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건 아마 ‘불안한 미래’가 분명하다. 벌써, 내년에 5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한다. 국제민간회의인 세계경제포럼 ‘다보스포럼’의 예측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은 세계적인 추세겠지만, 아직 우리 피부로는 심하게 느껴지지 않아 ‘불안한 미래’가 실감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불안은 점점 빠르게 닥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사람의 노동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사람이 직업 없이 살아가게 된다. 세계 유명 회사 CEO 일론 머스크는 AI가 상용화된 미래는 사람의 20%만 ‘의미 있는 일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지난해 예측했다. 나는 이 예측에서 ‘의미 있는 일자리’란 전문적인 일을 하고 인생을 즐기기에 충분한 급여를 받는 미래 인간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나머지 80%는? 상상하기 힘들지 않다.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배지-호지의 말처럼 ‘오래된 미래’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의 생계를 사람이 자신의 손으로 일하며 자급자족해야 하는 시대로 말이다. 모 TV 방송인 ‘자연인’처럼 그렇게 생존해야 될지 모른다.
모든 문제는 ‘인구문제’에서 온다. 베이비부머인 필자는 불과 한 세기가 되기 전에 우리나라가 ‘인구 재앙’ 국가로 변신하는 형태에 놀랍다. 우리나라는 인구 자연감소가 코앞에 찾아왔다. 인구감소가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90세 인구가 20세 인구보다 많은 나라다, 대한민국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3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은 2050년 한국 인구 피라미드 형태는 65세 이상 노인이 39.8%, 14세 이하 유소년은 8.9%인 역(逆)피라미드 모습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더 불행한 필자의 예측은 우리나라의 경우 일자리보다 일하는 손이 더 빠르게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경제가 존재하기 위해 AI가 필요할 수밖에.
시인인 필자는 AI가 시인이란 자리를 빼앗아 가지 않는다는 ‘미래예언서’가 더 불안하게 읽힌다. 그건 시의 가벼운 존재에 AI를 투자하기에 원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계산의 결과이다. 단군 이래 최고의 시인 인구를 가진 이 나라에서 시는 직업이 아니라 단순 취미활동이다.
필자가 36년 전 시인으로 등단했을 때 평균 원고료를 3만 원쯤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2만 원쯤 된다. 그렇다고 부당한 셈법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원고료를 받는 시인은 전체 시인 중에서 5%쯤 될까 말까다. 필자는 ‘지금 그리고 여기’ 이 시대를 ‘원고료를 받는 마지막 시인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오래지 않아 시 발표 지면과 원고료는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미래 사회의 시는 SNS에 기생해서 생존할 것이다. 종이 시집도 환경을 파괴하는 제품으로 낙인찍히고 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근대시가 발생한 지 100년이 넘었다. 시가 너무 오래 유가의 가치로 존재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를 쓰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해마다 더 늘어날 것이다. 독자가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도.
시인·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