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10·18 문학상 현상공모 - 수필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
제34회 10·18 문학상 현상공모 - 수필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
  • 정주희 기자
  • 승인 2020.11.04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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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부문 당선: 김은지(간호학과·4)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

  노을과 여명은 일란성 쌍둥이다. 처음은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빛, 분홍빛, 보랏빛, 붉은빛이 다가오는 순서나 빛 층의 밀도는 다르다. 아이돌 그룹 EXO의 Love me right를 흥얼거리며 하늘을 보고 있다. 툭툭 무언가에 걸려 주춤한다. 이곳에도 시선을 달라는 땅의 질투인가 싶다. 즐겁다. 예전 같으면 이제 시선을 내리라고, 넌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속살거리는 목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가 지구를 강타하기 전에는 밤 운동을 했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아, 백조, 쌍둥이, 하늘에는 이야기가 참 많이 깃들어있었다. 사랑스러운 친구와 별자리를 그리며 하늘에 안기듯 운동장을 돌았다. 우리도 달을 자전하는 별 같다며 서로 간직한 별자리 신화를 풀어놓았다. 땅에는 강아지도 사람도 많았다.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운동장 돌기를 갑자기 멈추지 않을 만큼 많았다.

  작년 겨울부터는 은하수에 안기는 것이 불안해 졌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사람을 좀 피하기 위해 노을을 보며 홀로 만날재를 올랐다. 진귀한 보석이 쏙하고 바다로 들어가는 그 광경을 매일 본다는 것이 행복했다. 하지만 혼자 즐기기 에는 뭔가 스산한 기운이 스쳤다. 홈트레이닝을 위해 AI와 친해지려 했다. 하지만 삐빅삐빅 좀 더 동작에 신경쓰세요라고 말하는 그 녀석과 심리적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았다. 인터넷 강의로 전 환되면서 과제가 폭탄처럼 터졌다. 팡팡. 예전에 유행했던 ‘애니팡’ 같다. 학교에 가서 들으나 인터넷으로 들으나 수업 시간도 습득해야 할 지식의 양은 같다. 많다. 학점을 완성시키기 위한 드래곤볼 모으기 같기도 하다. 집에 있으니 집안일도 늘었다. 그 와중에 실습은 학교로 간다. 하늘을 볼 새도 없이 노트북 속 하얀 화면과 익숙해졌다. 햇병아리인 난 앉아서 뽈뽈뽈 이리저리 다녔다. 하지만 일과를 끝내지 못하고 쓰러지듯 잠드는 하루의 연속으로 봄과 여름의 경계가 훌쩍 지나갔다.

  신기한 것은 이 혼란도 금세 적응이 된다는 것이었다. 서서히 시간의 밀도가 짙어졌다. 다시 약간의 숨 고를 여유가 생겼다. 또 다른 방법으로 ‘함께’를 다시 시작하고 다른 방법으로 지식을 채울 수 있게 됐다.

  정신을 차린 것은 최근이다.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굽는 연기 대신 선선한 바람이 스쳐 가며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두드렸다. 책상 앞에 앉아 허 리를 구부리고 목을 쭉 빼서 거북이가 다 된 몸이 아우성쳤다. 방치하면 파업할 것 같은 살벌함이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사람 없는 새벽 시간을 선택했다. 5시. 수마를 물리치기 위해 동생과 함께 인스타그램 인증 챌린지를 시작했다. 항상 운동이 끝나면 와서 더 자야지하며 집을 나선다. 운동 경로는 매일 바뀐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뜬다. 서서히 속력이 붙는다. 터닝포인트를 찍고 뒤돌 때, 그때가 장관이다. 해가 뜬다. 1월 1일마다 보려고 기를 쓰던 그 여명이다. 매일 신년이 되는 블랙홀 안에 빨려 들어온 것 같다. 노을과 꼭 닮은 그는 다른 질문을 던져준다. 오늘은 어떤 하루이고 싶니, 오늘은 뭐할 거야, 오늘은 뭐 먹을래. 그래, 노을도 분명 오늘에 대한 질문을 던져줬다. 오늘은 어땠니, 오늘 할 일은 얼마나 했니, 내일은 뭐 먹을까. 여명의 질문이 더 다정하고 기쁜 것은 내 기분탓일까. 여하튼 새로운 사람과 연애하듯 설레는 기분이 충만하다. 운동장 대신 골목을 누빈다. 매일 새로운 마산을 마주한다.

  한낮 일과 중, 짬이 날 때 든 생각이다. 태양은 사실 그대로 있다. 여명이든 노을이든 지구가 자 전하고 공전하니까 생기는 것이다. 다를 것 없다. 그럼 이 마음은 왜 다른 것일까. 그건 아직 답을 찾을 수 없다. Love me right를 튼다. ‘여긴 런웨이, 날 바라보는 눈 속 밀키웨이’라는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온다.

  시간이 흐르고 여명이 익숙해졌다. 잊었던 노래가 다시 흥얼흥얼 입에서 흘러나온다. 마스크를 쓰고 뛰다 보니 머리가 아프다. 산소 부족에는 역시 앉아서 쉬기가 좋은 것 같다. 아침이슬 머금은 국화를 구경하다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에 걸쳐있던 해가 조금씩 어깨를 내민다. 따뜻한 주황빛이 온몸을 감쌀 즈음, 휴대폰을 꺼내 글을 끄적인다. 생각해보니 운동이 새로워질 무렵, 새로운 길이 나타났다.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할 무렵이 특히 그랬다.

  처음 밤하늘을 보며 걸을 때는 죄책감과 비난의 칼날이 가슴을 죽죽 그어 내릴 때였다. 사랑스런 친구는 별자리의 신화들과 함께 사랑스런 나를 깨워줬다. 새벽하늘을 보며 걷기 시작할 때는 ‘그래, 사랑스럽다. 잘하고 있어.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까?’라는 독사가 툭 대가리를 치켜들 즈음이었다.

  태양은 가만히 있다. 지구가 자전하며 다른 부위에 빛을 받을 뿐이다. 우리는 지구에 산다. 반대편에 있던 어둠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끊임없이 자전해서 새로운 빛을 받아야 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힘을 비축하다 방향을 정하고 움직일 때, 태양은 새로 운 빛을 줬다. 빛과 어둠이 돌고 돈다. 별 역시 마찬가지다. 어둠 속에서도 길 잃지 않도록 비춰주 는 뭔가는 언제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불안이 많은 내게 ‘오늘’의 태양을 보고 걷는 것은 괜찮다는 위로였다. 위로를 받고 마음이 진정 되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감사한 마음이 들면 사랑받고 있다는 충만함이 뒤따라온다. 그리고 새로운 ‘오늘’의 길이 열린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드라마요, 가까이서 보면 영화다. 스스로 움직일 때 우리는 주인공이 된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뭔 상관일까. 앞으로 어찌 흐를지 모르는걸. 아침마다 걷는 런웨이는 매일 다르다. 은하수를 걷는 것도 매일이 달랐다. 중요한 것은 내가 자전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영화의 #1이 오늘도 촬영 중이다.

 

 

10·18문학상 수필 심사평

  응모작품을 꼼꼼하게 읽었다. 작품의 수준이 하나같이 높았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이 고르고 뛰어났다. 올해는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아픔과 생활의 제약이 있었을 텐데 학생들이 독서하며 자기계발을 위하여 노력해준데 대하여 고맙기만 하다.

  <깨진 거울>, <오퍼상이 된 여중생>,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 세 작품을 두고 고심했다. 수필은 체험을 통한 사유를 형상화한 문학 장르다. <깨진 거울>은 화자의 어머니와 할머니, 3대의 내면적 인자를 세밀하게 풀어냈다. 서로가 닮고 싶지 않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이를 긍정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오퍼상이 된 여중생>은 착상이 매우 참신하다. 바지사장이 되고 싶은 화자는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딛고 어엿한 사장이 되고, 또 다른 사업에 뛰어들어 크게 성공한다. 시장은 물론 세계가 무대다. 젊음의 도전정신을 잘 묘사해낸 우수한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수필 문학의 형식면에서 조금 아쉬웠다.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은 노을과 여명에 대한 사색이다. 둘은 대칭의 시간이지만 꼭 닮았다.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함의 현상이지만 하루의 시작과 끝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자전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개성적인 사유를 일상생활과 연계하여 풀어낸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기에 당선작으로 뽑는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수필 문단의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길 바란다.

 

 

10·18문학상 수필 당선 수상 소감

  의미 있는 사건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수필은 순간을 저장하는 동시에 치유를 선사했습니다. 다양한 매체가 있겠지만 독보적으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채 흘러갈 시간에 질량을 늘려줬습니다. 또, 무언가 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기쁨에서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게 하고 슬픔에서 선택에 대한 배움을 줬습니다. 아름답고 즐거운 수필의 세계에 이끌어주신 주차돈 선배와 백남오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움직일 때 찾아오는 길’이 탄생하도록 불씨를 지펴준 우리 동생, 김덕님,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인생이 좀 더 풍요롭습니다. 책을 맘껏 보게 해주신 부모님께도 감사합니다. 작품에 등장한 사랑스러운 친구, 경빈 언니, 감사합니다. 많은 가르침과 영감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10·18 문학상 수상은 제 글 길에 있어 정말 중요한 사건입니다. 덕분에 용기를 많이 얻었습니다. 앞으로 평생 글을 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요리하고 정성껏 그릇에 담듯 그러고 싶습니다. 사랑스러운 순간을 나누고, 또 글을 통해 재구성하고 싶습니다. 수필을 쓰는 일은 사진첩을 정리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슬프고 힘들었던 일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다른 선택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또한, 아직 만나지 못한 사건에 대한 마중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중간고사 공부를 흥얼흥얼 즐겁게 할 만큼 기뻤습니다. 여러분께도 곧 즐거운 사건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축하해 주신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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