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논단] 굿바이! 월영 캠퍼스, 아듀! 그 속에서 보낸 32년의 세월
[교수 논단] 굿바이! 월영 캠퍼스, 아듀! 그 속에서 보낸 32년의 세월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12.0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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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끝이 있어 과정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 32년 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이 시점에서 그 시절을 회고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간 너무 많은 것이, 무엇보다 나 자신도 많이 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5년의 유학 시절을 마치고 2년여의 강사 생활을 거쳐서 경남대 정외과 전임강사로 발을 내디디었다. 당시 학과에는 7명의 교수가 재직했었고, 나는 막내 교수로 마산 생활을 시작했다. 선배 교수가 학교 근처에 소개해 준 조그만 빌라 건물에 고불고불한 골목길을 거쳐 당도했을 때, 아내의 인상이 좋았던 것 같지는 않았다. 하여간 2층 좁은 집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의 소리가 스테레오로 들리는 환경에서 즐겁게 지냈던 것 같은데, 아마 이 대목에서 식구들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3개월 남짓 살다 창원으로 이사 간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당시 경남대 그리고 정치외교학과의 위상은 그런대로 좋았던 것 같다. 서울의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꽤 규모가 큰 국제학술행사도 자주 주관했었고, 북한 통일 문제에 관한 한 아직도 그렇지만, 명성이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1989년 10월에 극동문제연구소가 주최했던, ‘전환기의 세계와 마르크스주의(Marxism in the New Global Society)’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시 강사의 신분으로 월러스틴의 논문 “현대 세계체제에 있어서 마르크스, 마르크스-레닌주의 및 사회주의의 경험”이라는 논문 번역에 참여했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했던 왈러스틴의 특이한 세계체제론은 흥미로웠다. 왈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냉전 시대의 이데올로기 대결 구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자본주의 체제만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조우는 우리 대학 사회학과 이수훈 교수의 소개로 왈러스틴의 『자유주의 이후』를 1996년에 당대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사실 내용의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약 1만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또 2003년에는 나의 저서인 『한국 민주화의 비판적 탐색』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책에서 한국의 민주적 정부들이 집권 이후 자가당착적인 (개혁) 정책을 수행하면서 민주화의 방향과 내용이 변질되었으며, 특히 민주 정부와의 관계에서 시민사회의 모순적이고 지지부진한 행태는 미래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으로 보았다.

  내가 교수직을 시작했을 당시는 교수의 논문발표에 대해서도 대학 본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했주었던 것 같다. 1995년 8월-9월 시카고에서 개최되었던 미국정치학회 연례 회의에서 ‘김영삼 정부하에서 진행된 민주화의 문제점, 특히 국가-시민사회관계에서의 비정상성’에 대해서 발표했고(“The Democratic Transition under Kim Young Sam Government in South Korea: Some Abnormalities in State-Society Relationship”), 1999년 8월에는 파리에서 열렸던 국제학술대회에서 ‘김영삼정부의 세계화정책과 한국 민주화와의 긴장관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Democratization and Globalization: Limits and Implications of Globalization Policy under Kim Young Sam Government in Korea”). 그리고 2004년 3월에 캐나다 몬트레올에서 개최되었던 학회에서는 남한에서 진행되는 민주화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Political Opening and Democratiz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Domestic Changes and Inter-Korean Relations”)을 발표했다.

  이 당시에는 우리 대학과 다른 대학이나 기관과의 유대 관계도 좋았던 것 같다. 일본 카나카와대학과 우리 대학 법정대학과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발전되어 왔었다. 2002년 봄 무렵 요코하마 카나카와 대학에서 양 대학 교수들이 참여하는 학술 대회가 있었고, 하코네인지 닛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하여간 그곳에 있는 카나카와 대학 연수원에서 특별 요리에다 사케를 곁들인 새벽까지의 화기애애한 대화와 분위기는 지금도 따듯하게 남아있다.

  시기는 다소 그 이전이지만(1999년 여름) 중앙일보와 공동 기획한 프로젝트에의 참여는 당시 주니어 교수였던 나로서는 커다란 행운이자 의미가 있었다고 추억된다. 중앙일보가 밀레니엄 기획의 일환으로 우리 대학과 공동 기획한 ‘세기를 넘어: 대결에서 대안으로’ 프로젝트 중에서 ‘투쟁 복음주의’를 외쳤던 중남미의 해방신학의 흐름을 추적하고자 당시 중앙일보 기자 유권하 선생과 10일 넘는 기간 동안 쿠바, 멕시코,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등지를 순례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특히 그 당시 몇 년 전에 볼리비아에서 운구된 체 게바라의 시신이 보존된 산타클라라를 방문하면서 여러 가지 형언하기 어려운 감회를 느꼈다. 쿠바 혁명 초기 산업부 장관이었던 던 체 게바라는 갑작스레 볼리비아로 향했다. 상품이 아니라 ‘혁명’을 수출한다는 체 게바라의 언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었다. 얼마 후 그는 결국 볼리비아에서 게릴라전 중에 사살되었다.

  나는 경남대 교수 생활을 하기 전 강사 시절부터 중남미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1990년에 편저인 『자본주의 체제하의 사회변혁운동: 칠레혁명과 아옌데 노선연구』를 친구출판사에서, 1993년에 『포위된 혁명: 니카라과혁명 10년사의 현대적 조명』을 나라사랑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필자가 중미의 소국인 니카라과에 관심을 가진 데는, 석사 시절 만났던 오하이오 대학의 니카라과 전문가 토마스 워커(Thomas W. Walker) 교수 덕분이었다. 당시 농장도 하던 워커 교수는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서는 자기 농장에서 키우던 닭의 계란 꾸러미도 몇 차례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쿠바에 대한 관심으로, 2002년에는 피델 카스트로의 주요 연설문을 번역 출간하고(『들어라! 양키들아: 카스트로 연설모음집』, 산지니출판사), 2010년에는 프레시안 북에서 『카스트로: 아바나 선언』을 번역했다.

  30여 년을 보낸 경남대 시절 중에 그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나의 ‘회심’ 사건이다. 지기들이 다소 의아해하기도 하고 나 자신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기독교로의 ‘전향’은 앞으로도 내가 풀어내고 발전시켜가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 낭인 시절 번역한 『마르크시즘과 기독교』(한울출판사)가 내 생애 첫 번역이었던 것을 보면, 진보사상에 대한 관심에서 기독교로의 전회가 마치 각본처럼 예정되었던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정말 오래된(1989년 출간된) 이 책의 서문에서 “예수나 마르크스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표현 양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인간 사이의 사랑과 여기에 근거한 진정한 공동체의 구현이 아니었던가”라고 술회했다. 한국 사회가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어느 정도 성취하고도 악화일로의 여러 차원의 ‘양극화’의 늪으로 빠져드는 현실에 실망하면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도 확신하지 못한 채 ‘배’를 갈아탔다고 나는 썼다.(호밀밭출판사 발간, 『성경동행: 구약편, 신약편』) 그리고 한국 사회, 무엇보다 대학, 법원, 교회에 만연한 부패와 갈등의 구조들에 대한 환멸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과 진정한 복음의 실천이라는 시각에서 『세상속 복음의 향기』를 다시 호밀밭출판사에서 출간했다.

  그러나 정년을 앞두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도 좀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오랫동안 배링턴 무어(Barrington Moore Jr.)의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을 금과옥조처럼 참고해왔다. 현재 한울출판사와 얘기가 되어 정년 전에 마무리하려 했으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몇 년째 공을 들이고 있는 개인적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전 지구로 걸어서 연결된 이래, 어떤 부류는 다른 인간을 정복하기 위해, 또 어떤 이들은 진리를 구하거나 또 전하기 위해 타클라칸 산맥과 토러스 산맥을 넘었다. 달마는 동쪽으로. 사도 바울은 서쪽으로. 이렇게 인간들이 동족을 정복하고 억압하기 위해, 또 다른 한켠에서는 구도와 구법을 위해 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가제 “길 위의 세상: 구도의 길의 복원을 위하여.”

  지나고 보니 젊은 날의 열정은 보이나 치기도 곁들여 보이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럭저럭 걸어왔던 노정 속에 무엇이 진정 의미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아 보인다. 한 시절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 하기도 쑥스럽다.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야 할 길이 저 앞에 보인다. 선배, 친구, 후배, 제자들과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굿바이! 월영 캠퍼스, 아듀! 경남대 시절, 그리고 그 속에 파묻힌 32년의 세월...

강문구(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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