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어느 말미잘의 반성문
[한마 아고라] 어느 말미잘의 반성문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9.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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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생각이란 것을 하면서 살기가 싫은, 말미잘류의 촉수로만 사는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반성문 혹은 각성문을 쓰는 것에 가까워 처음에는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도 곧 생각을 바꿔먹었는데, 휘발성 높은 적은 돈과 탈모증 걸린 듯한 행운, 뭐 인간의 무의지에 개입하길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하늘의 뜻도 나름 밝힘증이 있는 나로서는, 역시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며, 반성 혹은 각성 거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사람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려 하는 평화주의자다. 그런데 늘 그렇듯 타인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게 힘든 일이었다.

  내가 느끼는 하루 치의 기쁨은 일상의 장악력에서 오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변덕스럽고 게으르고 불만투성이다. 게다가 요즘은 아예 기억력조차 나빠졌다. 어쨌든 이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줄기차게 쭉 변함이 없다.

  나는 한동안 20대인 아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적이 있었는데, 좋은 말로 위장하면 독립시키는 일이다. 이 말속에는 아주 오래되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을 먹이고 입히고 살리는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남까지 먹여 살릴 수 있다면 그는 영웅이다.

  나에게는 또, 자신은 할 일이 있어서 대학에 안 가겠노라고 선언한 10대 딸도 있다. 옳거니 대학 학비는 굳히겠네, 나름 머릿속 계산기를 돌리고 있는데, 이 세상 가장 골칫덩어리는 바로 자기 자신이야(바로 위의 문제), 하면서 일상이 완전 무너져 방구석이 깊고 넓다 하고 눌러붙어 허우적대며 헤매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하아, 코로나 때문에 미치겠네, 하다가도,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기에 방구석 현자 타임을 또 가지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생은 더 이상 잃을 거 없는 게임. 어차피 이유도 없이 던져진 삶이니 그저 살아갈 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누구나 깨닫는다는 것은 상식이라는 것이고 그 상식을 거듭 깨닫는 것은 체험인 것이다. 이 체험의 영역은 점점 넓어져 별로 잃을 것이 없는 삶 두려움도 없어져 버려서, 결국 방구석을 탈출하여 바깥으로 뛰쳐나가 자원봉사에 가까운 성가신 일을 찾기도 하고, 지옥 같은 노동체험을 하거나, 6개월 버티기에 30%도 안 되는 확률을 위해 대출을 받아 빚의 삶을 시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체험은 주기적으로 반복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계속 뛰쳐나가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낫다. 뛰쳐나갈 때는 거침이 없어야 하고, 순진해야 하는데 우린 이미 너무 늙어버렸다. 그럼에도 잃을 것도 없고, 딱히 안 할 이유도 없으니 열심히 하는 거고, 헛된 줄 알면서도 헛되지 않을 것도 없으니 꿈꾸는 것이다.

  과도한 열정으로 자폭해버리거나 거듭된 실패로 삐뚤어져 히스테리 부리지 않고 부실한 자기 자신과 헛되어 보이는 시간을 오래도록 잘 버티는 것이다. 그러면 주위 경쟁자들이 하나둘 먼저 떨어져 나갈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런 삶은 처음이라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 50대의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요즘 같은 사회 전환기랄지 변동기에는 촉수와 빨판의 힘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중 추천하고 싶은 촉수 하나, 없어져도 되는 커피값, 담뱃값으로 5천 원, 혹은 만 원짜리 주식을 사모아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미래의 우량기업이 될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자본의 흐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은 빠를수록 좋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방구석을 뛰쳐나가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먼저 근처에 가서 얼쩡거려보거나 넣어달라고 떼를 쓰는 뻔뻔스러운 자세도 필요하다. 뻔뻔스러움이나 희망, 열정 같은, 내 안의 모든 것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고 길러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촉수와 빨판들의 힘을 길러 이번 게임은 오래도록 잘 버텨보길 바란다.

김애영(국어국문학과 졸업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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