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할 수 있는 인사'
제3회 3·15청년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할 수 있는 인사'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05.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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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문 당선: 이현경(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3)

 

할 수 있는 인사

 

  이제는 쓸 수 없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종량제 봉투에 차곡차곡 넣었다. 동네를 떠나야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적부터 나를 봐서 이제는 가면 알아서 접수를 해주는 소아과가 있고, 가족끼리 밥을 먹으러 가면 음료수 정도는 그냥 주는 고기집이 있는 곳이다. 어쩌면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여기서 계속 살지 않을까, 이 동네에서 계속 살다가 이 동네에서 죽을 수 있지 않을까 은연중에 생각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친구는 한 번도 안 떠나는 게 오히려 특이하지 않냐고 물었다. 하긴 가족이 다 같이 이사를 간 친구들도 있었고, 나처럼 독립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이사를 간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의 말대로 한 번쯤은 동네를 떠나서 살아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웬만하면 계속 이 동네에서 살고 싶었다. 이곳이 엄청나게 좋다기보다는 당연한 거였다.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이미 이곳은 내 삶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취업한 회사가 집에서 너무 멀었다. 하루에 5시간 정도를 지하철과 버스에서 보낼 자신은 없었다.
  책장은 정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볼 일 없는 문제집이나 오래돼서 표지가 누렇게 변해버린 책들만 버린 것 같은데도 10L짜리 종량제 봉투가 가득 찼다. 아직 서랍장이나 옷장은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이렇게 많은 걸 안고 살았나. 서랍장 정도면 5L짜리 봉투 하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이것들은 또 언제 정리하지, 한숨을 내쉬며 서랍장을 열었다. 어디에 쓰는 건지 모르겠는 케이블들과 쓰기에는 여백이 애매하게 남아버린 공책들, 손에 꼽을 정도로 사용한 물감들 등 언제 이렇게 쌓였는지도 모르겠는 것들이 많았다. 엄마, 쓰레기봉투 더 있지? 나의 물음에 엄마는 5L짜리 봉투를 하나 건넸다. 분명 일 년에 한 번 정도씩은 정리했던 것 같은데 뭐가 이렇게 많은 걸까. 나는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봉투에 담긴 물건들을 손으로 누르며 말했다. 몇 년을 살았는데, 그 정도도 안 나오겠니. 엄마의 대답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 이곳에 왔으니까 20년 가까이 살았다. 20년이면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니까 이정도 쓰레기는 별 거 아닐지도 몰랐다. 그리고 네가 물건을 잘 못 버리잖아. 어쩌면 엄마가 유독 잘 버리는 사람일 수도 있지. 엄마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뭘 버린다고만 하면 울었던 게 생각났다. 서랍장 마지막 칸에는 클리어파일이 있었다. 책처럼 생겨서 안에 비닐로 된 속지가 여러 장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나 티켓, 상장 등 남겨두고 싶은 것들 중에서 종이로 된 것들은 전부 이 파일에 모아놓았다. 가끔은 의미 불명의 낙서나 친구와 나누었던 쪽지 같은 것들도 함께 끼워져 있는 걸 보고 엄마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음을 속으로 인정했다. 나는 속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 파일을 자취방에 가져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듯이 한숨 섞인 말투로 필요한 것만 가져가라고 하겠지만, 파일 하나 정도는 7평정도 되는 원룸에도 놓아둘 곳이 분명 있을 것이다. 40장정도 되는 속지의 맨 마지막 장에는 영화포스터가 있었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었을 무렵에 이 영화를 혼자 보러 갔었다.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바람이 차서 봄이라기에는 일렀다. 고등학교 졸업식은 이미 해버려서 더 이상 학교를 나가지 않아도 됐다. 나이로는 성인이었으나 갈 곳이 없었다. 잔류물 같은 시간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던 나는 월요일 아침 10시에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관에는 나를 포함해서 5명 정도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왔을까. 영화는 살면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코미디영화였다. 평범한 주인공이 운 나쁘게 크나큰 음모에 엮이지만,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해나간다는 그런 뻔한 스토리. 영화는 엄청나게 재밌지도,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돈이 아까울 정도는 아니라서 시간을 때우기에는 적당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람들은 상영관에 불이 켜지자마자 자리에서 나갔다. 나는 영화 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영화 크레딧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청소를 하려고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코미디영화를 보고 우는 사람이라니. 어디 드라마에서나 애인한테 차여 병나발을 불며 우는, 그런 캐릭터로 나올 법한 거 아닌가. 하지만 좋아하는 배우의 유작이었다. 배우가 죽은 지 일 년 정도가 지난 뒤에야 나온 작품이었지만. 나는 배우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까 영화라든지 드라마라든지 라디오라든지 그 배우가 나오는 새로운 무언가는 더 이상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볼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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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배우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에 죽었다. 수능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서 한창 정신이 없을 때였다. 엄마가 드라마를 볼 때, 옆에서 같이 보다가 알게 된 배우였는데 적당하게 낮은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 배우가 출연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전부 챙겨본다거나 시사회를 가지는 않았지만, 배우가 진행하던 라디오를 열심히 챙겨들었다. 목소리가 좋아서 그런지 심야 시간대에 방송을 했기에 학원을 갔다가 집에 오면 라디오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숙제를 하거나 잘 준비를 하는 게 수험생활의 몇 안 되는 낙 중 하나였다. 어디 가서 그 배우의 팬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했지만, 라디오에 사연도 여러 번 보내보고 배우가 녹음했다는 오디오북을 사서 듣기도 했었다.
  배우의 사망기사가 뜬 날은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다. 인기가 꽤 있었기에 아이들은 죽었다는 소식에 놀라며 어떻게 된 일인지 떠들어댔다. 하지만 시험 때문에 얘기가 얼마 가지는 못했다. 나는 조용히 영어단어를 외우려고 했다. 어제까지 라디오를 진행했는데, 당장 핸드폰을 켜서 검색창에 배우이름을 치면 웃는 모습, 우는 모습, 화내는 모습까지 볼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죽었다는 게 이상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연예인은 원래 만나기 어려운 존재고, 원래 기사나 방송으로 접하는 게 다이지 않나. 그러니까 살아있는 모습이 그렇게나 많이 존재하는데, 당장 내 핸드폰을 켜서 오디오북을 틀어도 그 배우가 책을 읽어주기까지 하는데 죽었다는 건 역시 이상했다.  
  시험은 망쳤다. 옳지 않은 답을 고르라는 문제에 옳은 답을 고르기도 했고, 답이라고 생각한 번호와는 아예 다른 번호에 마킹을 한 것도 있었다. 시험이 끝났으니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에게는 피곤해서 집에 갈 거라고 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번 시험이 생각보다 어려웠다느니, 문제 자체가 이상하다느니 떠들던 아이들이 빠져나간 교실은 어쩐지 제 역할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얘기소리마저도 멎을 때까지 자리에 앉아 오늘 뜬 사망기사를 전부 읽었다. 기사가 끝나는 부분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소속사측에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팬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조문장소를 마련했다.’

  마지막,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미 배우는 죽었다고 하면서 인사라니. 나는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 항상 핸드폰으로, TV으로, 컴퓨터로만 봤다. 그런데 마지막 인사라는 게 말이 되는 걸까. 기사의 끝 부분에는 장례식장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서울 S병원 장례식장. 학교에서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교가 일찍 끝난 날은 거리가 평소보다 조용해서 그런지 세상이 서서히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날이 가장 좋았고,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참 파랬다. 나는 학교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장례식장에 가면 그 많은 사망기사들이 사실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늘 잠에서 깬 것부터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벤치에 앉아 팔을 꼬집어봤다. 아팠다. 어쩌면 배우가 죽은 척을 하는 거일 수도 있지 않나. 죽은 척 하고 아예 새로운 삶을 사는 거지. 이것도 딱히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점에서 죽은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장례식장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한테는 절을 두 번 해야 한다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가 죽었다면, 그런 거라면 마지막 인사로 절 두 번은 너무 짧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를 세 대 정도 떠나보냈다. 수연이. 다음 버스가 5분 정도 남았을 때쯤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다. 윤선생님이 팔을 크게 흔들며 정류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윤선생님은 우리 학교의 논술 선생님이었다. 내가 1,2학년일 때까지는 국어선생님이었는데 3학년이 되자 갑자기 논술을 담당했다. 윤선생님 본인이 말하기로는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아서 말만 논술이고, 실제는 자습시간인 과목을 담당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닌 게 몇몇 아이들은 월요일 일교시가 논술 수업이라는 것조차 가끔 까먹곤 했다. 너네 수업하자고 하면 귀찮아 할 거잖아. 수업 첫날, 윤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소리 내어 웃으면서도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고3에게는 기대도 안 했다고 말하면서도 윤선생님은 입시논술에 도움이 될 거라며 신문기사를 뽑아 와서 나눠주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사를 받자마자 문제집 아래에 깔아놓거나 책상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윤선생님은 읽는 척이라도 하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처럼 기사를 강제로 읽게 한다거나 감상문을 쓰라고 하지는 않았다. 기사를 안 읽는다고 해서 아이들이 윤선생님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윤선생님은 인기가 꽤 좋은 편이었다. 윤선생님은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학교에서 키가 큰 편에 속했고, 마르기까지 했다. 게다가 다른 나이든 남자선생님들과는 달리 항상 셔츠에다가 넥타이를 매고 정장바지까지 입고 와서 모델 같았다. 젊었을 때는 우리학교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었다는 다른 선생님들의 말이 크게 놀랍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윤선생님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교복을 입든, 체육복을 입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고3들은 공부나 하라고 하면서도 유독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다고 아우성치는 날이면 옛날에 학교에서 선배들이 고기를 구워먹다가 걸린 얘기, 교장선생님이 과학 선생님이었던 시절에 있었던 일 같은 옛날이야기들을 곧잘 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 이야기였지만, 그때의 우리는 공부만 아니면 무엇이든 좋다는 생각이었기에 동화를 듣는 유치원생들처럼 잔뜩 상기된 채로 윤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1,2학년 때 윤선생님이 담임을 맡았던 반이었거나 국어수업을 들어봤던 아이들 중에서는 윤선생님을 쫓아다니다시피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으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윤선생님이 담임이었던 적도, 윤선생님의 국어수업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우리가 자습을 하는 동안 긴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던 윤선생님을 보며 그 나잇대 사람 같지 않게 정갈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윤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시험 끝났다고 놀러가는 거냐?”
  나는 이 말을 해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아뇨, 장례식장에 가려고요.”
  나의 대답에 윤선생님의 입꼬리가 빠르게 내려갔다. 그 모습이 왠지 웃기다고 생각했지만, 웃지는 않았다. 윤선생님은 별다른 말없이 자신의 턱을 쓸어댔다.
  “가족 중에 누가 돌아가신 거니?”
  윤선생님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아이를 달래듯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아뇨, 배우요.”
  윤선생님도 기사를 본 건지, 아니면 가족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으나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버스기사는 벤치에 앉아있는 나와 윤선생님을 무심하게 쳐다봤다. 큰 소리를 내며 버스 문이 빠르게 열렸다가 닫혔고, 문이 제대로 닫히기도 전에 버스는 떠났다. 멀어져가는 버스의 번호판을 보며 나는 말했다.
  “실은 저 버스를 탔어야 했어요.”
  윤선생님이 움직이는 건지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버스는 이제 모퉁이를 지나 나의 시야에서 아예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가고 싶니?”
  나는 고개를 돌려 윤선생님을 바라봤다. 윤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어린 아이 한 명이 앉을 정도의 간격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윤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본 건 처음이었다. 나이에 비해 어려보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눈가에 주름이 꽤 많았다. 그래도 어울렸다. 평소 윤선생님이 웃는 모양대로 주름이 나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주름의 개수를 다 셀 사람처럼 윤선생님의 눈가만 보았고, 윤선생님은 나에게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시간이 그리 오래 흐르지는 않았으나 다른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잘 모르겠어요.”
  장례식장에 갔는데 그가 죽은 게 사실이라면 나는 두 번 절을 하고 나올 수 있을까. 윤선생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밥은 먹었니?”
  내가 고개를 젓자 윤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사거리에 설렁탕집 맛있는 곳 있어.”
  윤선생님은 턱으로 사거리 쪽을 가리켰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윤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로 걷기 시작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단골집인지 카운터에 있던 나이든 남자가 윤선생님에게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식당은 크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손님들로 꽤 차있었다. 우리가 구석자리에 앉자마자 직원이 와서 설렁탕 둘이요? 라고 물었다. 괜찮아? 윤선생님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은 계산서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빠르게 다른 테이블로 갔다. 윤선생님과 단둘이 밥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윤선생님도 불편한 기색 없이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나는 물컵에 물을 따르고, 수저를 놓았다. 여기는 김치도 맛있어. 윤선생님은 테이블 위에 있던 작은 항아리에서 배추김치를 꺼내 접시에 놓으며 말했다. 나는 메뉴판 바로 위에빨간 글씨로 크게‘만수무강 하세요.’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인사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윤선생님은 입을 다문 채 검지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고민하고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설렁탕이 나왔다. 윤선생님은 설렁탕에 소금과 후추를 뿌리고, 나에게 건넸다. 나는 소금만 뿌리고 국물을 저었다.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뜨거운 국물이 이러 저리 튈 정도로, 뚝배기가 벽으로 날라 가고, 이 식탁이 엎어질 정도로 아주 세게 젓고 싶었다.
  “인사를 하며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한 거지.”
  윤선생님은 국물을 살살 저으며 말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요?”
  “그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받아들이면 돼.”
  윤선생님은 국물에 밥을 말았다. 나는 김이 올라오는 뽀얀 국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정말 죽을 때까지 받아들일 수 없으면요?”
  “보통 그런 게 한이나 미련 같은 걸로 남는 거겠지”
  윤선생님은 김치가 담긴 그릇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밥을 크게 떠서 국물에 말았다. 국물 몇 방울 정도가 테이블에 튀었다.
  “그렇게 되면 나쁜 건가요?”
  “성격차이 같은 거지, 모든 사람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 그건 나쁜 성격인가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말꼬리를 잡고 물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는 국물에 말은 밥을 숟가락으로 눌렀다. 밥알들이 흩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쯤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일정하게 움직이던 윤선생님의 숟가락질이 멈췄다. 윤선생님은 되새김질을 하듯이 느리게 입 안에 있는 밥을 씹었다.
  “글쎄……. 그런 건 본인 말고는 아무도 모를 테니까.”
  윤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언제쯤 알 수 있을까. 윤선생님의 말대로 한이나 미련 같은 걸로 남아버릴지도 모르지. 지금은 어느 쪽이든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가 살아있으면 좋겠다. 다 식겠다. 윤선생님은 다시 숟가락질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나올 때 워낙 뜨거워서 그런지 별로 식은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먹다보니 계속해서 들어갔다. 속이 따뜻하게 차오르면서 설렁탕 속 밥알들처럼 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참 단순하구나. 조금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듯 웃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다 먹었어? 국물만 조금 남은 내 뚝배기를 보며 윤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선생님은 계산서를 챙기고,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선생님이 계산하는 동안 나는 식당 밖에서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선생님은 지갑에 영수증을 쑤셔 넣으며 나왔다. 먹을만했어? 윤선생님이 물었다. 네,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제 인사를 하고 집에 가면 되는데 발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윤선생님은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박하사탕을 내밀었다. 식당에서 가져온 모양이었다. 나는 박하사탕을 손에 쥐었다.
  “저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요?”
  어떤 말들은 나도 모르게 뭉쳐져서 튀어 나왔다. 윤선생님은 아직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앞니로 여러 번 씹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자. 그리고 내일은 학교에 나와서 주관식 답안지를 채점해야지.”
  “그게 다예요?”
  “응, 그게 다야. 일단 할 일을 하면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히 가라, 윤선생님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나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손에 박하사탕을 쥔 채 집으로 향했다. 동글동글한 것을 쥐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집에 온 나는 윤선생님의 말대로 씻고 침대에 누웠다. 실은 조금 울었다. 베개에 엄지손톱보다 조금 큰 눈물자국이 생길 정도로만, 딱 그 정도로만 울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나갔다. 주관식 답안지를 채점하면서 다른 친구들처럼 이번에 나올 성적표를 걱정했다. 윤선생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들에게 신문기사를 나누어줬고, 나는 윤선생님을 쫓아다닌다거나 함께 밥을 먹었다고 아이들에게 말하지도 않았다.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고, 가끔은 가벼운 농담을 치는 정도였다. 내가 졸업할 때까지 변하는 건 없었다. 윤선생도 내가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명예퇴직으로 학교를 떠났다고 들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에서야 윤선생님을 다시 만났었다. 그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 윤선생님이 손님으로 왔었다. 윤선생님은 여전히 키가 크고 정갈했지만, 얼굴 살이 엄청 빠지고 얼굴이 조금 까무잡잡해져서 나이를 먹은 걸 감안하더라도 전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자 윤선생님은 잠시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바라봤다가 그때처럼 수연이 라고 불렀다. 윤선생님은 따뜻한 녹차를 시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녹차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물론 티백을 뜯고, 정량을 지켜 뜨거운 물을 붓고, 우려내는 게 다였지만. 조금이라도 더 맛있을까 싶어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녹차 티백을 썼다. 녹차와 함께 손바닥만 한 쿠키를 드렸는데 윤선생님은 이런 건 못 먹는다고 했다. 못 먹는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쿠키를 다시 상자에 넣어놓았다. 윤선생님은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고, 나는 그럭저럭 지낸다고 답했다. 선생님은요? 라고 물어봐도 괜찮을지 잠시 고민했다. 윤선생님은 별 거 아닌 듯이 대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대답을 듣고 내가 괜찮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젊은 애가 왜 이렇게 기운이 없냐. 윤선생님은 장난치듯이 말했다. 말투와 목소리는 여전했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윤선생님은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윤선생님은 다음에 또 오겠다고 하며 녹차를 챙겨서 가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다급하게 꺼냈다.
  “저 다음 달에 카페 그만 둘 거예요. 번호라도 알려주세요.”
  윤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혹시라도 윤선생님이 번호를 주지 않을까봐 팔을 뻗어 핸드폰을 더욱 앞으로 내밀었다.
  “이제 늙어서 화면 보기도 힘들다. 불러줄 테니까 받아 적어.”
  나는 윤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번호를 저장하고 문자를 보냈다. 제 이름 적어서 문자 보냈어요. 윤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저는 일 년 정도가 걸렸어요.”
  핸드폰을 확인하던 윤선생님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윤선생님이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렁탕이요, 감사했습니다. 내가 덧붙여서 말하자 윤선생님은 웃었다. 주름이 더 깊어져서 그런지 크게 웃은 것 같지 않은데도 얼굴근육을 전부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에는 밖에서 만나자. 또 사주마.”
  윤선생님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슬쩍슬쩍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도 그 집에서 설렁탕을 사주시는 걸까. 나는 윤선생님이 사람들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살짝 등이 굽긴 했지만, 여전히 키가 큰 편이었다. 살은 조금 찌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깨지면 안 되는 건 따로 빼놔. 엄마가 말했다. 딱히 없어. 진짜로? 엄마는 몇 번이고 나에게 되물었다. 진짜 없어, 진짜로. 내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고 나서야 엄마는 물어보는 것을 멈췄다. 종량제 봉투 두 개가 가득 찼다. 오늘 쓰레기 버려도 되는 날이지? 나의 물음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버리러 가자. 나는 잘못 건들이면 터질 것처럼 묶여있는 봉투들을 양손에 들며 말했다. 귀찮은데. 엄마 좋아하는 빵집 가서 빵 사줄게.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잠옷 바지를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다.
  뭔가 허전하네. 분리수거함 옆에 쌓여있는 쓰레기더미에 봉투를 조심스럽게 놓으며 내가 말했다. 네가 그래서 물건을 잘 못 버리는 거야. 엄마가 답했다. 분한 마음을 담아 엄마를 째려봤다. 엄마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엄마는 버리는 게 아쉽지도 않아? 열심히 썼던 것들이잖아. 엄마는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아쉬워도 언젠가는 버려야 하잖아.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진심으로 동의하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빵집으로 걸어갔다. 지금 가는 빵집도 십 년은 됐을 것이다. 찹쌀도너츠가 맛있는 곳이다. 사장님 말로는 팥을 좋은 걸 써서 그렇다고 했다. 이제 이런 것도 마지막이겠네. 엄마가 말했다. 이런 거? 나는 엄마를 바라봤다. 이렇게 너랑 쓰레기 버리고, 걷고 이런 거. 엄마도 조금은 서운한 눈치였다. 주말마다 찾아올 건데? 내가 장난치듯이 말하자 엄마는 나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며 답했다. 주말마다 오긴 무슨, 이제는 거기가 네 집인데. 엄마 말대로 이제부터 내 집이라고 불릴 곳은 집을 알아보러 갔을 때만 가봤었다. 낡았지만 지하철역에서 가까운 빌라였다. 전에 살던 사람이 이미 나가서 집은 비어있었다. 원래 집에 붙어있는 싱크대와 세탁기 밖에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넓어보였다. 거기서 살 수 있을까? 나의 물음에 엄마는 미간을 찡그렸다. 나이가 몇 개인데, 못 살 건 뭐 있어? 밥 해먹고, 청소하고, 빨래하면 그게 그냥 사는 거지. 서운한 기색은 어디가고 꽤 단호한 말투였다. 그게 어려운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지. 엄마가 바람 빠지듯이 웃었다. 그래도 살다보면 익숙해질 거야.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를 하게 되면 이불이 들어가고, 옷이 들어가고, 냄비들이 들어가고, 작은 식탁이 들어가고, 분명 또 언제부터 자리를 차지했는지 모를 물건들이 쌓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오히려 집이 작게 느껴지겠지. 저번에 갔던 친구의 자취방도 그리 넓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제 매일같이 가족들이 살고 있는 집이 아닌 그 집으로 퇴근할 것이다. 귀찮더라도 밥을 해먹으려고 노력하고, 청소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너무 많다고 하는 엄마처럼 푸념을 잔뜩 늘어놓으며 청소를 하고, 노래를 틀어놓고 설거지를 할 것이다. 가끔은 설렁탕을 사먹을 수도 있겠지. 윤선생님과 카페에서 만났던 해에는 연말에 육개장을 먹었다. 사진 속 선생님은 카페에서 봤을 때보다 더 말라보였다. 나는 향에 불을 붙이고 살짝 흔들어 끈 뒤 향로에 꽂았다. 손이 약간 떨려서 다른 향들을 칠 뻔했다. 윤선생님의 사진을 향해 절을 두 번 했다. 육개장은 조금 짜고, 따뜻했다. 밥알의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씹으며 그래도 역시 설렁탕이 더 좋네요, 라고 생각했다.
  그 집이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좋아지는 날이 올까. 아마 그런 날이 오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도 그 집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날은 올 것이다.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때에, 내가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그 집을 내 집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에는 그 집에서 좋아했던 배우의 유작을 다시 볼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내가 울지 웃을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나는 물건을 제때 버리는 건 계속 어려워할 것이고, 어떤 날은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울 거라는 것이다. 그래도 인사를 할 수 있을 때가 오면 인사를 건네며 살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제3회 3·15청년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세 편의 소설은 편차가 큰 편이었다. 이는 소설의 모습을 제대로 갖춘 응모작이 그만큼 적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지난 이 년여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쓰고 싶은 욕망들을 갉아먹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속에서도 무언가 의미를 만들어보고자 책상 앞에 앉아 고심하고, 마침내 완성하여 응모해준 청년들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다. 하지만 당선작은 단 하나. 소설을 읽는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작을 뽑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선 문장에서 차이가 났다. 소설의 서사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문장인데 당선작 <할 수 있는 인사>는 다른 두 편에 비해 문장이 안정돼 있었다. 문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의미가 혼동되어 독자는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 외 <사인은 수요일>은 수사 형식의 소설을 쓰면서 전개방식이 지나치게 평이하고 서사가 조밀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었고, <갓무덤>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소설을 쓰면서 시제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고 문장도 불안정하여 혼란스러웠다.
  그에 비해 당선작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연히 생각하는 문제들을 섬세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응시함으로써 자칫 놓치기 쉬운 삶의 소중한 이면을 포착하여 서사화한 노력이 돋보였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한 어휘 선택,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당선작에 축하를 보낸다.       

심사 위원: 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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