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7일이 ‘입추’(立秋)였지요. 입추는 가을이 일어선다는 뜻입니다. 그때 일어선 가을이 지금까지 쉬지 않고 우리에게로 걸어오고 있습니다. 뜨거운 불볕 아래로 난 길을 걸어, 긴 장마로 젖은 길을 뒤뚱거리며, 태풍이 휩쓸고 간 상처의 길을 따라 8월을 지나고 9월의 문을 지나 가을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가을이 우리를 찾아오는 길은 많은 선물을 가지고 오는 풍요의 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찾아오는 가을의 길은 우리가 기대했던 선물보다는 상처가 더 큽니다. 얼마 전 ‘얼음골 사과’의 주산지인 얼음골 옛길 일대를 둘러보며 참담한 마음이었습니다. 익지 못한 채 가지에서 떨어져 땅 위에서 부패되어가는 사과는 코로나19의 DNA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요즘의 사과나무가 빈손으로 서 있다는 것은 우리의 가을과 그리고 겨울이 참담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세계의 관심을 받지 못하지만 ‘지구 온난화’는 실제론 코로나 전염병보다 심각한 위기입니다. 얼마 전 ‘2100년에 한반도에 사과나무가 사라진다.’는 경고는 저에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북으로 북으로 월북하는 사과나무들은 22세기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야 맛볼 수 있는 과일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과나무가 떠난 자리에 어떤 정체불명의 과일이 자리할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는 치료제나 면역제가 만들어진다면 사라질 것이지만, 지구 온난화는 이미 19세기에 브레이크가 없는 버스가 출발한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는 발등의 불 끄기가 급해서 더 ‘큰 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사과나무가 사라진다면 남북의 이념인들 남아있을까요? 저는 최근 시를 통해 그땐 시도 사라지고 시집도 사라질 것이라고 불안한 예언을 했습니다. 당연히 이 땅에 너무 많은 시인들도 멸종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너무 마음대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구별은 점점 뜨거워지는, 끌 수 없는 보일러가 되어버렸습니다. 남극과 북극의 빙하가 녹는 위기도 위기지만 여기저기 지구 온난화의 후유증이 깊어질 것입니다. 태풍이 잦아지고 강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밀려올 태풍이 우리에겐 큰 짐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계속 창궐하고 생태계는 엉킨 실타래처럼 교란될 것입니다.
청년들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길 바랍니다. 지구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파란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병보다 지구가 앓는 병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땐 이미 늦어 치료제는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지구의 열을 내려야 합니다. 코로나19로 나 자신을 구하려는 열정으로 이제는 지구에 마스크를 쓰게 해야 합니다. 지구를 쉬게 해야 할 시간이 벌써 지났습니다.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