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지역 인물(9)-창원 3·1독립운동, 4·3삼진의거의 주역 ‘팔의사(八義士)’
이달의 지역 인물(9)-창원 3·1독립운동, 4·3삼진의거의 주역 ‘팔의사(八義士)’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4.15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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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의사 창의탑(위), 팔의사 창의탑 부조(아래)
팔의사 창의탑(위), 팔의사 창의탑 부조(아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창원지역 곳곳에서도 3·1독립운동이 광풍처럼 일어났다. 그 대표적인 만세 시위가 4·3삼진 대연합의거다. 이 의거는 1919년 3월 28일 제1차 고현시장 의거와 4월 3일 제2차 4·3삼진의거 두 차례 있었다.
  제2차 4·3 삼진의거는 1919년 4월 3일 지금의 창원시 진전면 일암마을 냇가에서 시작되었는데, 농촌 지역에서 5,000~8,0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운동이었다. 이날 만세 행렬은 일제 식민지 통치기관이 있던 진동으로 시위에 나섰다. 오후 2시경에 진동 사동교에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삼진 지역민들이 집결해 일제 군경과 맞서 크게 싸웠다. 그날 현장에서 일제의 총탄으로 순국한 8분의 애국지사가 ‘팔의사’이다.
  창원지역 3·1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 김수동·변갑섭·변상복·김영환·고묘주·이기봉·김호현·홍두익 의사의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며, 이들 애국지사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위 선두에서 대형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 헌병 보조원을 사동교 아래로 던지고 일제의 총탄에 순국한 삼진 장사 김수동 의사여! 일제 헌병의 군도에 태극기를 든 오른손 쪽 어깨가 절단되자, 즉시 왼손으로 태극기를 들고 다시 맞서다가 왼팔마저 잃고 순국한 변갑섭 의사여! 역사의 현장에서 순국한 팔의사는 창원지역 3·1독립운동사의 영웅이다.!

  4·3삼진의거의 영웅, ‘팔의사’ 잠들다

팔의사 묘 전경
팔의사 묘 전경

  4·3삼진의거와 팔의사를 기념하기 위해 1946년 창의비와 1963년 팔의사 창의탑이 삼진 지역민의 힘으로 세워졌고. 1981년 4월 22일 8분의 애국지사 묘도 한곳에 모아 순국 팔의사 합동묘역으로 만들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양촌리 이재동 뒷산 팔의사 묘역에는 4·3삼진의거의 영웅, 팔의사가 편히 잠들어 있다.
  1919년 4월 3일 진동 사동교에서 순국한 팔의사는 그동안 일제의 탄압과 감시 등으로 유택도 제대로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유족들은 그들만 확인 가능한 곳에 애국지사를 모셔왔다. 오랜 세월을 이름 모를 골짜기에 주인 없는 무덤으로 있었다. 광복된 조국에서도 관심도 받지 못한 셈이었다.
  팔의사 묘역에는 지름 약 280㎝, 높이 약 90㎝의 무덤 8기가 조성되어 있다. 묘소 앞쪽 비석은 ‘八義士之墓(팔의사지묘)’가 정면에 새겨져 있고, 높이 260㎝, 넓이 60㎝ 크기이다. 무덤은 왼쪽 위부터 김수동[1875~1919], 변상복[1892~1919], 김호현[1893~1919], 김영환[?~1919], 변갑섭[1892~1919], 고묘주[1893~1919], 이기봉[1883~1919], 홍두익[1892~1919] 순서로 안장되어 있다.
  또한, 팔의사 묘역에는 1982년 11월 4·3삼진의거의 주역이었던 석당 변상태의 기적비, 1985년 12월 ‘삼진 독립의거기념비’도 건립되었다. 삼진연합청년회는 묘역 관리뿐만 아니라 애국지사 팔의사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매년 3월 1일 추도식도 열고 있다.

  ‘팔의사’, 그 동지들의 대한독립을 향한 외침

  “曰我同胞(왈아동포) 有進無退(유진무퇴)” “가로되 우리 동포는 나아감이 있으나 물러섬은 없다.”
                                                                                              - 4·3삼진의거 격문 중에서
  “고현 시장에서 독립운동을 했을 때 근곡리 사람들이 한 사람도 가담하지 않았던 것은 대단히 잘못이다.
  조선을 위하는 일에 조선인으로서 어떻게 참여하지 않는가?
  내일 3일 절일(節日)에 다시 독립운동을 할 것이니 참가하라.”
                                                                                - 권태용의 근곡리 마을 연설 중에서
  오늘부터 우리는 자유 민족이며 자유국의 국민이다.
  일본의 간여는 추호라도 받아서는 안 된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 변상태의 4·3삼진의거 현장 연설 중에서
  “이번의 부상자들은 모두가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희생된 자들이므로 이들의 치료비는 우리가 갹출해야 한다.”
                                                                                    - 진전면장 성재 권오봉의 통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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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2019-05-20 12:30:50
마산도 유구한 인물을 배출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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