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여태 ‘기자의 눈’ 코너에서 경제적 독립기를 계속해서 써왔다. 이번 칼럼도 혼자 살아본 후기나 늘어놓을 궁리나 하고 있었다. 글이 진부해지기 딱 좋은 시기였지만 특별히 신선한 소재가 생기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여태 기자는 글로 혼자 살아간다고 표현했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을 만나며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사는데 모순적이지 않나 싶으면서도 말이다. 결국엔 혼자라는 생각 탓이었을까. 이곳에 기자의 절실한 순간을 함께 해줬던 사람들에게 배웠던 삶의 의미를 담아보았다.
기자의 21살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전부였다. 그 나이에 왜 그 단어가 꽂혔던 건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일이 안 풀리거나 힘들 때면 혼잣말로 "삶이란..."이라는 말에 복잡한 마음들을 함축시켰다. 대답을 바라고 내뱉은 말은 아니지만 속으로 내심 기대했다. 누군가 답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결국, 혼잣말이 되어 입버릇이 되었을 때쯤이었다. 옆에서 누군가 “삶은 달걀이지.”라며 실없는 농담을 쳤다. 잡생각이 한 번에 날아감과 동시에 묵은 때가 벗겨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답이 없는 걸 알면서 왜 그렇게도 애타게 찾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삶은 달걀은 삶에 대한 첫 번째 답이자 버팀목이었다.
22살이 된 지금도 주위에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꽃집 사장님이 된 듯 하루하루가 향기롭다. 뭐든지 말하라는 든든한 친구,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먼저 안부를 묻는 친구, 누구보다 자주 만나는 학보사 가족들, 1년 넘게 일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비롯해 감사한 인연이 참 많다. 문득 ‘왜 나를 도와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작년 기자의 생일날,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생에게 갑자기 비싼 향수를 받은 것이 생각의 발단이었다. 도무지 이해 안 됐다. 이유를 물어보니 그냥 기뻐할 것 같아서라는 단순한 대답이었다. 그날 자기 전까지 계속 생각했다. 순진한 아이인가, 아니면 단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건가. ‘아,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어떤 생각이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꼭 알고 싶었다. 동생은 “저는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요. 그런 사람들한테는 다 줘도 아깝지 않아요.”라며 신선하고도 단단한 말을 했다.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 찰나에 기자는 삶의 두 번째 답을 찾은 듯했다.
현재는 삶을 상생이라고 일컫고 싶다.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을 만나 함께 살아가는 가치에 대해 배웠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그 누구도 배울 점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루살이 일용직의 딸에게 해주신 첫 번째 교육이었다. 그때는 이해하는 척했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