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알게된 내 사랑, 엄마
슬픔으로 알게된 내 사랑, 엄마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06.0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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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행복한 날만 지속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슬픈 순간들은 삶의 기대와 소망을 무너뜨리고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다. 슬픔과 함께 길을 걸어가기도 하고 슬픔에 묶여 헤매기도 한다. 누구는 슬픈 기억을 망각하고 기억에서 꺼내지 않기도 하지만 나의 그날 슬픔은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다. 그날을 통하여 슬픔이 삶을 송두리째 내동댕이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쓰러진 그날, 나에게는 슬픔이라는 이름보다 더 깊은 단어가 필요했다.

  초등학교 4학년, 엄마의 뇌출혈은 어린 나에게 충격이었다. 외삼촌이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가족은 전라도 영광에서 외삼촌이 입원해 있는 서울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외삼촌의 초췌해진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안쓰러움 그 자체였다. 그날 엄마는 많이 피곤해했다. 엄마는 “내일 내가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우리에게 당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엄마는 다음날 저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나는 엄마를 깨웠다. “엄마, 엄마, 저녁 먹자.”고 몇 번을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그때 ‘뭔가 잘못 되었구나’하는 직감이 들었다. 엄마에게 다가가 얼굴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철렁하였다. 입에 거품을 머금으신 채 실신한 상태였다. “아빠. 119, 119”를 외쳤다. “엄마”, “엄마”하고 얼마나 부르짖었는지 모른다. 이 사건의 충격은 청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나를 따라다닌다.

  엄마의 치료 과정과 후유증은 심각했다. 검사 결과 혈관이 반만 막혀서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3일 뒤 엄마의 의식은 돌아왔다. 하지만 약 2주 동안은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아 7살 아이의 지적 수준을 가지고 있었다. 약 4개월 동안 치료를 꾸준히 받은 뒤 퇴원했지만 후유증은 컸다. 그 증상은 조금 스트레스를 받아도 졸음이 쏟아지고, 잠을 한 번 자면 길게는 꼬박 하루를 잠들어 있었다. 혈관이 막히면서 잠을 담당하는 쪽이 손상을 입어 평범한 사람처럼 제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력 쪽에도 문제가 생겨 보는 것에는 이상이 없지만, 초점이 잘 안 맞아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와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집안 분위기는 예전과 달랐다. 우울했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고 엄마와의 거리는 멀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어느날 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안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바로 달려가 보니 엄마가 매우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이유를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리더니나중에야 얘기해 주셨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엄마의 생활이 전과 똑같아 보이기에 엄마의 힘든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했다. 같이 사는 우리 가족은 엄마가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해 항상 집에 돌아오면 바로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엄마가 힘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엄마의 건강이 다 회복되어 그 전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되어져 엄마에게 예전처럼 기대하며 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엄마에게는 부담이 되었고 스트레스가 되었던 모양이다. 엄마의 힘든 점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엄마가 이 정도로 힘들어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 우리 가족은 엄마에게 더 관심을 갖기로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줄어들었던 엄마와의 대화를 많이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엄마를 돕기 위해 가사 역할을 분담했다. 이때부터 집안일에 무신경했던 아버지도 설거지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쓰러지기 전보다 더 화목한 생활을 찾게 되었다.

  엄마가 쓰러졌던 그날의 기억은 떨쳐버리기 힘들지만 내가 열심히 사는 계기가 되었다.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는 엄마의 후유증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 힘들고 슬픈 시간은 앞으로 내가 엄마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해주었다. 현재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대학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가 오늘은 잘 지내시나?’하고 걱정이 된다. 하지만 마음만은 항상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사랑합니다.”

이병주(소방방재공학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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