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3·15 청년 문학상 현상 공모 - 시 당선작 '마지막 항해'
제1회 3·15 청년 문학상 현상 공모 - 시 당선작 '마지막 항해'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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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당선: 이은지(경남대학교 국제무역물류학과·4)

 

마지막 항해
                                              
늙은 선장이 마지막 항해를 떠난다.
선용품과 항해사의 목록을 훑고
선원들에 엄숙한 순항의 기원을 외친다.
단단히 동여맨 홋줄을 풀고, 바다의 기류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다.
선박 레이더에 바닷속 장애물은 없지만,
바다의 날씨는 해적처럼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바람을 막아줄 곳 없는 망망대해가
돛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지만
역풍이 불게 되면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된다.
노련한 선장이 조타륜을 붙잡고, 항해사는 덮쳐올 조류를 해석한다.
그들이 낯선 조류를 제대로 타지 못하면
바다에 배가 좌초될 수 있는 덜미를 내어주는 꼴이 된다.
선원들은 항해사의 호에 맞춰 돛을 좌로 40도 꺾는다.

그들의 목적지는 산 페드로항이다.
날이 어둑해지면 배는 속도를 줄이고
선원들의 축배가 시작된다.
술잔이 달빛을 받아 빛날수록 선원들은 취하는 걸 즐긴다.
선용품으로 챙긴 럼주가 금세 바닥나고
짐칸의 럼주까지 몰래 꺼내와 흠뻑 마시면
선장은 못된 미소로 아량을 베푼다.
그들은 몸을 뉠 수 있는 한 칸짜리 침대와
일지를 적을 수 있는 세 뼘의 책상만 있다면
바다를 제 어머니 품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상급 선원은 지친 선원에게 럼주에 물과 설탕을 섞어 먹인다.
긴 항해가 될수록 바다는 선원의 상태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바다는 지친 선원에게는 자비는 베풀지만,
자신을 두려워하는 선원은 가차 없이 낙오시켜 버린다.
바다는 누구보다 제 위를 누벼야 할 사람을 잘 안다.
목적지인 산 페드로항이 머지않았다.
바다가 제집인 선원들은 육지에 내려도 며칠간
머릿속이 두둥실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육지의 여자를 만나고 맛있는 술을 마셔도
바다 위를 거니는 설렘과 그곳에서 마시는 달달함이 없다.
선원들은 육지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 품으로 돌아간다.
멀리멀리 자신의 마지막 항해를 위해서

 

 

3·15 청년 문학상 시 본심 심사평

 새벽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찬물 세수 한 뒤 본심 심사평을 씁니다. ‘제1회 3·15 청년 문학상’에 대한 문학적인 레토릭이 아닙니다. 제1회라는 첫 장을 기록하는 심사위원의 각오쯤이라고 생각해주십시오.

 예심심사를 맡은 이재성 시인과 첫 회이니만큼 여타한 문학상과는 다른 ‘청년’을 강조한 작품에 좋은 점수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건 대학 문학상 수상자는 이내 등단의 길을 걷겠지만, 그것보다는 청년의 가능성, 도전성을 보여주는 작품은 3·15의거 예순 해를 맞는 정신과 통하기 때문입니다.

 예심에서 본심으로 넘어온 작품은 ‘청춘’, ‘비누’, ‘아리랑’ ‘아크릴 아이스’, ‘마지막 항해’ 등 5편이었습니다. 다 당선작으로 뽑아도 좋았지만 나름대로의 편차가 있었습니다. 시적 편차는 투고한 청년의 문학성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청춘’, ‘비누’의 첫 결락은 함께 보낸 작품은 수준이었습니다. 전체로 자신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시는 즉석식품이 아닙니다. 늘 써서 장독에 푹 삭힌 슬로푸드와 같아야 합니다.

 ‘아리랑’, ‘아크릴 아이스’와 ‘마지막 항해’ 세 작품을 두고 고민이 깊었습니다. ‘아리랑’은 아리랑을 보는 새로운 시선이 돋보였습니다. 허나 주제와 문체의 나이가 달랐습니다. ‘3·15 청년 문학상’ 청년답지 않는, 문체가 감점을 받았습니다.

 ‘아크릴 아이스’는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당장 등단 절차를 밟아도 충분했습니다. 소재가 신선했고, 긴 시를 짧은 문장으로 끓고 가는 힘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항해’는 청년들이 접근하지 않는 소재의 독창성과 전문적인 단어를 풀어내는 주제가 빛났습니다.

 오래 고민하다, 가장 청년다운 힘을 보여준 ‘마지막 항해’를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모든 투고 청년들과 더 많은 청년들과 ‘3·15 청년 문학상’에서 만나길 희망합니다. 당선작의 주인공에겐 축하의 박수를 보냅니다. 코로나19 위기의 시대, 시가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길 바라며.

정일근(시인, 경남대 석좌교수)

 

3·15 청년 문학상 시 당선 소감
                      
 어째 시를 쓰는 것보다 수상 소감문 적는 것이 내게 더 태산같이 느껴진다. 코로나19 사태로 시국이 이러다 보니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기쁘기도 하지만, 덤덤한 마음이 더 컸다. 명예와 축하는 그들끼리 놔두고, 방에서 나는 나대로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 이번 작품을 쓰는 과정에는 새로운 시적 주제와 소재를 찾는 것에 열중했다. 그동안의 내 취약점이자 한계점이라면 나는 안정된 글쓰기를 즐겼다. 내게 익숙한 풍경의 시를 써왔고, 낯선 소재에 대한 분해와 해석을 어려워했다. 교양수업 과제로 5년 여 만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문학계는 작가의 새로운 시각과 본연의 개성을 환영한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문학도 작가의 지문 같은 예술성과 흉내 낼 수 없는 독자성을 원한다. 이번 대회가 내게는 그러한 결심을 실행한 터닝포인트다. 기존에 내가 주로 다루는 친숙한 소재의 시와 전혀 다른 소재의 시를 동시에 제출했다. 결과는 후자 쪽이 선택받았다. 자신 있는 내 라운드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한 기분이다. 감정의 막연함에서 벗어난 구체성과 전문성을 문학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내 전공지식에 문학을 접목한 ‘마지막 항해’가 당선된 것을 시발점으로 소재의 편식 없이 다양한 주제로 시 쓰기에 대한 역량을 키우고 싶다. 내 마음에 뿌리가 되는 서정시를 바탕으로 낯선 소재가 피부에 스며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은지(경남대학교 국제무역물류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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