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2020, 자신 만의 달력을 만들어 보자
[정일근의 발밤발밤] 2020, 자신 만의 달력을 만들어 보자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12.0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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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이 나오는 시간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아라비아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1~12월 달이 있고, 달마다 28(윤달이면 29), 30, 31일이 있다. 그것에 더해서 일~토까지 요일이 있다.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한 재미없는 나열이다. 물론 달력에 국가기념일, 음력, 간지 등 다양한 콘텐츠가 들어있다. 대학은 대학대로, 종교기관은 끼리끼리 자신만의 달력을 필요하게 만들어 사용한다.

  어릴 적엔 달력이 귀해, 지역 국회의원이 선물하는 1년을 다 담은, 영화 포스터 크기의 달력이 있었다. 안방에 부쳐놓고 모든 가족이 그 달력을 보며 생활했다. 할아버지는 장에 나가면 책력을 사 오셨다. 책력은 ‘천체를 관측하여 해와 달의 운행이나 월식, 일식, 절기 따위를 적어 놓은 책’이다.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백과사전인 셈이었다. 옛말에 ‘책력을 보면서 밥 먹는다.’는 말이 있다. 춘궁기,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인디언 달력’이라는 달력이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달력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디언들은 달력을 만들 때 아라비아 숫자가 아닌, 인디언 부족 주위에 있는 계절과 풍경의 변화나 마음의 움직임을 핵심으로 보고 그달의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눈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지혜의 눈 둘 다 중요하게 여겼다. 인디언들은 달의 변화가 28일이었기에 열세 달 정도를 한 해로 보았다.

  인디언 달력은 부족마다 다른데 지난 11월에 대해 크리크 족은 ‘물빛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체로키 족은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 테와 푸에블로 족은 ‘만물을 거둬들이는 달’이라고 했다. 또 히다차 족은 ‘강물이 어는 달’, 위네바고 족은 ‘작은 곰의 달’, 키오와 족은 ‘기러기 날아가는 달’, 아라파호 족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12월을 체로키 족은 ‘다른 세상의 달’, 크리크 족은 ‘침묵하는 달’, 수우 족은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아라카라 족은 ‘큰 뱀코의 달’ 퐁카 족은 ‘무소유의 달’, 위네바고 족은 ‘큰 곰의 달’, 샤이엔 족은 ‘늑대가 달리는 달’로 불렀다. 나는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12월을 ‘무소유의 달’로 비유하는 것이 좋았다. 

  은현리에서 시를 쓸 때 ‘인디언 달력’을 흉내 내서 나만의 ‘은현리 달력’을 만들었다. 11월에 대해 ‘사람이 나무 앞에 함께 서는 달’이라고 했다. 나무 앞에 서서 새잎에서 꽃으로, 꽃에서 열매로, 열매에서 낙엽으로 나무가 걸어온 이 한 해의 길에 대해 감사하자는 달이었습니다. 그리하여 12월이 왔을 때 자신이 가졌던 것을 다 준 ‘나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묵상하는 달’로 불렀다.

  한마가족에게 권해본다. 자신만의 달력을 만들어 지인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연말연시에 변별성 없는 달력과 개진도진인 연하장 보다, 그 얼마나 소중한 마음의 선물이겠는가! 일 년 내내 반갑고 고마운.

시인·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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