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아이와의 잊지 못할 추억
어린 시절 아이와의 잊지 못할 추억
  • 언론출판원
  • 승인 2020.04.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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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길지 않은 내 인생 곡선 역시 그랬다. 기분이 너무 좋아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나의 기쁜 소식을 전할 만큼 즐거운 일을 누리다가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슬픈 일도 겪었다. 기쁜 일은 함께 기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하지만 슬픔은 함께 나누기가 많이 힘들었다. 특히 나에게. 그래서 슬픈 일은 극복하기만 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단이 되기도 한다.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던 내 안의 슬픔, 그중 하나가 살면서 우연히 친구가 된 한 아이와의 잊지 못할 추억이다.

  어린 시절,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부모님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그 때문인지 사회성도 떨어지고 소심했던 나는 학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서 집으로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나를 또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는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지금 떠올리면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보육원 출신 여자아이였다. 나는 방과 후 집에 오면 아파트 입구 주변에서 땅따먹기나 술래잡기를 하면서 자주 놀고 있는 그 아이와 아이들을 보았다. 어느 날 그 아이는 내가 안쓰러워서일까, 놀이 인원수가 모자라서일까,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나를 보자마자, “야! 너 여기에 서봐.”라며 나를 놀고 있는 아이들의 무리로 불러들였다. 그날을 기점으로 점차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 말도 걸어 볼 용기조차 없었던 내 어두운 성격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상당히 밝아졌고, 혼자 있는 날보다는 친구와 함께 웃으면서 동네를 돌아다니는 날이 늘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있다는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보육원 출신 아이와 같이 논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알게 되었다. 어머니 보시기에 일탈적인 보육원 아이들과 내가 어울리는 것이 걱정되셨는지 처음에는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내가 그 아이와 붙어있는 시간이 늘자, 조용히 나를 불러 “친구를 많이 사귀는 건 좋지만 너무 그 아이와 친해지지 말거라”고 하셨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말씀대로 그 아이를 조금씩 멀리하기 시작했다.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것도, 옆 동네로 놀러 가자는 제안에도 다른 일로 바쁘다면서 거절하기도 했고, 일부러 그 아이가 없는 길로 돌아가기도 했다. 자신에게 손을 뻗어준 친구를 멀리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이사를 가게 되었고 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느라 바빠 점차 그 아이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 갔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시기가 왔을 즈음, 나는 학교 수행평가 자료사진을 찾으려 사진첩을 뒤적였다.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자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에서 친구들과 놀던 추억이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그 아이가 생각났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계속 거기에 지내려나, 새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쯤 독립 준비를 해야 할 시기일 텐데....... 갑자기 그 아이가 만나고 싶어서 나는 주말에 곧장 과거에 살았던 동네로 달려갔다. 기억을 더듬어 그 아이가 살던 고아원으로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다. 불쑥 찾아온 나를 맞아준 보호소 원장님은 친절하게 차를 대접해 주시면서 찾아봐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원장님과 서류를 찾아보면서 확인했으나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원장님은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 이 애 아니니?”라고 물으며 한 단체 사진을 가져오셨다. 크기가 작아 분별하기 힘들었지만, 이목구비를 관찰하니 내가 찾던 아이의 윤곽이 보였다. 내가 긍정을 표하자 원장님은 표정이 어두워지시면서 오래전에 사고에 휩쓸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날 달래주셨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함께한 친구가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아 한동안은 크나큰 슬픔에 잠겨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의 충격은 하나의 슬픈 과거로 여길 정도로 상당히 진정되었다. 보육원 아이와 만나 달라진 것은 인간관계에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길을 지나갈 때마다 남보다 더욱 차를 조심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 덕분인지 나는 작은 교통사고조차 겪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했을 때는 하나같이 나의 세심한 주의력으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나는 어이없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여기에 없는 보육원의 아이가 지켜준 것도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산책할 때면 가끔씩 그 아이가 떠오른다. 내 안의 슬픔이란, 나의 내면을 성장시켜준 보육원 아이와의 이별로 인한, 다시 만나지 못한 아쉬움과 그 시절 그 아이와의 추억이다.

김예린(산업디자인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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