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COVID-19)’가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멈춘 지 오래다. 힘들고 어렵지 않는 분야가 없다. 제일 힘든 사람들은 바이러스의 고통 속에서 투병 중인 사람들이겠지만, 전 국민이 그에 못지않게 힘든 ‘지금 그리고 여기’의 고통을 견디고 있다. 한국 사회는 한 마디로 ‘혼돈(混沌)’의 그물에 갇혀 있다. 도망칠수록 쪼여오는 그물이다.
같은 뜻의 ‘혼돈(渾沌)’이란 동물이 있다. ‘중국 신화 속에 천지개벽 때 살았던 동물’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묘사돼 있다. ‘개의 모습으로 긴 털이 나 있고 발톱이 없는 발은 곰의 발을 닮았다’고 한다.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나, 하늘을 보고서 웃는다고 한다. 2020년, 정체를 알 수 없는 혼돈(渾沌)이란 짐승이 우리를, 세계를 덮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악몽은 계속된다. 이게 꿈이라면 깨길 바라며, 지구란 팽이를 멈출 수 있다면 뛰어 내리고 싶다. 나는 어느 신문의 칼럼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두문불출’이 약이라고 권한 적이 있다. 허나 두문불출도 오래 되풀이하다 보니 ‘코로나 블루’란 우울증세가 생긴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작은 일에까지 예민해진다.
세월이 약이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불치병! 그러나 인류에겐 지혜가 있었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을 사망케 한 ‘흑사병’ 속에서도 생존의 등불이 꺼진 적은 없다. 나는 이 두문불출을 이미 길게 잡았다. 2020년 이 한 해는 ‘정중정(靜中靜)의 시계’를 차고 다니기로 했다. 서둘지 않기로 했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지내보기로 했다. 그런 일에서 나름 즐거움을 얻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지 않기로 했다. 좋은 말로, 필요한 사람에게 모두 양보하기로 했다.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 구입해 놓은 마스크 몇 장이면 족하지 싶다. 사실 마스크는 혼돈의 괴물에게 경고하는 ‘부적’에 불과하다. 초대 국립생태원장을 지낸 최재천 선생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파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 비교적 안전한 전염병이란 말이다.
대부분 시간을 집에서 책과 라디오, 시를 친구 삼아 보내고 답답하면 타인에게 넉넉한 거리(距離)를 두고 산책도 즐긴다. 쑥을 캐고 꽃차를 만들어 마신다. 언제 바닷가로 나가 낚시를 즐길 생각이다. 김재진 시인은 ‘누구도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내가 안전하고, 완전한 혼자일 때 누구에게도 위험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가 들려주신 말씀이 있다. 7년 가뭄에 하루도 비 오지 않는 날이 없고, 7년 장마에 볕이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고 했다. 절망은 없다는 말의 할머니식 비유였을 것이다. 혼돈이란 동물이 던지는 촘촘한 그물 속에도 빈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긴, 총성 없는 전쟁에.
석좌교수·청년작가아카데미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