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수세미꽃이 피는 풍경
[정일근의 발밤발밤] 수세미꽃이 피는 풍경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10.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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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세미’를 아시는지? 요즘 내가 아침 산책하러 가는 길가에 수세미꽃이 피어있어 오랜만에 정답던 옛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그 수세미 넝쿨 아래에 길이가 60cm 정도인 수세미 하나가 달려 있다. 누군가 정성을 다해 키웠겠지만 가까이 있는 복원된 교방천 맑은 물소리가 수세미에 힘이 되었을 것 같다.

  수세미는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식물이다. 열매는 큰 오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수세미외’라고도 부른다. 수세미는 암수 한 그루다. 7~9월에 노란 꽃이 피어 8~9월까지 핀다. 그런데 올여름 더위에 잠시 피했다가 왔는지 10월 초순인 지금까지 꽃이 피고 있다. 수세미꽃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호박꽃으로 착각하는데 꽃이 호박보다 작고 연한 노랑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 우물가에 수세미가 심겨 있었다. 수세미는 덩굴손이 있어서 곁에 있는 다른 나무나 기둥 등을 감으면서 올라간다. 수세미꽃도 좋지만, 주렁주렁 달리는 수세미 열매는 가족에게 좋은 화장품이었다. 수세미로 즙을 내어 화장수를 만들어 얼굴에 발랐다. 또한 수세미 속을 말려 설거지용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자연인 수세미 이름이 철 수세미 등 현대의 주방용품 이름과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수세미에는 식이섬유가 있어 변비 해소에 효과가 있다’라고 한다. 또 ‘칼륨이 체내 노폐물을 배설해 피를 맑게 한다’라고 한다. 항염, 항산화에 뛰어난 성분인 ‘쿠마르산’이 도라지의 40배, 홍삼의 30배 이상 다량 함유돼 있다고 한다. 나는 수세미를 약으로 먹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가 수세미를 심어 약으로, 화장수로, 주방용품으로 사용한 것은 뛰어난 ‘생활의 지혜’였을 것이다.

  같은 생활의 지혜로 담장 밖에 심는 엄(음)나무가 있다. 엄나무는 온몸에 가시를 달고 있다. 그래서 귀신을 막는 벽사(闢邪)의 기능을 가진 나무다.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며, 부부 사이를 정답게 한다고 한다. 봄에 피는 새잎으로 ‘엄나물’을 만들어 먹고 나무에는 사포닌 성분이 많아 닭이나 오리백숙을 할 때 쓰인다. 그런 나무와 식물이 우리 주위에 많다. 약이 되고 음식이 되는 자연의 고마운 선물이다.

  아침 산책에서 수세미를 만나고부터 마산이란 도시에, 오래된 마을과 길에 나무와 꽃이 유난히 많은 것이 고맙다. 그것이 창원이란 이름에 잃어버린 마산의 DNA를 찾은 기분이다. 무화과나무, 대추나무, 목백일홍…, 작은 텃밭에 자라는 배추 등 이런 것이 옛 마산으로 가는 지도인지 모르겠다.

  지금 내 사는 곳에서 기회가 생겨 빈터를 빌린다면 수세미를 심어보고 싶다. 덩굴손이 나아갈 방향을 단단히 잡고 길을 내는 모습에서 내 마음도 그 길을 따라가며 시(詩)란 수세미꽃을 피우고 싶다. 마산을 떠난 사람이 많다. 빈집도 많다. 수세미꽃이 피었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빈집에 노란 알전구가 켜지듯 수세미꽃이 피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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