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산이 그곳에 있기에’
[정일근의 발밤발밤] ‘산이 그곳에 있기에’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9.0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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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보진 못했지만, 나 또한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엘 카피탄’(El Capitan)을 동경한다. 엘 카피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있는 바위산 이름이다. 914m 높이를 자랑하며 화강암 바위산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카피탄(Capitan)이란 지명은 캡틴(Captain)의 스페인어에서 왔다. 19세기 스페인 부대가 그 부근 지역을 탐사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엘 카피탄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암벽 등 웅장한 자연 중에서 손꼽히는 경관을 자랑한다. 세계의 암벽 등반가들이 도전하고 싶어 하는 산이다. 엘 카피탄에는 암벽을 오르는 100여 개의 루트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새벽 직벽(Dawn Wall)’은 고난도의 코스로 알려져 있다. 2017년 ‘던 월’이라는 산악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나는 그 ‘던 월’을 2018년 8월 6일, 제3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UMFF) 개막작으로 보았다. 그 다큐멘터리는 2015년 1월, 미국의 암벽 등반가 토미 콜드웰(36)과 케빈 조기슨(30)이 세계 최초로 엘 카피탄의 ‘던 월’을 맨손으로 오르는데 성공한 전 과정을 필름으로 담았다. ‘던 월’은 상영이 끝나고 관람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위대한 도전의 기록이었다. 사람이 만드는 도전의 기록, 그것이 산악영화의 매력이다.

  그 두 영웅은 추락 방지를 위한 로프와 암벽에 매달아 놓고 잠을 자는 간이침대인 ‘포탈렛지’ 외에는 오직 맨손으로만 ‘던 월’을 오르는데 19일이 걸렸다. ‘던 월’은 1970년 등반가들이 고리못과 로프를 사용해 처음 등반에 성공했을 때 28일이 걸렸다. 상상해보라. 1천 미터에 가까운 직벽을 오직 맨손으로 오르는 도전자의 용기를.

  그런데 올 2월 제91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프리 솔로’가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극한의 도전을 즐기는 클라이머 알렉스 호놀드는 엘 카피탄을 올랐다. 단 한 번의 실수가 죽음을 부르는 이 루트를 오르기 위해 수많은 동작을 반복하며 익혔다. 그는 오로지 엘 카피탄에 올인했다. 그는 2017년 6월 3일 출발한 지 3시간 56분 만에 엘 카피탄 정상에 섰다. 로프도 파트너도 장비도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말이다.

  이 영화 역시 올 제4회 울주세계영화제(2019. 9. 6.~10.)에서 상영된다. 19일의 여정인 ‘던 월’을 3시간 56분으로 단축시킨 그 도전을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싶다.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했다. 현대의 알피니즘은 산소통을 버리고 셰르파의 도움 없이 무산소 단독 등정으로 히말라야를 오른다.

  아직도 현존하는 산악인인  라인홀트 메스너는 세계 최초로 무산소로 히말라야 8천 미터급 14좌의 정상에 섰다. 지난해 네팔 다올라기리 서부 구르자히말 베이스캠프에서 강한 폭풍으로 유명을 달리한 한국의 산악인 김창호(1969~2018)는 그 14좌를 최단기간(7년 10개월 6일)으로, 세계에서 14번째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올해도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열린다. 비가 내리고 태풍이 온다고 한다. 그래도 우리가 그곳에 모이는 것은, 조지 말로리의 명구 ‘산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처럼 ‘영화의 산’에 오른다.

시인·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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