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의 계열인 ‘박사방’을 운영해온 20대 조모 씨와 일당이 검거되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협박해 성 착취 영상물을 찍게 한 뒤 모바일 메신저 중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통했다. n번방의 성 착취 영상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텔레그램에 점차 모이면서 방은 커졌고 특정 인원에 도달하면 주기적으로 해당 대화방을 폐쇄하며 다시 만들었다. 폐쇄된 방을 통해 성 착취 영상을 볼 수 없게 되자 기존에 저장된 영상을 가지고 다른 사이트에 올리는 2차 피해가 생겼다. 1차 유통경로에서 얻은 불법 촬영물 ▲n번방 영상을 백업해둔 방 ▲여대생 몰카 ▲지인 능욕 ▲연예인 합성물과 같은 다양한 제목으로 재판매된다. n번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2차 유포를 통한 조직적인 성범죄로 확장되었다. 이번 사건과 온라인에서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 유형을 알아보고 사회 구조를 진단해보자. / 사회부
# 텔레그램_n번방_사건이_무엇인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란 다수의 여성을 협박해 얻은 성 착취물과 신상 정보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포한 사건이다. 대화방마다 고유 번호가 붙어져 n번방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분노한 이유 중 하나가 텔레그램 n번방 피해자는 주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n번방 운영자로 알려진 ‘갓갓’은 자신의 노출 사진을 올리며 이른바 ‘일탈계’, ‘살색계’ 계정에 해킹 링크를 보냈다. 그렇게 확보한 신상 정보를 인질 삼아 일탈계에 올린 사진을 지인과 가족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얼마 전 검거된 조 씨는 ‘박사’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9월부터 텔레그램 채팅방인 ‘박사방’을 별도로 운영해왔다. 조 씨는 “내가 스폰해 줄 테니 성 동영상을 찍어봐.”라며 피해자를 유인했다. 행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공익 근무 요원을 통해 피해자 신상 정보를 불법으로 확보 후 신상 정보와 동영상을 가지고 협박을 일삼았다.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만 총 74명이며 성 착취 영상물을 보거나 유포한 사람 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한편 대대적 수사 전개와 국민적 공분 속에서 성 착취물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자살했다. 지난 27일 경찰은 서울 영동대교 강북 방향 중간 지점에서 40대 직장인 남성이 유서를 남기고 투신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발표했다. 경찰 조사에 의하면 “박사방에 돈을 넣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다.”는 유서가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 처벌은_가능한가
현행법상 성인의 성 착취물을 촬영·배포하지 않고 소지만 한 경우 처벌 조항이 없다. 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소지했을 경우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1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 심리학과 교수는 “단순히 n번방에 입장한 사실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2월 8일 대법원은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더라도 피해자를 협박하여 피해자 스스로가 자신의 신체를 만지게 하는 행위 또한 강제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n번방 사건이 단순한 불법 촬영물 유포죄가 아닌 엄연한 성범죄 성격에 해당한다. 최초롱 변호사는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의 죄가 단순히 불법 촬영물 배포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고 ‘강제 추행죄’ 자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지난 5일 국회는 ‘n번방 방지법’을 입법하면서 디지털 성범죄 전담부서 신설과 국제공조수사, 양형기준 강화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 조직은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책을 마련하는 과정과 법 개정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며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대중은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신고하고 가해자가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해시태그 캠페인 등 지속적인 사회적 참여를 해야 한다.
# 사이버_성폭력을_되짚어보자
온라인 그루밍이란 ‘길들이기’ 의미로 미숙한 사람이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에게 접근해 애착 관계를 형성한 뒤 성을 착취하는 유형이다. 우선 사이버 공간에서 가해자들은 다정한 말로 아동·청소년을 길들인다. 이후 피해자가 직접 성적 촬영물을 제작해 전송하게 만들고 오프라인에서는 조건 만남을 유도한다.
우리가 공공장소를 이용하면 ‘불법 촬영은 범죄입니다.’라는 문구가 자주 보인다. ‘불법 촬영’이 발생하는 피해 장소가 공공화장실부터 시작해 버스, 대학, 지하철, 탈의실 등으로 다양하다. 불법 촬영의 공포는 이미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사회 불안감을 조장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크고 작은 구멍이 “저게 설마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라며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실제로 트위터와 텀블러 등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는 다중 이용 화장실이나 대중교통에서 불법으로 촬영한 영상을 쉽게 찾는다.
이번 n번방·박사방 사건도 가해자가 트위터에서 피해자에게 접근해 개인 정보를 빌미로 협박 했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약점을 이용해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조종하고 성 착취 영상을 생산하여 텔레그램에 유포하며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다. 유포 협박은 1차 피해로 끝나지 않고, 2차 피해로 협박을 통한 성매매와 강간 등이 오프라인에서 이어진다. 익명의 A는 “헤어진 이후 연락을 무시했더니 만나던 동안 몰래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지인들한테 보내겠다고 협박했어요.”라며 촬영물이 인터넷과 지인들한테 유포될까 봐 두렵다고 호소했다.
사이버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매매는 사회 관계망 서비스를 악용해 더욱 악질적으로 변모한다.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가 변화한 디지털 성매매 현장을 똑바로 직시하게 했다. 인류 역사에서 특정 성거래 틀을 혁파하지 못한 이유가 성매매 수요와 공급이 맞물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성적 촬영물은 가치 있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상품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상품에 대한 대가를 지급한 소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에서 성매매와 성 착취 문제점은 새로운 사회적 물결을 이룰 만큼 대중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다. 바로 n번방 사건에 269만 대중이 분노해 청원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성 착취 영상을 본 사람들도 가해자라는 인식 함양이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대책과 구조적 진단을 논의하며 ‘n번방 사건’으로 변화될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허지원·이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