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문 속 오피니언을 읽으며,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라고 말하던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난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을까. 요즘 우리는 옛날이야기보다는 유튜브를 보는 일에 몰두한다. 아이들도 이제는 옛날이야기를 요구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더불어 동화책을 읽어달라며 부모님의 침대에 책을 들고 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전에 책보다 더 흥미로운 유튜브를 보면 되니 말이다.
나는 고고(高古)한 이야기보다, 고고(考古)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천천히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의자왕에게도 딸
이 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최근에 알았다. 요즘 세태는 옛날이야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이들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을까. 기억의 편린을 찾으면서 내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 내 표정을 보면서 더 재밌게 말씀을 하셨던 것 같다. 돌아보면 그렇다. 나는 가족을 잘 모른다. 어렴풋이 아는 것이다. 아마 요즘의 아이들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할것이다. “아버지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어요?”라는 질문을 꺼내면 어른들은 대답한다. 과거에 이 대학을 나왔고 취직 또는 사업을 했었고. 이야기가 아닌 이력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세상에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도 많아져 옛날이야기는 희미해지는 요즘, 사람들은 옛날을 말하면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력을 읊는다. 나는 미래의 자식에게, “아버지는 옛날에 어떤 사람이었어요?”라는 질문의 대답을 상상한다.
유튜브조차도 10분 내외의 짧고 명쾌한 이야기가 가치가 높고, 고고하게 평가받는 요즘, 또 다른 고고한 이야기들을 기다리고 생각한다. 우리가 짧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에 우리는 서서히 구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잘 써도, 누군가에게 들려줄 아름다운 옛날이야기들을 준비하지 못하는 청춘에 살고 있다. 도시에는 별이 너무 적어서 자신의 이력을 아이에게 읊어준다는 변명을 지닐 것이다. 내 삶에 대한 표현의 시도를 멈추지 말라. 이력서에 한 줄을 추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에게 들려줄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 또한 필요하다. 마치 자신을 우상화하듯이, 삶을 재밌게 들려주는 연습도 필요하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저는 별을 바라보며 자랐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떠한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 해주세요.”라고 나의 손자, 손녀가 질문할 때를 대비하여 매일매일 살면서 순간을 기억하자. “에이 재미없어요. 유튜브나 볼래요.”라고 말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이경열(경영정보학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