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정든 땅 언덕 위에’서
[정일근의 발밤발밤] ‘정든 땅 언덕 위에’서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10.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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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합포구에 주소를 두고 산 지 1년 반이 넘었습니다. 창동과 인접한 중성동에 거처를 마련했었습니다. 창동이든 중성동이든 다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오동동에 속해 있습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중성동에 살면서 이름 그대로 중성(中城)을 가운데 두고 동성, 서성, 남성, 북성동이란 이름의 법정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성동은 옛 마산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축조된 성(城)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중성동은 마산의 지명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성이 동서남북으로 나눠진 땅의 가운데라면, 중앙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중성동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연로한 선배를 뵌 적이 있는데, 중성동이 마산의 사대문 한가운데 자리한 중앙이라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성동은 일본말로 마산의 ‘혼마치(本町)’인 셈이었습니다.

  ‘오동서16길’이 제가 사는 도로명 주소이자 제가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창동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갈 때, ‘3.15대로’를 지나면 그 초입이 나옵니다. 약간의 경사를 가진 언덕길 따라 양옆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길은 북마산가구거리 앞을 지나가는 ‘북성로’와 이어집니다. 저는 이 동네의 이름을 ‘정든 땅 언덕 위에’라는 유행가 가사 구절을 찾아 붙였습니다.

  제가 이곳에 더욱 마음 주게 된 것은 금목서 때문이었습니다. 금목서는 가을에 등황색 꽃과 살구 냄새가 나는 그윽한 향기가 매력적인 물푸레나뭇과 나무입니다. 지난해 가을, 집으로 돌아오다 금목서 향기에 취해 찾아보니 오동서16길에 모두 7그루의 금목서가 자라고 있는 사실을 알고 제가 사는 우거의 당호를 ‘목서헌’(木犀軒)으로 정했습니다.

  오동서16길이 제 인생의 마지막 주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든 땅 언덕 위, 목서헌에서 편안하게 지낼 줄 알았습니다. 북마산에서 불고 있던 도시 재개발 바람이 오동서16길 일대에까지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광풍(狂風)과 같았습니다. 결론은 내년 상반기에 이사를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제 삶이 아직 끝나지 않는 역마살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시 재개발은 제가 싫다고 반대할 수 없었습니다. ‘신도시·신시가지 위주의 도시 확장에 따라 나타나는 기존 시가지 노후 쇠락으로 발생하는 도심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한 개발’입니다. 또한 ‘침체한 도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하여 새로운 기능을 도입하고 창출함으로써 물리 환경적, 산업 경제적, 사회 문화적으로 재활성화 또는 부흥시키는’ 일입니다.

  같은 동네라고 하지만 하루빨리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계속 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계속 살고 싶은 사람까지 밀어내고, 무슨 재활성화와 부흥을 볼 것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벌써 7그루 금목서 중 3그루가 머리 치고 가지 친 난쟁이 모습으로 옮겨졌습니다. 그 금목서들이 힘겹게 꽃을 단 모습을 보며 저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여기 잠시 사는 이곳, 정든 땅 언덕 위를.

석좌교수, 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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