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시 부문 당선작 '수보보다(свобо́да)'
제3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시 부문 당선작 '수보보다(свобо́да)'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05.30 15: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 부문 당선: 송우영(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3)

 

수보보다(свобо́да)1)

 

앞집 부스러기가 굴러다니고
아이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내려

거리 여기저기 흑연이 묻어나서
잠든 사람들을 모두 하얗게 지워두고

아빠는 손을 잡으며 눈을 감으라 했다
눈을 감지 않아도 무채색인데

저기 저 지하는 들쥐 같은
회색, 사람들이 모여 있어. 여기 있으면 괜찮을 거야.

어디가 아빠
잿빛같이 나를 남겨두고

무서워 아빠 
모든 게 흐려져서 그림자가 될 것 같아

아니야 총소리나 비명소리 폭발음
따위를 말하는 게 까매져 가는 우리 거리 이야기야

사실 이건 무게에 대한 이야기란다.
작고, 무력하고, 고결하고, 갈망하는 이야기.

얼마나 어두운지는 중요하지 않아.
다만 밤이 가볍다면, 우린 그 무게를 더해야 한단다.

무거워진다면 색을 칠할 수 있어. 우린,
사이가 칠흑 같아도 네가 색깔을 머금길 바란단다.

결국, 삶은 죽음을 이기고,
빛이 어둠을 이길 테니까.2)

어디가 아빠는
흑백사진 같은 자유는 붉은색이라고 했다

무서워 아빠는
검붉게 떨어지잖아 내 삶만 이겨버리고

수보보다(свобо́да) 수보보다(свобо́да)
창백했던 세상에 핏기가 돌고 있었다

 


1) 우크라이나어로 ‘자유’를 뜻하는 단어.
2) 우크라이나 대통령 블로디미르 젤렌스키의 유럽연합(EU) 특별 회의 화상 연설 중 "삶은 죽음을 이길 것이고, 빛은 어둠을 이길 것입니다.(life will win over death and light will win over darkness)"를 발췌.

 

 

제3회 3·15청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40년 넘게 대학에 재직하는 동안 대학생들의 현상작품공모를 맡아본 경력이 수십 년이다. 심사평도 얼마나 많이 썼던지 그 횟수도 헤아릴 수 없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응모작품을 읽는 일은 언제나 신선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늘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그들이지만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그들의 일상과 사고, 관심, 방향성, 가치관 따위를 직접 경험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멋진 기회이기 때문이다. 무릇 세상은 언제나 청년들의 전위적 사상과 행동으로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렸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박진감, 적극성, 역동성, 미래지향성 따위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청년문학상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 예외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반독재 민주화를 실천하려 했던 3·15정신의 계승과 관련된 그 어떤 실감이 확인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어가는 순간 심사자의 마음은 줄곧 어둡고 침울했다. 3·15와 관련된 어떤 실감도 예증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시 작품들이 바탕에 깔고 있는 기본은 요설(饒舌), 냉소(冷笑), 무감각(無感覺), 무방향(無方向), 무전망(無展望) 등이었고, 청춘의 열정이나 포부, 건강성이 느껴지는 정치감각, 현실의식 따위가 발견되지 않았다. 심사자의 기대가 너무 컸던 지도 모르겠다. 이런 작품들만 대면하게 된 것은 사실상 시인들의 책임이 크다. 청년 독자들이 그들이 삶을 독자적으로 힘겹게 펼쳐가는 일에 시가 하나의 힘과 격려, 혹은 위로의 도우미 구실이 되었어야 하는데 문단 현실이 늘상 지리멸렬했고, 예나 제나 예술성이란 이름의 시적 몽롱과 언희(言戱)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학을 지망하는 청년들이 보고 배울 마땅한 대상이 없었던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심사자는 어렵게 한 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골랐다. 하지만 거기에도 많은 주저와 고민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은 「수보보다(свобо́да)」. 이 말은 우크라이나어로 ‘자유’를 뜻하는 단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구시대적 전쟁논리를 정당성으로 내세우며 세계를 다시 전쟁과 혼돈의 분위기로 휘몰아 넣고 있는 러시아와 푸틴의 폭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 시는 전쟁이 빚어내는 전형적 특징이자 현상인 파괴, 살상, 이산, 유린, 피란의 반인간적 잔혹성에 대한 근원적 비판에서 출발한다. 마지막 결구인 ‘창백한 세상에 핏기가 돌고 있었다’라는 단 한 줄이 이 작품 전체를 구원하고 있다. 시의 원리는 바로 이러한 구원의 통로를 필연적으로 끼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응모자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독백」, 「면담」 등의 전개방식에는 전혀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당선작과 비교해볼 때 수준의 굴곡과 편차가 심하게 느껴진다. 시는 요설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명심해야겠다. 이런 점은 가작으로 선정된 「방과 후」의 제출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적성, 방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는 생각처럼 손쉽게 성취되는 가벼운 세계가 결코 아니다. 모든 응모자들은 한국현대시문학사를 19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작품 중심으로 정독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는 공부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3·15문학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멋진 작품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은 부득이 다음해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 위원: 이동순(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아... 2022-08-01 15:18:14
심사평 상태가...? 이런 평가라면 그냥 올해 시부문 당선은 없는게 나았을거 같네요...마지못해 뽑으신거 같아요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 대표전화 : (055)249-2929, 249-2945
  • 팩스 : 0505-999-211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은상
  • 명칭 : 경남대학보사
  • 제호 : 경남대학보
  • 발행일 : 1957-03-20
  • 발행인 : 박재규
  • 편집인 : 박재규
  • 경남대학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2022 경남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