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선물보다 값지고 소중한 추억
우승 선물보다 값지고 소중한 추억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8.21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억은 하루하루의 연속이며 그 하루는 세월 속에 잊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각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저마다의 기억들이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혼재되어 저장된다. 나 역시 ‘용돈을 열심히 모아 갖고 싶던 MP3를 샀을 때’, ‘소중히 여긴 인형을 억지로 동생에게 양보해야 했을 때’, ‘대회에서 우승하여 학교 대표로 상을 받았을 때’ 등의 많은 기억이 행복, 슬픔, 창피함, 소중함 등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과 함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특히 초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 날의 그 일은 우승 선물보다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매우 좋아하여 체육대회가 다가오면 대부분의 종목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기로 유명했다. 초등학교 2학년 체육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줄다리기, 청·홍판 카드 뒤집기, 장애물 달리기, 박 터트리기 등 다양한 종목들에 참여하여 활약을 펼쳤다. 특히 체육대회의 꽃인 계주에서 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날아다녔다. 우리는 반끼리 6명씩 한 조로 각자 출발선 위치에서 기다렸다. 출발선에 서서 총소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몇 초 동안의 긴장감은 심장 소리가 응원 소리를 집어삼킬 만큼 컸다. 총소리가 나자마자 첫 번째 주자가 쏜살같이 달려 1등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간에 배턴(Baton)을 떨어트려 3등으로 뒤처져 버렸다. 우리 팀의 배턴을 건네받았을 때 내 몸은 자동으로 튕겨 나갔고 우레와 같은 우리 반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3등에서 1등, 그야말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만들었다. 그날은 학교 전체가 청팀·백팀으로 나뉘어 열띤 응원으로 후끈 달아올라 가을의 선선함도 잊을 정도였다. 그 열기 속에서 우리 반은 개별 종목 우승과 더불어 반 종합 우승까지 차지하였다.

  반장이었던 나는 학급대표로 상을 받기 위해 떨리는 마음과 상기된 기분을 겨우 진정 시켜 단상 위에 올랐다. 상을 받고 기쁜 마음에 가족들을 향해 브이(V)포즈를 취하려고 운동장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임신 중이긴 했으나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체육대회의 뜨거운 분위기를 함께 즐기셨는데 갑자기 사라지니 덜컥 불안했다. 드라마에서 봤던 좋지 않은 상황들만 자꾸 상상되어 우승의 단맛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한 채 단상에서 발을 헛디딜 정도로 재빠르게 뛰어 내려왔다.

  체육대회를 마무리하고 사촌 언니와 함께 어머니께서 계신 병원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때가 세상에서 제일 초조했던 시간이었다. 곧바로 어머니께 달려가 보니 동생들을 낳았을 때만큼이나 많이 지친 모습이었지만 나를 반겨주시고 안아주셨다. 그러면서 계주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말씀해주셨다. 그때의 나는 자랑스러운 모습을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었는데 동생 때문에 나에게 집중하지 못한 것을 서운해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어머니께서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셨던 것에 대한 안도감이 뒤섞여 울컥했었다. 다행히 어머니 배 속에 있던 아기는 내가 생각했던 상황과는 달리 예정 시간보다 빨리 태어난 것뿐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동생을 보러 노래를 부르며 특유의 발랄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유리창이 내 입김으로 뿌옇게 서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꼼지락거리는 동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동생들이 생길 때마다 “또 동생이에요?”라며 부모님께 평소보다 투정과 어리광을 많이 부렸다. 아마도 난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욕심쟁이 아이였나 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동생들이랑 함께했던 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사사건건 자랑하곤 했다. 겉으로는 동생들이 생기는 것을 싫어했지만 알고 보면 동생들을 가장 좋아하고 갖고 싶었던 모순덩어리였다.

  그때 태어난 막냇동생은 훌쩍 자라서 어느덧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마냥 해맑고 놀기를 좋아했던 나는 벌써 스무 살이 되었다.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하는 세 동생을 거느린 장녀라는 부담감에 어깨가 무겁기만 하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들은 부모님께 말하기 곤란한 고민을 서로 얘기하고 문제들을 헤쳐 나간다. 지금은 각자 해야 할 일과 생활 패턴이 달라져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과거를 망각 속에 묻어두기도 하지만, 먼 훗날 모두 성인이 되어 멀리 떨어져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도 언니와 동생으로, 때론 친구로 네 자매가 함께 써 내려간 하루하루는 세월 속에 기억될 것이다.

전가연(행정학과·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 대표전화 : (055)249-2929, 249-2945
  • 팩스 : 0505-999-211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은상
  • 명칭 : 경남대학보사
  • 제호 : 경남대학보
  • 발행일 : 1957-03-20
  • 발행인 : 박재규
  • 편집인 : 박재규
  • 경남대학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2020 경남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