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생각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교직원 칼럼] 생각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
  • 언론출판원
  • 승인 2022.02.1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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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내기 교수로서 근래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무슨 공부를 하냐는 것이다. 상대가 제법 진지하다고 느껴질 경우, 약간의 긴장과 함께 사상사를 연구한다며 입을 열게 된다. 나이가 좀 지긋하시거나 한 분께는 이런 식으로 답을 드린다. “『논어』 「이인」편 머릿구절 기억하시는지요?” 오래 괴롭히지 않고 정답을 말씀드린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仁에 거주함이 아름답도다. 선택함에 仁에 거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로울 수 있겠는가?(子曰: 里仁?美. 擇不處仁, 焉得知. 『논어』 「이인」 1)” 그러면 기억이 환기되셨는지 반갑게 응하신다. “그렇지요. 주거환경이 참 중요하지요! 맹모삼천지교지요.”

  이쯤에서 나는 애초의 주제로 슬슬 돌아간다. “선생님께서는 해당 구절의 仁을 ‘仁한 사람 내지 仁한 마을’로 보시는군요. 선생님의 독법은 후한 말 정현, 남송의 주자 등이 제창했던 매우 권위적인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조선 후기 이중환은 자신의 인문지리서를 ‘택리지(擇里志)’라고 명명하였는데 높은 확률로 그 역시 전통적인 이해 방식에 따랐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상황을 살핀다. “그런데 다산은 문제의 仁을 인간 내면의 덕목으로 한정합니다. 맹자가 仁을 편안한 집(安宅)이라고 말했던 것과 궤를 같이해서, 仁에 거처함(處仁)을 ‘도덕적인 삶의 지향을 견지함’으로 봅니다. 저는 이런 차이에 특히 주목하며 생각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이쯤에서 질리거나혹은 만족해하며 다른 주제로 넘어간다.

  그러나 드넓은 강호. 인문학적 소양이 투철하신 분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공자의 원래 의도는 뭘까요?” 심호흡과 함께 답변한다. “알기 어렵습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대다수의 발화는 고도로 맥락 의존적인지라 발화맥락이 고정될 필요가 있습니다만, 정작 『논어』의 편집에 공자 자신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학자들은 ‘공자 자신의 의도’를 찾는 데 소극적입니다. 다만 편집자의 의도를 물으신다면, 「이인」의 구성상 다산처럼 仁을 덕목 자체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주 진지하신 분이 세상에는 제법 있다. “실례가 될 것 같지만, 그런 공부 왜 하세요?” 여기서 나는 정체성의 위기를 새삼 느끼되 짐짓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며 답을 한다. “그러게요. 일단 저 자신은 이런 연구가 재미있습니다. 이상하죠?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을 교육하는 것이 공동체 차원의 메타인지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소개서 마지막 소절을 재생하고서 나는 기어이 대화 주제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린다.

이길산(교양교육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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