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꽃은 언제나 약속처럼 피기에
[정일근의 발밤발밤] 꽃은 언제나 약속처럼 피기에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03.3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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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지역 봄의 정점은 벚나무와 벚꽃이 찍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벚나무 그루 수가 많다 보니 무리를 지어 우르르 찾아오는 꽃의 점령이 화려할 수밖에 없지요. 봄에 벚꽃만큼 요란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기쁨은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월영 캠퍼스 역시 마찬가집니다. 벚나무가 꽃을 피우면서 캠퍼스의 봄이 마치 쉬지 않고 쏘아 올리는 불꽃놀이처럼 터집니다. 하늘에서 터진 그 화려한 꽃불이 지상에 내려와 꽃으로 피나봅니다. 벚꽃은 한 번 피기 시작하면 누구든 멈출 수 없는 속수무책의 속도입니다.

  예부터 꽃의 운명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습니다. 벚꽃 또한 그러하지요. 한 열흘 전속력으로 피어나 사람의 셈으로는 셀 수 없는 그 꽃잎들이 어느 순간부터 바람에 날립니다. 그때마다 나는 봄에 날리는 난분분(亂紛紛)한 분분설(紛紛雪)을 보았습니다. 상상만으로 폭설의 그리운 시간이 벚나무 아래로 찾아왔습니다. 문득 누군가에게 긴 편지를 쓰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는 시간처럼 말입니다.

  여긴 눈이 귀한 고장입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될수록 이 도시에서는 눈은 겨울과 함께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벚꽃이 질 때 꽃잎 한 잎 한 잎 낱낱이 떨어져 날리는 모습이 눈이 오는 모습과 흡사했지요. 아니, 흡사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눈 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랐기에 나는 이 나이에도 벚꽃 날리는 모습을 4월의 눈으로 생각합니다. 벚꽃이 질 때면 벚나무 아래에 서서 나만의 폭설기(暴雪記)를 적바림에 적었습니다. 그것은 나비부인의 허밍 코러스 같고 서정시 같고, 날리고 나면 뜨겁거나 혹은 쓸쓸한 사랑이 되었습니다.

  진해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벚꽃 축제인 ‘군항제’와 같이 자랐습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군항제를 축하하는 연례행사인 축등(祝燈)행렬에 참여했습니다. 축등은 한지를 바른 직사각형의 등 안에 촛불을 밝힌 것이었지요. 혹시 실수로 축등에 불이 날까 어린 손으로 축등 막대를 꼭 잡고 조심조심 걸어가던 축제의 밤거리와 전야제에 구경 나온 수많은 인파의 모습이 함께 떠오릅니다. 진해로서는 잔치치곤 아주 큰 잔치였습니다.

  ‘코로나19’로 두 해나 거른 벚꽃 잔치 군항제지만 올해도 취소되었습니다. 얼마 전 진해를 다녀오는데 벚꽃이 피기도 전에 ‘진해군항제가 취소되었으니 방문을 자제 바랍니다. 창원시’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축제와 자제는 병란(病亂)의 시대에나 유효한 조합일 것입니다. 특히 올해는 군항제 60회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인데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믿습니다. 벚꽃은 내년에도 약속처럼 찾아와 필 것이고, 3년이나 쉬었던 성대한 축제가 열리리라 믿습니다. 진해에 심어진 37만 그루의 벚나무에게 내년을 약속합니다. 꽃은 언제나 약속처럼 피기에, 내년에는 같이 즐거울 수 있을 것이라고요.

  아마 벚꽃이 다 날리고 연두색 휘파람 같은 새잎이 필 때, 계절은 봄에 잠시 머물다 여름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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