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이 지나고 이제 대학생이다. 12년이나 사회생활을 배우고 동아리, 학원까지. 사회생활과 단체생활이라면 지긋지긋하게 많이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적응의 동물이라던데 나 빼고 모두가 그렇게 보였다.
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암수 찾는 동물처럼 본능적으로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 수는 마치 그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개학 첫날부터 많은 친구를 사귄 애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 없었다. 나는 중간만 하자고 생각했다. 친구를 사귀고 공부도 딱 평균만 하자고 생각했다. 아마 실제로도 그랬었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었다. 예쁘고 상냥하고 웃음도 많았다. 사소해도 큭큭 웃는 그 친구와 너무 친해지고 싶었다. 나는 원체 말재주가 없고 활발하지 못했지만, 그 친구와 친해지려는 다른 이들과 경쟁 아닌 경쟁을 했다. 남몰래 하는 경쟁에선 이기든 지든 속앓이도 홀로 해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속앓이를 겪고, 드디어 나는 그 친구와 친해졌다.
아니,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바라던 친구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친구 관계에서 ‘을’이었기 때문이다. 을이 되는 건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내가 더 좋아하니까 참았다. 이기적이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덜 좋아할 때 그 관계를 역전시키거나 파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여전히 좋았고,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반 모두가 그 친구를 좋아했다.
그 사실을 느꼈을 때, 나는 불편해졌다. 우리 반 단합에 내가 초치는 기분이었다. 그때 ‘내가 선을 넘은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서 정한 중간의 기준을 넘어버렸다고 느꼈다.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양치할 때 기다려 달라 하지 않기, 같이 가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 않기, 다른 친구와 친해 보여도 신경 쓰지 않기 등등. 관계에서 집착을 끊어내니 나는 이제 ‘을’이 아니었다. 마음먹은 대로 점점 바뀌었다. 일일이 그 친구 마음을 읽어내려 노력했던 게 이젠 무의미했다. 그렇게 나는 중간의 자리를 되찾았다.
어쩌면 나는 그 친구에게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이 중간으로 되돌아갔을 때 그 점을 깨달았다. 우정 속에 질투가 있었으니, 그 친구도 내게 가끔 따끔하게 찔렸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점점 성숙해졌다. 때로는 중간을 외치는 내가 한심했던 적도 있었다. 스스로 나는 왜 뭔가에 전부를 버릴 수 없는지, 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함을 선택하는지 생각해봐도 답은 없었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게 편하다. 인간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나도 중간을 외치는 삶을 그대로 살아갈 듯하다. 중간은 크기의 가운데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크기는 중간쯤인데 불편함은 없다. 대단한 야망 없이도 살아가는 중간이 편하다.
추수민(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