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열정의 수난
[내 인생의 책] 열정의 수난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06.0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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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한강 저
『채식주의자』, 한강 저

  요즘 ‘비건(vegan)’이라는 말이 주목받고 있다. 비건은 식물성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철저하고 완전한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비건의 특성은 단순히 건강을 위한 채식이 아니라 생명, 환경, 철학적인 면에서 독특한 지향을 보인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부터 육식을 거부하며 채식주의자가 된다. 그녀의 선택은 고기를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가족들의 생각과 부딪친다. 아내의 생각을 외면하는 남편, 딸의 입을 억지로 벌려 육식을 박아 넣는 아버지, 고기를 갈아 환약으로 만들어 딸의 눈을 속여서 먹이려는 엄마... 그들은 완강하게 육식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폭력을 행하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소설 내용은 채식주의자가 동물성에 저항하면서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2016년 7월에 이 책을 읽었다. 그 해에 한강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비평가들은 이 책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나도 공부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채식주의라는 문화 현상을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너무 강렬한 문장과 충격적인 장면들이 독화살로 내 눈을 쏘는 것 같았다. 알몸에 그려지는 꽃과 잎사귀와 푸른 줄기들의 상상, 나무가 되기 위해 숲으로 도망쳐 물구나무를 서는 행동 등은 상상을 초월한 환상이었고 신화적 숭고함이었다. 그리고 문장과 사상은 잔인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친 거니, 너 정말 미친 거야.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이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그 질문을, 그녀는 처음으로 영혜에게 던진다.

  언니가 영혜에게 던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두 미쳤다고 몰아간 동생에게 ‘너 정말 미친 거야.’라고 묻는 말이 바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내 의식의 껍질이 한 겹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이 소설 한 편으로 그동안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폭력에 대해 눈뜨게 되었고, 우리 사회의 통념과 관습이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권에 얼마나 심각한 억압과 폭력을 가했는지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소수자들이 거대한 편견에 의해 얼마나 짓밟히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노성미(국어교육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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