천에 홀로 와서 일하니, 우울증도 사라졌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대학교 4학년 때 문단에 등단, 시집 여섯 권을 냈다. 아이들은 다 컸고 제 진로를 잡아 집을 떠난다. 돌아보니, 이러한 모든 일들이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듯하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라는 말은 인생이 다 그렇지 않음을 품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쉽게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아야 한다. 길을 벗어나면 새 길이 당도해 있다.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교정의 벚나무가 꽃봉오리를 맺고 있지 않은가. 은퇴를 준비해야 할 나이에 다시 취업해서 직장을 다닌다. 이 직장이 내게 온 건 실패의 경험 때문이다. 그러니. 경험해야 한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실패한 당신, 좌절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곳도 있다. 공부하고 실력을 쌓아야 한다.
사회에 나가 직장에 들어가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나 직장은 교육기관이 아니라는 걸 사회에 나가자마자 깨달았다. 세상은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다. 그러나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내 삶이 왜 순탄해야 하는가. 왜 인생에 굴욕과 수치와 모욕이 없어야 하는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업무를 본다. 돌아보면 많은 기쁨과 영광과 보람도 있었다. 커가는 아이를 보는 즐거움, 사회 선배들과 후배들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낭만, 사랑과 실연의 아련한 맛, 이 모든 게 삶에 있었다.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움직임이다. 움직 이고 움직이자. 월영지 위 광장의 산수유가 피었겠다. 벚꽃도 곧 필 것이다. 새 신을 신고 폴짝, 뛰어보자. 봄이 왔다. 대학 시절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성윤석(졸업 동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