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오월 이야기
1980년 오월 이야기
  • 이하영 기자
  • 승인 2020.05.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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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도청 앞 2만여 명의 시민
                                                                                                              전남 도청 앞 2만여 명의 시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 등 따스한 기념일로 가득한 5월에 잊어선 안 되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깨우치게 해준 5·18 민주화운동이다. 5·18 민주화운동은 긴 세월 동안 국민의 가슴속 깊이 자리했고,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그간 사건을 보는 시각에 따라 광주사태·광주민중항쟁·광주민중봉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1988년 이후 ‘5·18 민주화운동’으로 공식화되었다. 지워지지 않을 역사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해본다. / 사회부


● 5·18 민주화운동 발단

  1979년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헌법 일부 효력을 일시 정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 유지하는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최규하는 유신헌법 아래 대통령 선거 시행을 선언하고 단독 후보로 출마해 우리나라 10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전두환 보안 사령관을 중심으로 군사 반란 쿠데타가 발생하여 최규하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가진 학생들이 1980년 봄을 시작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계엄령 해제와 정부 주도 개헌 반대를 주장했다. 이에 5월 15일 신현확 국무총리가 연말까지 개헌안을 확정하고, 사회 안정 시 계엄령을 해제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결국, 학생들은 상의 끝에 시위를 자진 해산했다.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령 확대 조치 후, 전국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다. 그런데도 광주에 위치한 전남대학교 학생들은 학교에 모여 시위를 이어갔다. 군사정권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군대의 폭력 아래 사망하는 학생들이 발생하자 분노한 광주 시민들도 시위에 참여하여 규모는 점차 커졌다.

  군사 쿠데타 정부는 5월 21일 공수부대를 퇴각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노한 광주 시민은 저지선까지 돌진하였고 공수부대의 첫 실탄 사격이 시작됐다. 국군이 무장한 채 국민을 향해 총을 쏴 시민들은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동시에 군사정권은 모든 통신과 교통수단을 끊어 광주 시민을 고립시켰다.

  계엄군은 5월 26일 탱크를 앞세워 진압 작전을 펼쳤고, 시민군이 주둔한 도청 앞을 포위해 항복을 권유했다. 그러나 시민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계엄군은 공수부대를 도청 안으로 투입해 시민군을 학살하였다. 결국, 계엄군은 진압에 성공하여 도청을 점령하고 작전은 종료되었다.


● 40년이 지난 광주는 여전히 아리다

  우리나라 국회는 1990년 1차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함으로써 5·18 민주화운동 관련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후 7번의 보상 절차가 이어졌고, 보상법은 2014년 12월 30일 마지막 개정이 이뤄졌다. 광주시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보상 인원은 4,926명이다. 총보상액 약 2,510억여 원 규모다. 보상금은 전액 국비로 피해자에게 지급하며 보상심의위원회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보상자가 사망했을 경우 유가족이 받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발간된 회고록에 헬기 사격을 증언하던 고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공판 쟁점은 광주에서 헬기 사격 여부다. 또, 평화봉사단 단원 자격으로 광주에서 머물렀던 데이비드 돌린저가 재판 증인으로 참석한다.


● 그리워질 오월 순간

  어김없이 광주에는 따스한 5월이 찾아왔다. 독재 정권에 저항한 광주에는 민주화운동 역사가 깃들어 있다. 긴 시간이 지나도 광주 지역 주민을 제외하곤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은 전두환 정부가 민중을 탄압한 군 기록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처량한 우리나라 현대사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 전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지난 13일부터 시작해 10월 31일까지 개최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특별전은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외 4곳에서 공동으로 주최한다. 전시 물품은 기자들이 믿을 수 없던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적은 취재 수첩과 메모 5점, 어린 학생과 대학생 그리고 일반 시민이 기록한 일기 15점이다. 서울 전시가 특별한 이유는 광주에서만 전시되던 자료를 처음 공개하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 기록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각 정부 시각을 알 수 있다.

  ‘오월 그날이 다시오면’ 3층 기획전시실에는 여러 기록물 그리고 실물자료를 통해 진실을 세상에 규명하기 위한 역사를 한눈에 알아보는 게 가능하다. 1층 ‘정부 기록 속의 5·18 전시’는 최초로 세계기록유산 10여 점이 전시되고 국군기무사령부가 앨범으로서 보관하던 기록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한다.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온 국민이 5·18 민주화운동은 광주 역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임을 공감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1980년 오월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 중 하나다. 우리 지역에서도 자랑스러운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바로 3·15의거이다. 마산 시민이 3·15 부정선거에 분노해 의거를 일으켰다. 4·19혁명의 도화선으로 연결돼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우리는 이전 세대가 직선제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만개하기 위해 노력한 여러 비극을 잊어선 안 된다.

  5·18 민주화운동은 오늘날에 이르러 1987년 6월 항쟁과 1997년 법정기념일 지정 그리고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황금연휴가 많은 5월 신군부 세력에 대해 ‘유신 세력 척결, 비상계엄 철폐’를 요구하며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용감한 시민의 숭고함을 더해 보는 건 어떨까.

허지원 기자 2019110367@hanma.kr
이하영 기자 rigiza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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