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오락과 정신적인 쾌감 외에도 사회적인 통합의 기능을 제공한다. 스포츠엔 종류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당당히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스포츠가 있다. 바로 ‘야구’다. 우리 대학에도 1982년에 창단되어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는 야구부가 있다. 야구부 감독은 야구의 영원한 1승 투수라고 불리는 감사용 감독이다. 원년에는 선수로 활약하고, 현재는 우리 대학에서 야구부 감독을 맡은 감사용 감독을 만나 보았다. / 문화부
감사용 감독은 1982년 KBO 리그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며 프로 야구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2년부터 1986년까지 팀 내에 유일한 좌완 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감 감독은 프로 무대 5시즌 동안 통산 1승 15패 1세이브에 평균 자책점 6.09를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인생의 단 한 번의 기록과 부진한 성적에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고, 이후 감사용 감독을 모티브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감독의 감동적인 일화도 재조명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돌멩이가 이어준 야구의 꿈
감사용 감독은 특이한 경험으로 야구의 길에 들어섰다. “돌멩이를 던지는 것을 아주 좋아했어요” 감 감독은 어린 시절 놀이 문화가 발전되지 않아 또래 친구들과 강둑에서 돌멩이를 던지며 시간을 보냈다. 돌을 던지며 놀다가 돌과 유사한 공 던지는 놀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초등학교 6학년 때 군에서 개최한 시합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며 야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감 감독이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다. 그때부터 계속 야구를 하다가 대학교 2학년 때 무리한 운동으로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야구를 쉬면서 재활 치료와 병역의 의무를 다한 후 삼미종합특수강에 취직하여 구매 관리 관련 업무를 했었다. 그러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야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주말에는 직장인 삼미특수강 회사 동료들과 야구를 하며 창원공단시합에서도 우승을 하는 쾌거를 맛봤다. 삼미특수강 계열사에서 실업팀이 창단된다는 소식에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여 선발 투수로 활약하였다.
1982년에 창단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3년 전반기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1984년 전반기에는 50경기 18승 30패 2무, 1985년에는 한 달간 단 1승도 하지 못하며 18연패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며 아쉬운 성적을 남기고 창단 3년만인 1985년 6월에 해체하게 되었다. “우리 팀은 도깨비 팀답게 최선을 다했고 연패 후 1승을 위해 선수 개개인의 흘린 땀과 인천 팬들의 열정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 감독은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 모두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말하며 옛 선수 시절을 회상했다.
감사용의 야구 일생을 담은 ‘슈퍼스타 감사용’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감 감독의 일화를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주인공 감사용 투수 역할은 배우 이범수가 맡고, 공유가 특별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었다. 영화 속 철공소 주임, 작은 키, 왼손잡이에 작은 손이라는 투수를 하기엔 좋지 않은 조건을 가진 것도 실제 감 감독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는 화려한 프로 야구 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별할 것 같지만 아주 평범한 한 프로 야구 선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도 비슷하기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감 감독도 신체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힘들게 프로 야구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스타 선수 한 명 없는 삼미 슈퍼스타즈는 개막 직후부터 꼴찌팀의 불명예를 안았다. 또한, 패전처리 투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팀에 패색이 짙어지면 늘 나가서 마무리하는 투수였다. 실제로 감사용 선수와 같이 우여곡절 끝에 프로 야구 선수가 되었지만, 아직 경기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선수도 많다. 이런 모습의 선수들은 프로 야구계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 중 하나다. 영화 끝부분의 ‘나도 한번 이겨보고 싶었어요’ 대사는 감사용 투수의 간절함이 느껴져 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어요.” 감 감독은 영화 제작 당시부터 기억 속에 잊혀진 무명 선수를 재조명하여 야구 영화가 촬영된다는 소식에 신문사와 방송사 등에서 많은 연락을 받았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감사용 감독은 연일 인터뷰를 하고, 여러 기관에서 특강도 진행되는 등 큰 인기를 얻었다. 갑작스러운 많은 관심에도 감 감독은 자만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영화 제목에 걸맞게 슈퍼스타 감사용이 되었다.
감사용 감독이 이끄는 우리 대학 야구부
감사용 감독은 은퇴 이후에는 2006년 국제디지털대학교팀의 감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작년 3월부터 우리 대학 야구부 감독을 맡아 선수 양성에 힘쓰고 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선수들의 열정에 힘입어 방역수칙을 지키며 훈련을 진행한다. “내년 2022년 시즌을 위해 선수단 27명 모두 한마음으로 힘차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번 동계방학에는 내년 시즌을 위한 훈련을 마산, 창원, 진해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훈련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집중해야 하여 많이 힘들지만 늘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선수들도 비시즌에는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을 받으며 학업에 열정을 다한다. 우리 대학 야구부의 최대 장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팀워크다. 감 감독은 장점을 활용해 1989년 전국 체전에서 우승했던 우리 대학 야구부의 위엄을 다시금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남겼다. 이어 코로나19로 힘든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한다며 덧붙였다.
누구나 힘든 시기는 있다. 그 시기 동안 자신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소중한 경험이 된다. 경험들은 나를 다시 빛나게 만들어준다. 감사용 감독은 안 좋은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프로 야구 선수의 명예와 현재까지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야구 지도자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도 감사용 감독처럼 화려한 결과보다는 자신이 만족하는 삶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