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추모하는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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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6.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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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 소회

  1980년 5월 광주 비극이 있기 전 4월이 되면 우리는 토마스 엘리엇의 ‘황무지’를 읊으며 슬퍼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4월, 4·19 때문이었다. 비라도 오는 날, 최근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옛날 수유리 정경은 그야말로 처연했고 묘지 앞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눈들은 항시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부르지 않는다.

  5월 광주, 5월 18일부터 일어난 처참한, 서러운 일들로 오랫동안 눈물을 속으로 삭혀온 때문이다. 오월 광주의 비극적 사태를 ‘무등산 타잔’[본래 광주 외곽 빈민촌 철거 관련 르포 제목]으로 불리던 김현장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문부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도저히 어쩌지 못하던 그가 주축이 되어 ‘부산마국문화원 방화사건’을 일으켰다. 주동자 문부식은 그 서슬 퍼런 ‘전두환’의 법정에서 ‘살인마 전두환’을 단발마처럼 외치다 험한 세월을 보냈다.

  오래전 조선대에서 한국정치 관련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비 오는 날 망월동 묘역을 둘러보고 참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젠 역사 속으로 잠긴 그 망월동 묘역, 어린아이가 물끄러미 아버지 영정사진을 안고 있던, 초라하고 남루했던 묘지들, 그 사이 어디에서 영령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한 망월동의 기억들...

  많은 세월이 흘렀다. 망월동 묘역은 국립묘지로 변했고, 숨죽여 참배했던 의식은 국가적 행사가 되었다. 가히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슬픔과 한은 현재 진행형이다.

  39주기 기념식에는, 계엄군 진압을 앞둔 최후의 날 금남로 밤거리에 처절하게 울리던 마지막 거리 방송이 묘지에 다시 울렸다. (현장음)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는 학생, 시민들을 살려주십시오. 우리 형제, 자매들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은 “5·18의 진실은 진보나 보수로 나뉠 수 없고, 더 이상 분노와 슬픔이 아니라 희망의 시작, 통합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파 이익에만 올인하는 이 땅의 정치모리배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의 5월 광주는 올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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