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가부장제 결혼제도에 반발하듯 ‘졸혼’(卒婚)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졸혼 부부 또한 늘고 있습니다. TV와 언론에서 졸혼을 화제로 다루자 너도나도 관심을 가진 지 제법 되었습니다. 졸혼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우리에게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풍속입니다. 졸혼은 지난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杉山由美子)의 ‘졸혼을 권함’에서 시작된 신조어입니다.
졸혼의 말뜻은 ‘결혼을 졸업한다’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부부가 등 돌리고 남남이 되는 이혼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졸혼 부부는 혼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신개념입니다.
탤런트 백일섭, 차광수 씨 등이, 소설가 이외수 부부가 졸혼 뉴스로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졸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부부 관계에서 제2의 삶을 찾는 계기가 된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보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황혼 이혼’을 포장하는 부정적인 현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별거라는 사실상 파국을 합리화하는 말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 큽니다.
문화평론가 김성수 씨는 지금 같은 가족 시스템이 유지되면 졸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흔들리고, 재난 앞에 억눌려 있던 가족관계에서 졸혼이 다시 유행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삼성생명 2018년 은퇴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은 22%, 여성은 33% 정도만이 졸혼에 대해 ‘긍정’하는 견해를 보였다고 합니다. 최근 결혼정보업체 듀오는 ‘졸혼’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가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혼남녀 열 명 중 여섯 명 이상(남 60%·여 70.7%)은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졸혼을 결심한다면 남성은 61.3%, 여성은 76%가 찬성할 것이라 답했습니다. 이 조사의 결과가 졸혼이 오래지 않아 본격적인 사회문제가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졸혼은 현재 우리나라 가부장제에서 부부 관계를 정리하는 가장 유리한 방법론일 수 있습니다. 부부 별로 보면 남성은 부양의 의무를 비롯해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여성은 집안일에서 벗어나며 사회적 활동을 보장받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졸혼은 이혼 대신 선택하는 ‘가족 도피처’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졸혼 자체는 비판적으로 봐야 하지만, 졸혼을 선택하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숨죽이며 침묵했던 코로나 이후 가족 문제가 졸혼이란 비상구를 향해 정체현상을 빚을 정도로 요란해질 것 같습니다. 슬기로운 해결책은 없는지 모두의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