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네지 못한 인사
건네지 못한 인사
  • 언론출판원
  • 승인 2021.02.19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에는 기쁨과 함께 슬픔이 공존한다. 사람마다 그 이유는 각각 다르며, 또 각각 다른 깊이를 가진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나의 슬픔은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아직도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슬픔이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슬픔은 바로, 지난 3월 사촌동생과의 갑작스러운 이별이다.

  지난 3월 초, 아직은 서늘한 바람이 몸을 스치고 흐린 날씨에 더욱 쌀쌀했던 초봄, 나의 사촌동생은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았다. 그날 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당시 외할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엄마가 간호를 한 후, 1시쯤 집에 돌아왔고, 나와 언니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언니가 갑자기 나에게 “야, 엄마 왜 울어?”라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이어폰을 빼고 “엥? 엄마 울어?”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언니는 그렇다며, 나에게 한번 가보라고 했다. 당황한 채로 엄마에게 달려가 보니, 엄마는 정말 “우짜것노, 우짜것노.”라며 울고 있었다. 그 모습에 너무 놀란 내가 “엄마!! 왜 울어??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외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OO이가 뇌출혈이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모든 순간이 멈춰 멍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간신히 “어떡해···”라는 말만 내뱉을 수 있었다.

  사촌동생은 굉장히 순수하고 밝은 아이였다. 자신의 동생들을 항상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돋보였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방탄소년단 얘기를 해주며 웃는 모습이 한없이 빛나고 귀여웠던 아이였다. 그리고 특히 나를 좋아하고 잘 따라주었다. 어렸을 적 자주 함께 술래잡기, 인형놀이 등을 하며 놀고, 누구에게도 하지 못할 이야기도 서로에게 해주었다. 또한 가족끼리 여행도 자주 갔다. 함께 여행을 가서 어른들이 다른 일로 바쁘시면, 사촌동생과 함께 놀아주고 돌보아 주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주희는 동생을 참 잘 보네? 나중에 커서 선생님하면 되겠다!”라고 말하셨다. 이 말은 내가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사촌동생도 고등학생이 되자, 서로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랜만에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이였다. 또한 나는 그 아이가 내 친동생과 동갑이라 더 가깝게 느껴졌고, 그 아이는 집에서 첫째라 의지할 수 있는 언니가 필요했을 것이기에 우리는 서로 친언니와 친동생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런 아이가 18살이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니,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뇌사상태니 아직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가 희망을 가지고 바라봤다. 정말 다들 금방이라도 사촌 동생이 눈을 뜨고 다시 일어설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희망을 가진 건 우리뿐이었던 것 같았다. 의사는 이미 늦었다며 장기기증을 제안했고, 사촌동생은 하루하루 더 힘들어 보인다고 했다. 내가 느낀 암울한 시기는 그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사촌 동생이 누워있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른들이 나를 위해 보는 것을 말리셨다. 나는 그걸 무릅쓰면서까지 보겠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사촌동생이 세상을 떠나고 마지막 모습은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모습을 보고, 영정사진을 보고, 그 아이의 동생들을 보니까 정말 울고 싶었지만, 아무도 찾지 않아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그 공간을 내 울음소리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울면 외삼촌과 외숙모가 더 슬프실 것이라는 걸 알았던 것도 있고, 괜한 욕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에게도 감히 꺼내지 못한 이야기지만 사촌동생이 진짜 세상을 뜨기 전 나의 꿈에 나왔다. 나와 함께 즐겁게 놀던 초등학생 정도의 모습을 하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촌동생은 꿈에 찾아와 나에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낸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마지막을 눈물 없이 보내주고 싶었던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욕심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의 부재가 느껴질 때마다 힘들었고 후회로 가득 찼었다. ‘그날 마음껏 울 걸.’ 후회로만 가득 채웠다. 그래서 아직 그 아이는 나의 마음속에 슬픔으로 존재하고 있다.

  사실, 아직 납골당에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아직 이 슬픔을 비워낼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가야지, 비워야지 생각해도 마음처럼 안 되는 것 같다. ‘차라리 그때 울걸, 그때 마음껏 울고 시원하게 보내줄 걸.’ 후회로만 가득 남은 이별이었다. 이런 이별을 겪고 나서,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 같다. 물론, 언제든지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이 찾아올 수 있고 따라서 현재에 충실하게 후회로 남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지만, 아무리 그렇게 잘해도 본인의 마음을 다해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면 후회가 남는다는 것을 더 크게 배웠다.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해야 병이 나지 않는다. 그게 마음일수록, 겉으로 나타나지 않을수록 더 중요하다. 아픔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만큼 바보 같고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 이후로 나는 내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해지자고 결심했다. 그리고 정말 그런 내가 된다면, 그 아이의 납골당에 찾아가 펑펑 울자고 다짐했다.

최주희(유아교육과·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 대표전화 : (055)249-2929, 249-2945
  • 팩스 : 0505-999-211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은상
  • 명칭 : 경남대학보사
  • 제호 : 경남대학보
  • 발행일 : 1957-03-20
  • 발행인 : 박재규
  • 편집인 : 박재규
  • 경남대학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2021 경남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