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청년이여, 나무 앞에 서라
[정일근의 발밤발밤] 청년이여, 나무 앞에 서라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03.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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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속도전으로 변한 지 오래다. 빠른 봄은 오자마자 벌써 떠나 갈 준비를 하나 보다. 벚꽃이 가지가지 수북수북 만개하자마자 한 편으로는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무릇 핀다고 해서 꽃이 아니다. 피고 지면서 꽃의 일생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영원한 꽃은 없다. 생로병사를 통해 인생이 완성되듯, 꽃이 가지에서 피어 가지에서 떠나 날리면서 꽃의 임무는 끝이 난다. 지는 꽃잎 속에 서 있으면 신생의 힘을 느낀다. 자연도량의 가르침이 그 힘에서 나온다.

  진해가 고향인 운명으로 어린 시절부터 해마다 벚꽃의 만개와 난분분한 작별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배웠다. 만나면 떠나고, 떠나야 다시 만난다. 떠남과 만남 사이, 만남과 떠남 사이 시가 있고 인생이 있었다.

  그 사이 지구는 많이 더워졌다. 올해가 관측 이후 벚꽃이 가장 일찍 피었다고 한다. 4월 벚꽃이, 3월 벚꽃이 되고 멀지 않는 미래에 2월 벚꽃이 필 것이다. 그 생각에 닿으면 지구를 이렇게 만든 ‘온난화’가 두려워진다.

  범어로 ‘나무[南無]’는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불의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주술이다. 거대한 나무 앞에 서면 끝내는 내가 돌아갈 저 세상이 보인다. 그래서 나무는 우리가 돌아갈 문이다. 그 문 앞에서 운명처럼 힘차게 두드리며 우리가 돌아갈 길을 묻는다. 나무는 인생의 질문이며 답이다.

  나무가 숲을 만들 때 더 큰 가르침이 온다. 사람이든 나무든 혼자서는 살지 못한다. 더불어 사는 법을 숲이 가르쳐 준다. 숲은 경전이며 노래이며 ‘만트라’다. 만트라는 우주와 소통하는 자연의 소리며 숲의 소리다. 그 소리에 귀를 대면 우주가 답한다.

  나는 히말라야 고산에서 그 답을 들었다. 고산병에 숨이 차 고통으로 헐떡이며 신은 내가 던지는 질문에 답했다. ‘옴-’ 열린 그 소리는 히말라야산맥 2,400km 흔들고 가는 거대한 울림이었다.

  부처는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 56억7천만 년 뒤에 온다는 미래불인 미륵부처는 용화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다. 나무는 깨달음의 축이며 장이다.

  그 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지구가 돌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변화는 모든 것을 잉태하고 출산한다. 바람에 나무와 숲이 화답하며 변화한다.

  나는 청년들이 나무 앞에서 혹은 나무 아래서 사유의 시간을 보내길 권한다. 나무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다.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와 껴안고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나무의 노래에 답을 하고 나무의 가르침에 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길이 보인다.

  인류 최초의 악기가 속이 빈 나무통이었음을 안다면 결코 가볍게 여길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씨앗이다. 씨앗 안에 생명이 시작된다. 아직은 씨앗인 청년이여! 그대들이 나무 앞에 경건해야할 이유가 그것이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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