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회 10·18 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엄마의 일기장'
제33회 10·18 문학상 현상 공모 - 단편소설 '엄마의 일기장'
  • 박수희 기자
  • 승인 2019.11.20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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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부문 가작: 정호진(행정학과·4)

엄마의 일기장

 

  평소 열지 않은 서랍을 뒤지다가 검은색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오래된 노트는 재질을 알 수 없는 천으로 마감된 겉표지가 오래되어 누런빛을 띠고, 먼지가 쪄들어 져 만들어진 거친 촉감이 불쾌함 갖게 만드는 모양새였다. 낯선 물건은 아니었다. 1년에 한 번씩, 아니면 2년, 3년 그보다 더 오래될 수도 있었고, 아닐 수도 있었다. 그 서랍 안에 있던 다른 물건을 찾기 위해서 열었다가 만나기도 하였고, 어릴 때 직접 그 노트에 낙서를 하던 적도 있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이 제 자리인 듯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놓여 있던 것 같았다.

  “엄마, 이것도 버릴까?”

  “이제 안 쓰겠지? 그럼 버리자.”

  동생이 대학생이 되면서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올해 초까지 동생이 쓰던 방은 처음에는 내 오빠가 쓰던 방이었고, 오빠가 군대에 가고 자립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생이 그 방을 이어받았다. 오빠와 동생의 물건뿐만 아니라, 아빠의 먼지 쌓인 바둑 교재들과 안 쓰지만 버리기 아까워 넣어둔 크고 작은 물건들이 그 방 곳곳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집을 떠나면서 오랫동안 치우지 않았던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대대적인 청소가 진행되었다. 동생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쓴 적 없는 조각칼과 멜로디언, 리코더들은 망설이지 않고 모두 버리는 대상이었다. 옛날 교과서들은 물론이고, 오빠가 두고 간 유행 지난 옷들도 다 버렸다. 내 방 미관을 해친다고 동생 방에 놓아둔 만화책들은 다시 하나하나 뽑아 권수대로 가지런하게 책장에 꽂아놓았다.

  한 명이 겨우 썼던 작은 방인데도 이 방안에는 우리 다섯 식구의 물건들이 숨겨져 있었다. 꺼내 보기 전에는 이런 물건이 여기 있었는지 잊고 있었던 것들도 많았고, 자주 봤는데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쳤던 것들도 있었다. 그 검은색 다이어리도 그런 물건 중 하나였다.

  잡동사니를 넣어놓은 그 서랍 안에는 옛날에 유행했던 동물 모자와 이젠 안 쓰는 CD 케이스가 있었고,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엄마가 작성했던 가게 장부 노트가 몇 권 있었다. 그 외에도 이제는 잊혀진 물건들이 한가득 들어가 있었는데 그 더러운 노트도 만지기 싫을 정도로 겉면이 오염되어진 채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더 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버리는 물건이구나 싶었다. 정이 붙은 것들도 버려야만 새로운 추억을 모을 수 있는 것인데 심지어 나는 그 물건에 추억조차 없었다. 펼쳐보게 된 것도 방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일기장 묶음 때문이었다.

  오빠와 내가 어릴 때 썼던 일기장들이 파란색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들어있었다. 일기는 버리는 게 아니라며 엄마는 그것들을 한 통에 모아서 계속 보관해 왔었다. 마지막으로 일기장을 읽어보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읽혀진 적 없던 어느 초등학생의 일기장 하나를 펼쳐 보았다.

 

  <1999년 8월 XX일>

  “태풍아, 물러가라!”

  “가라, 가랏! 난 태권도 파란 띠다, 안 무섭다!”

  태풍이 부는 어느 날이었다. 베란다 너머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오빠와 나는 태권도복을 입고 파리채를 하나씩 들고 태풍을 쫓아내겠다고 둘이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창문을 뚫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텔레비전에는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로 도로가 덮쳐지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번이나 반복되며 보도되고 있었다.

  “위험하니까 베란다 문은 열지 말고.”

  거실 창 아래로 나무가 머리를 흔드는 게 보였다. 빗물이 회초리처럼 꺾여서 창문에 부딪혀왔다. 밝은 우리 집과 다르게 세상 밖은 어둡고, 날카롭고, 시끄러워 보였다. 나는 베란다 문을 열고 나와 외부와 연결된 창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덮쳐왔다. 이번엔 방충망을 열고 팔을 뻗어 보았다. 거센 물줄기가 살에 닿는 감촉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시원했다. 아무리 태풍이 강해도 나를 날려버릴 순 없었다. 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나무와 달리 나는 스스로 바람과 마주 닿는 방향으로 팔을 흔들어 보았다. 바람길을 역행하는데도 저항은 없었다. 아니 살짝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이번엔 파리채를 창문 밖으로 흔들어 보았다. 팔과 다르게 얇은 파리채는 이대로 손을 놓아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게 만들었다. 덜컥 무서워졌다. 나는 얼른 방충망을 닫고, 나머지 창문도 순서대로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태권도복 소매가 살짝 젖어 있었다. 도복을 벗어 던지고 나는 엄마 옆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아빠는?”

  태풍이 다가오는 아침에 아빠는 집에 없었다. 직장에 간 건 아니었다. 사실 아빠가 집에 안 들어온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 아빠는 병원에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 나는 어렸고, 나에게 그 일화를 자세하게 얘기해준 사람은 없었다. 그저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는데 엄마의 표정이 안 좋았던 것만 기억난다.

  ‘진아야, 아빠가 사고 났어.’

  처음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엄마는 아빠가 사고가 났다고 말하며 텔레비전 옆에 놓인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엄마 손바닥만 한 두껍고, 커다란 검은색 휴대폰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빠가 일하러 가면 새로 생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아빠를 찾곤 했었다. 아빠는 일하러 갔는데 집에 휴대폰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에 집에 있어선 안 되는 물건이었다. 나는 엄마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그제야 엄마가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다. 아, 그렇구나.

  ‘아빠는 오늘 집에 안 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엄마를 보았다. 그날따라 집이 한없이 조용하게 느껴졌다.

  ‘응, 엄마도 지금 병원에 가보려고, 오빠 오면 같이 집 보고 있어. 밥해 놓았으니까 챙겨 먹고.’

  ‘응.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저녁에 돌아왔지만 아빠는 그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의 배가 불러오던 시기 동안 아빠의 부재는 계속 이어졌다. 여름 장마가 찾아오고, 초등학생이 방학을 맞이할 때까지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빠는 잘 있어.”

  지난달에 본 아빠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아빠는 아픈데 없이 멀쩡해 보였다. 다친 곳도 안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달라붙어 오는데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 배 위로 손을 올려보았다. 곧 느껴지는 움찔거리는 감촉이 오묘했다. 여전히 배 위에 손을 둔 상태로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동생은 언제 태어나?”

  나는 우리 집의 막내였다. 원래 막내는 집안의 예쁨을 독차지하는 대상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 집에 식구가 한 명 더 늘어난다는 게 이상했다. 배 위에 얹어진 손에는 동생이 여기에 있다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왔다. 울렁거리는 엄마의 배처럼 내 손바닥도 메스꺼운 떨림이 느껴졌다.

  “동생은 가을에, 아빠도 그때 올 거야.”

  아빠와 동생 중에 누가 더 먼저 집에 올까. 베란다 너머는 여전히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이 태풍이 지나가면 다시 여름이 시작된다. 무더운 더위가 지나면 선선한 바람이 찾아온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고, 아빠가 돌아온다. 엄마와 아빠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아빠가 없어서 불편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에겐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없으면 우리에게 밥을 차려줄 사람도 없고, 아침마다 예쁘게 내 머리를 묶어줄 사람도 없었다. 내 생활엔 엄마만 있으면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날도 우리를 지켜준 사람은 엄마였다. 강한 바람에 파리채를 놓칠까 무서웠던 태풍도 엄마가 있었기에 무섭지 않았고, 엄마가 있었기에 우리는 무사히 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아빠를 보는 건 마치 일상의 특별한 날 같은 그런 하루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아빠가 보고 싶어서, 아빠가 잘못될까봐 운 적이 없었다. 나한테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아빠가 없었어도 엄마가 아빠의 몫 이상을 우리에게 해주었다. 그래서 아빠가 없던 그 몇 개월이 나에게 특별하지도 않은 그저 여느 날과도 다름없었던 그런 일상과도 같은 시절로 기억된다.

 

  <1999년 9월 XX일>

  오늘은 운동회 날이었다. 우리 학년은 꼭두각시 공연을 준비했다. 족두리를 하고, 빨간 치마에 오색 빛 색동저고리를 입고 남자아이와 짝을 이루어서 춤을 추는 거였다. 우는 흉내를 내다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서 눈을 마주치고, 왼쪽으로 돌려서 눈을 마주치고, 내가 마치 인형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 같았다.

  “엄마 나 예뻐?”

  “응, 예뻐.”

  나는 색동옷을 입고 한 바퀴 돌아보았다. 치마가 너울을 그리며 살랑거렸다. 엄마는 매일 내 머리를 아주 예쁘게 묶어 주었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진아가 예쁘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고 온다고 항상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내 어깨는 으쓱 올라갔다. 아침마다 고무줄을 가지고 엄마 앞에 앉으면 엄마는 칙칙 물뿌리개로 머리에 물을 뿌린 다음에 잔머리가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나로 꽉 묶어줄 때도 있고, 가르마를 타서 양 갈래로 땋아 주기도 했다. 머리 고무줄도 여러 개인데 그날그날 다른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학교에 가면 내가 보기에도 내가 제일 예뻤다. 이번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나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집에서만 하더라도 예쁜 내 모습에 행복했었는데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올림머리에 족두리, 색동저고리와 빨간 치마, 그리고 하얀 스타킹. 그게 내 모습이었다. 나는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다른 애들의 차림새를 다시 확인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은 모두 하얀색 한복 속바지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속바지가 없으면 흰 스타킹도 괜찮다고 했지만 교실 안에서 스타킹을 신고 온 애는 나밖에 없었다.

  내 머리가 제일 예쁜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나도 속바지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싶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교실 밖에서 멍하니 서 있어야 했다. 죄지은 아이처럼 발이 바닥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우리 집은 아빠가 병원에 있어.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어. 엄마는 나에게 속바지를 사줄 수 없었어. 선생님은 스타킹도 괜찮다고 했어. 속으로 몇 번이나 내가 스타킹을 신고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시키고 나서야 나는 교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를 보는 애들은 아무도 없었다. ‘넌 왜 스타킹을 신었어?’라고 물어보는 아이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운동회 날 아침, 그날따라 엄마가 살짝 미워졌었다.

  운동회가 시작되었을 때는 내 기분도 나아져 있었다. 스타킹을 신고 온 아이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기분은 금세 다시 회복하였다. 꼭두각시 공연을 마치고 우리 학년 구역에 앉아서 운동회를 지켜보고 있었다. 옆에선 합주단의 응원 소리가 들려왔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 왔어요. 백팀이 이겼다고….

  익숙한 동요의 노랫말은 자전거가 전화기로 바뀌어 있었고, 처음 들어보는 우스꽝스러운 가사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신선하게 느껴졌다.

  나는 목을 길게 뽑아 운동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학교 주변에는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엄마를 찾고 있는데 짝꿍 현정이가 어깨를 콕 찔러왔다.

  “너희 엄마 왔어?”

  “모르겠어, 안 보여.”

  나는 몇 번을 더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엄마를 찾지 못했다. 이미 좋은 자리는 상당 부분 다른 가족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어제 엄마가 통화하는 걸 들었다. 엄마는 현정이네 엄마에게 자기는 배가 나와 있으니까 찾기 쉬울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배가 나와서 움직이는 것도 힘든데, 배 나온 우리 엄마가 늦게 와서 안 좋은 자리에 앉으면 어쩌지. 나는 몇 번 더 엄마를 찾아보았지만 볼 수 없었다.

  내가 참가하는 종목으로는 이제 달리기만 남아 있었다. 각 조별로 6명씩 뛰어서 먼저 들어오는 학생에게는 선물이 있었다. 심장이 떨려왔다. 오전에 꼭두각시 공연을 했을 때보다 더 떨렸다. 우리 조 차례가 되어서 출발선에 섰다.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땅에 손을 짚고 달리기 자세를 취하였다. 도착 지점이 어딘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냥 한 곳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곧 있다 들릴 신호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온 집중을 다 하였다. 준비-

  땅!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일어나 앞으로 뛰었다.

  출발은 느렸던 것 같다. 앞에 두 명 정도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들을 따라잡았다. 내 앞으로 뛰어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오는 게 느껴졌다. 뒤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 눈도 깜빡거릴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은 모두 제쳐두고 그저 열심히 달렸다. 그건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본 강렬한 경험이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숨 쉬는 일마저 잊어버렸다. 멀리를 볼 수도 없었다. 앞만 보고 달려갔다. 도착 지점이 가까워졌을 때 더 힘을 줬다. 살짝만 느려져도 금세 따라잡힐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이제 한 발짝만.

  “헉, 헉…….”

  그동안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멍했다. 내가 몇 등인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상급생 언니가 손등에 찍어준 도장만이 내가 첫 번째로 들어왔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등 줄에 가서 앉아 다른 조 아이들도 모두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손등을 확인했다. 혹시나 지워지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자꾸 보고 싶었다. 내가 1등을 했어!

  주변을 다시 두리번거렸다. 엄마를 찾아야 했다. 엄마가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았을지, 내가 1등인 걸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니어도 자랑하고 싶었다. 엄마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배가 볼록한 우리 엄마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등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엄마가 예쁘게 묶어주었던 머리는 이미 다 헝클어져서 엉망이 되었는데 내 가슴은 처음으로 경험해 본 승부의 묘미로 울렁이고 있었다.

 

  <1999년 10월 xx일>

  그날도 비가 왔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쏟아지는 장대비에 몇 번이나 학교에 전화를 했었다. 전화를 받는 일은 없었다. 실망을 금치 못할 악랄한 소식이었다. 식탁 위에는 도시락통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걸 가져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날 엄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소풍이 취소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만 가득했다. 학교는 전화도 받지 않고, 아파트 방송으로도 공지는 없었다. 비가 너무 와서 결국 도시락을 놔두고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어수선했다. 선생님들은 교실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도 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잡아주는 사람 한 명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결국 학교는 학생들의 이른 귀가를 결정했다.

  집에 돌아올 무렵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쏟아지던 물줄기가 무색하게 맑게 개어 있었다. 파란 하늘이 마치 세상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우산을 양산 삼아 펼쳐 보았다. 손잡이를 잡고 빙글빙글 돌려 보았다. 내가 보는 세상의 전부가 돌아간다. 앞이 뒤가 되고, 좌우가 사라지고 빙그르르-

  집에 갔을 때 엄마는 없었다. 문은 잠겨 있었고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익숙하게 신문 구멍에 손을 넣어 만져지는 감촉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차가운 쇠의 무게가 손끝으로 느껴졌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빈집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시계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초시계가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빙그르르 돌던 세상이 점차 사라지고 나만 남게 되었다. 이웃집 전화벨 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왔다. 나의 세상에 침입한 낯선 소리가 무서웠다. 익숙한 집이 순식간에 낯설어 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망연히 시계만 쳐다봤다. 엄마는 어디 갔을까. 엄마는 언제 오실까.

  “나 오늘 동생 생긴다.”

  “진짜? 좋겠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 가자마자 현정이에게 자랑하듯 으쓱거리며 우리 집 소식을 전했다. 어제저녁까지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낮에 이모가 찾아와서 엄마가 아기를 낳으러 갔다고 전해줬다. 어제는 이모가 하루 종일 우리 집에 있었다.

  오늘 집에 가면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와 있을 것이었다. 동생이 생긴다는 게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네 명이었는데 이제 다섯 명이 된다. 친구들 중에 형제가 세 명인 집은 없었다. 동생이 새로 생기는 애도 나뿐이었다.

  “근데 남동생이래. 나는 여자 아기가 좋은데.”

  “나는 오빠 갖고 싶어.”

  나는 몸을 완전히 뒷자리의 현정이를 향하도록 돌려 앉았다.

  “오빠 있어봤자 하나도 안 좋아. 나는 사실 언니가 좋아.”

  남자애보단 여자애가 더 귀엽다. 오빠는 때리기만 하고 필요도 없다. 상냥한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한테 생기는 건 남동생이었다.

  “내가 예전에 아빠한테 물었는데, 아빠는 동생이 태어나도 내가 제일 좋을 거래.”

  나는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를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동생도 갖고 싶었지만 우리 가족이 달라지는 건 싫었다.

  “원래 동생이 태어나면 다 양보해야 돼.”

  “알아. 나는 누나니까 잘해줘야지.”

  그래 잘해줘야 했다. 나는 더 이상 막내가 아니었다. 나보다 어린 동생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 반에 나만 있는 한 살짜리 동생이었다. 여자 동생이었다면 인형처럼 예뻐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남자 동생은 어떻게 잘해줘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턱에 손을 괴고 하루 종일 동생에 대해서 생각했다. 동생이 태어난다. 동생이 태어났다. 지금쯤 집에 와 있을까. 하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새로운 가족에 대한 불안과 기대로 기분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안녕, 내일 만나.”

  “잘 가.”

  학교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학교에서 내내 울렁이던 심장이 이제 쿵쾅거렸다. 내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내 주변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집으로 가는 길이 이상하게 달라 보였다. 어제의 그 파란 하늘이 세상을 먹어 치운 게 틀림없었다.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나의 세상이 뒤바뀌고 있었다. 9층, 우리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동생을 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모들이 보이고,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가면 바닥에 이불을 깔고 엄마가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게 보일 것이다. 엄마 옆에는 아주 작은 아기가 담요에 감싸 누워있다. 아기는 불량감자처럼 못생겼고, 배꼽에는 이상하고 파란 줄이 툭 튀어나와 있어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동생의 머리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나 있다. 엄마 옆에는 외할머니가 계실 거고 엄마는, 엄마의 얼굴은……, 엄마는 어땠더라?

 

  “엄마, 얘는 진짜 팔자도 좋아. 자기 방 대신 정리해주는 누나도 있고?”

  “당연하지. 우리 집 막내인데 누나가 해줘야지.”

  일기장은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적혀진 것이었다. 내가 적은 어린 시절의 내 일기인데도 재미가 없었다. 옆에서 오빠가 일기를 재밌게 잘 썼다고 낄낄거리며 말하는 엄마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그 막내는 아빠 닮아서 애교도 없네요. 애가 재미가 없어. 누나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난 언제 또 읽혀질지 모를 일기장을 도로 통에 넣어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았다. 이제 버릴 것들은 다 구분한 것 같았다. 버리려고 밖에 내놓았던 바둑 교재들은 어느새 아빠가 가져가 안방구석에 다시 놓아두었다.

  휴지통을 들고 와 쓰레기로 분류된 물건들을 모두 쓸어 넣었다. 분류하는 과정은 길었지만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금방이었다. 그러다가 그 더러운 노트에 손이 닿았다. 버리기 전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건 갑작스러운 충동에 의해서였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그 안의 내용물을 궁금해 해본 적이 없었다. 펼쳐보기로 한 건 아마도 방금 전까지의 일기장을 봤던 것처럼 그 안에도 시시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호기심의 연장이었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겉면과 마찬가지로 내지도 변색이 되어 있었다. 앞에만 조금 필기의 흔적이 보였고 뒷장은 깨끗했다. 별다른 목적 없이 굴러다니던 다이어리가 맞았다. 빠르게 넘겨보며 훑어보고 있는데 어느 페이지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나의 완성된 글이 아니었다. 아주 짧은 문장이 몇 개가 이어지다가 완결 짓지 못하고 끝나버린 미완성의 글이었다. 엄마의 익숙한 필체로 쓰여진 글은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어느 여자의 묘한 감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기가 태어났다. 아이들은 자고 있고, 남편은 병원에 있다. 방금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었다. 아직 아빠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

  글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머릿속에서 보이지 않는 연필을 꺼내 들어 그 미완성의 글을 이어 보았다.

  어제는 비가 왔다. 혹여나 진통이 시작되면 어쩌나 불안에 건우와 진아의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김밥을 다 싸고 나니까 밖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오전에 병원 예약 잡아 놓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혼자 우산을 쓰고 택시를 잡아타서 병원에 왔다. 보호자 없이 혼자 오는 병원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외로움과 불안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갔던 그 순간에도 남편은 옆에 없었다.

  세 번째 되는 아이인데도 이번이 가장 힘들었다.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는 게 힘에 부쳤다. 이제 태어난 셋째 아이가 어쩌면 아빠 없이 자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혼자 애 셋을 다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 아빠가 회복해서 퇴원한다고 하더라도 이후의 일이 문제였다. 당장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연필을 멈추었다. 마음 가는 대로 쓰기에는 엄마가 겪었을 복잡한 심경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적었던 모든 글을 지웠다. 엄마의 일기는 엄마만이 말할 수 있었다.

  엄마의 감정을 이제 와 꺼내 보기에는 이미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허나 그때를 무시하기엔 내 시간도 그날에서 20년이 지나가 있었다. 나는 가상의 연필을 다시 들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종이에 글을 남겼다. 나만 볼 수 있는 글자가 종이에 새겨졌다.

  연필을 내려놓았다. 나는 오랜 시간 이 종이 위에 놓여 있었을 엄마의 감정 덩어리를 도로 덮어 원래 있던 자리에 넣었다. 서랍이 닫혔다. 발견하면 안 될 것을 알아버린 죄책감이 내 마음 한편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10·18문학상 단편소설 심사평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소설의 반은 완성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같은 이야기라도 얼마나 재미있게 들려주는지 역시 중요한 부분이다.

  올해 <10·18 문학상>의 소설 부문은 이런 재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이야기 자 체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법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를 한참 고민해 보았다. 바로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나’는 ‘고양이’가 되기도 하고, 꿈속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풀어가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는 그 너머의 상상력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응모작에서는 그런 상상력이 발휘된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가작으로 선정된 <엄마의 일기장>은 우연히 옛날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어린 시절의 일기장의 내용을 소개하는 작품이다. 만삭의 엄마가 동생을 낳을 당시의 집안의 일을 옛 일기장이라는 장치를 사용하여 그 시절의 화자가 이야기하듯이 써 내려 간 것도 괜찮았고, ‘엄마의 일기장’이라는 제목과 달리 자신의 일기장을 소개하는 작품의 마지막에 그 시절 엄마의 메모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당시 엄마가 느꼈을 두려움과 막막함을 강렬하게 전달해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일기장>을 가작으로 뽑으면서 이 예비 작가의 정진을 기원한다.

김은정(국어교육과 교수)

 

10·18문학상 단편소설 가작 수상 소감

  매년 가을에 우리 대학에서 열리는 문학상 공모전을 알게 된 날부터 저에게는 졸업 전까지 소설을 하나 완성 시켜 공모전에 참가하고 말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처음 그 꿈을 가지게 된 날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결국은 그날의 다짐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일기장>을 구상하던 시기는 한창 90년대 가요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던 무렵입니다. 옛날 가요프로그램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기억하는 나의 진짜 90년대를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구성에서 <엄마의 일기장>은 시작되었습니다. 어 린 시절 쓰인 일기를 재구성해보는 과정에서 과거 대수롭지 않던 사건들이 다른 모양새를 띠게 되었고, 그렇게 희미한 기억 조각을 구체화해나가고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저의 이야기는 허구성을 띤 하나의 단편소설로 완성되었습니다.

  오랫동안 혼자 만족하는 글만 써오다가 처음으로 평가를 바탕에 둔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 기대와 달리, 이런 짧은 글에 이런 구성의 글이 적합한지 확신이 없었고, 다시 읽어 보았을 때 아쉬운 문장들이 많이 보여서 결과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있었는데 가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무척 기뻤습니다. 글쓰기는 저의 오랜 취미였습니다. 단순히 혼자만의 취미활동에서 벗어나 문학을 통해 학교 안에서 낭만을 찾았던 어느 스무 살이 생각납니다. 낭만을 꿈꾸는 것도 과분한 현실에서 스쳐 지나갈 뻔한 작은 소망을 이룰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호진(행정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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