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
폭력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9.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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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시피도 따로 없다! 사찰음식의 대가 ‘백양사 천진암 정관스님’>은 사찰 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과 세계에서 모인 제자들의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짧은 글이다. 처음 이 글의 제목을 보고는 그냥 스님이 레시피 없이 요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스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내 단순한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재료 본연의 맛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에 대한 존중! 스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지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레시피는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스님에게는 레시피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재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바로 레시피다. 그것이 바로 스님만의 레시피일 것이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에도 레시피가 필요하다. 사람을 대하는 레시피에서도 나와 상대방,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처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을 대하는 레시피를 따르지 않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이슈가 되었던 N번방 사건과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한 친부모나 보호자들의 성범죄나 학대 등은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아동 성범죄의 심각성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다. 해외의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아동 성범죄의 심각성과 그 처벌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연일 뉴스로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범죄 행위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다른 사회구성원들까지 모두가 함께 겪는 아픔이다. 이러한 범죄를 접할 때마다 폭력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가해자들이 잠시라도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과연 일어날 수 있었을까?

  성범죄나 학대와 같은 폭력 행위를 당한 피해자는 늘 어둠 속에 홀로 갇혀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앞으로 살아갈 희망을 잃고, 평생 악몽 같은 기억과 고통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항상 이러한 기억을 트라우마로 되뇌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겪은, 겪을 삶의 모습은 너무나도 슬프고 답답하다. 피해자의 가족과 친구들도 피해자의 고통 받는 삶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 친구들은 모두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다. 내가 아는 누군가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우리들은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인익기익(人溺己溺)이라는 말은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한 장면은 나의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저녁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하셨다. 무슨 일로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화가 난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번쩍 들어 창문 밖으로 집어던져 버리셨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핸드폰이나 리모컨과 같이 손에 잡히는 물건을 집어던지곤 하셨다. 나의 어린 마음에 이것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 같다. 지금도 누군가 싸우거나 크게 소리를 지르면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알 수 없는 ‘쿵쿵’ 소리가 나에게는 들린다. 그리고 나는 손톱을 물어뜯거나 다리를 떠는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심할 때는 울음을 터뜨린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나에게 폭력적이었다. 지금은 아버지가 무언가를 던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내가 점점 성숙해지면서 가족들 사이에도 대화가 많아졌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와 가족들 모두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행복이다. 그렇지만 내 마음 속의 흉터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부모로부터 폭력 행위를 당하거나 성범죄, 학대를 받는 등의 끔찍한 경험은 없지만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기억 하나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크나큰 고통이 될 수 있다. 뉴스에서 언급된 폭력의 피해자, 성범죄의 피해자, 학대의 피해자는 얼마나 아플까? 엄마에게, 아빠에게 사랑 대신 아픔을, 관심 대신 무관심을 받는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폭력은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당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준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들이 가진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레시피가 따로 없는 최고의 요리 레시피가 될 수 있다. 작은 노력과 실천들 하나하나가 모여 폭력 없는 사회라는 진수성찬을 만들 수 있다.

하다솜(경찰학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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