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윤이상 선생의 귀환, 오월은 영원할 것이니!
[정일근의 발밤발밤] 윤이상 선생의 귀환, 오월은 영원할 것이니!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4.0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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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형. 지난달 30일 통영 국제음악당에 다녀왔습니다. 그날,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2018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식에 맞춰, 조용히 함께 돌아온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의 유해가 통영에 안장됐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식어 버린 심장을 뛰게 하는 선생의 작품 ‘광주여 영원히’가 연주됐습니다.

  그랬습니다. 선생이 돌아오셨습니다. 유해가 돌아오고 따라서 음악이 돌아왔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사상의 벽 때문에, 살아서도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했는데 죽어 23년 만에 오셨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는 반백 년에 가까운 49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든 민족적이든 지독히 아픈 ‘귀환’이었습니다.

  선생의 묘소는 통영국제음악당 한 귀퉁이 통영바다가 환히 보이는 곳에 모셔졌습니다. 선생의 소원처럼, 평생 그리던 통영 바다를 마주 보며 잠드셨습니다. 모쪼록 선생의 영면이 평화롭길 바랍니다. 묘역에는 너럭바위가 하나 놓였고, 묘비명인 듯 ‘처염상정’(處染常淨)이란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연꽃은 진흙탕 뻘에서 피어나지만 연꽃은 순결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입니다.

  선생의 삶은 사람을 사람답게 품어 주지 못하는 이데올로기의 풍찬노숙 시대를 살았으나, 선생의 음악은 어디든 물들지 않고 영원하다는 뜻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너럭바위 곁에는 키 작은 해송과 향나무가 고향 동무처럼 서 있었습니다. 눈시울은 뜨거워졌지만 영혼은 편안했습니다. 선생에게 고향이 베푼 유일한 호사는 저무는 통영 바다였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습니다.

  J형. 그리고 그날 저녁, 독일 ‘보훔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개막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 첫 곡이 윤이상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였습니다. ‘광주여 영원히’는 윤이상 선생의 뜨거운 교향시며 1981년에 작곡되었습니다. 독일에서 5·18 광주 민주화 항쟁 소식을 생생하게 접한 독일의 윤이상 선생이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로하며 오선지를 채워나갔을 것입니다.

  J형도 아시다시피, 1981년 당시 한국에서 ‘5월 광주’는 ‘금기어’였습니다. 하지만 조국의 비극을 전해 들은 윤이상 선생은 광주의 눈물과 분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펜을 들고 오선지를 채워나갔습니다. 그건 군홧발로 민중을 짓밟은 군사 정권에 대한 분노였고, 분노보다 용기 있는 애국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주 시간이 전체 20여 분에 이르는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저는 그 곡이 세계적인 거장 피카소가 조국 스페인에서 자행된 참사를 기록한 작품 ‘게르니카의 비극’에 견줄 수 있는 애국심이라고 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연주에서 저는 군홧발 소리,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총칼에 항거하는 민중의 함성을 들었습니다. 그날 선생과 우리는 한배를 탔었습니다. 그 배의 선장은 윤이상 선생이었습니다. 조타륜을 잡은 그는 관객을 태우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음력 이월 열나흘 달빛이 통영 바다를 금빛으로 적셨습니다. J형, 나머지 이야기는 만나서 하겠습니다. 삼월이 가고 사월이 오고, 사월이 가면 다시 오월이 찾아올 것이니까요.

시인,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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