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명물, 월영지에 빠지다
우리 대학 명물, 월영지에 빠지다
  • 박수희 기자
  • 승인 2019.04.03 1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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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의미가 담긴 학우들이 몰랐던 월영지 이야기

  꽃비가 물결에 내리는 날, 월영지는 더욱더 그 빛을 발한다. 흐드러진 벚꽃 가지와 호수를 둘러싼 바위들. 간간이 피어있는 복사꽃과 영산홍. 그 풍경은 가히 환상에 가깝다. 학우들은 멀리 봄나들이를 하러 갈 필요가 없다. 짧은 공강 시간에 다채로움이 느껴지는 월영지로 향해 봄을 즐기면 된다. 짧은 봄날, 학우들은 사진을 찍으며 월영지의 풍경을 화면 속에 가둔다. 대학 명물이라 자랑하지만, 월영지를 자세히 아는 학우는 없다. 월영지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 대학부

 

  월영지, 달그림자란 뜻이 담긴 우리 대학 연못이다. 정문 가까이에 위치한 월영지는 제1공학관, 고운관, 10·18광장과 접해있다. 학우들은 월영지 존재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지만, 왜 우리 대학 안에 있고, 그 뜻은 어디에서 왔는지, 언제 축조됐는지 등 월영지에 대한 정보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 대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월영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진정한 한마인으로 거듭나보자.

 

월영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지금은 매립되어 아는 사람이 많이 없지만, 원래 이 일대는 해안가였다. 현재 댓거리 입구쯤 자리한 서브웨이 기준으로 아래는 바다였고 그 위부터 육지였다. 이곳에 거주하던 신라 시대 학자 고운 최치원은 이 바다를 즐기고자 대를 지었다. 지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월영대의 시작이었다. 현재 정문 오른쪽에 지어졌던 월영대는 비석으로 모습이 남겨졌다. 바다 위로 달이 휘영청 뜨면 노랗게 물든 물결이 월영대 아래까지 닿았다고 한다. 바로 월영대 이름이 지어진 이유다. 이 월영대에서 많은 이름이 파생되었다. 월영동, 해운동, 반월동, 완월동, 그리고 월영지까지. 모두 월영대와 최치원에 관련된 이름들이다.

  월영대 뒤로는 언덕이 넓게 펼쳐지는데 그 언덕에는 주로 논이 많았다. 논에 물을 대기 위한 고랑이 곳곳에 있어 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물은 지금 월영지 자리에 모여 습지를 만들었다. 지금 이 언덕은 우리 대학이 되었다. 교가에 ‘일천 년 신라 가야 오랜 전통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월영대 언덕’이 등장하는 이유다. 습지는 월영지로 바뀌었다. 당시 습지를 매립하지 않고 더 파서 연못으로 축조했다. 그렇게 1973년부터 우리 대학 월영지는 월영 캠퍼스와 함께 존재해 왔다. 월영이란 이름은 그때쯤 응모 받아서 지어지게 되었다. 지금 모습과 제일 잘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이다.

  이후 2010년, 월영지 준공식이 열렸다. 1973년에 지어졌는데 준공식이 왜 그제야 열렸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예전 월영지는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이 아니다. 2010년에 제1공학관 밑으로 인공 폭포가 설치되었고 인공 폭포 밑으로 호수가 하나 더 만들어졌다. 그 호수가 또 폭포처럼 떨어져 기존의 월영지로 흘러간다. 인공 폭포와 기존 월영지 사이엔 월영교라는 다리도 세워졌다. 바닥도 흙이 아닌 시멘트로 정비했다. 연못 2개와 다리 1개, 인공 폭포, 시멘트 바닥으로 이루어진 월영지가 바로 지금 우리가 아는 월영지다. 누가 봐도 자랑할 만큼 근사해졌지만, 자연적인 매력이 덜해졌다.

 

 

월영지에 대한 모든 정보

  월영지는 1.1M~1.4M 정도의 수심이며 넓이는 2,500m²이다. 아래 연못엔 수심 2.5M로 쓰 여 있는데 학우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초장 월영지가 만들어졌을 때, 학우들이 다이빙도 하고 잠수도 자주 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런 문구를 넣어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분수 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전기선이 깔려 있기에 절대 물에 들어가려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앞서 말했듯 아래 연못엔 분수 장치가 깔려있다. 분수 장치는 자주 가동되지 않는다. 분수 장치를 가동하려면 일일이 협조를 구해야 하고 전기세가 많이 나가기 때문이다. 바람 부는 날도 피해서 가동한다. 여러 곳으로 물이 튀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날씨가 좋고 특별 행사가 있는 날은 대학 이미지 차원에서 틀기도 한다.

  월영지 물은 특별히 갈진 않는다. 여전히 옛 월영대 언덕 사이로 흐르던 고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물이 계속해서 주입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기는 침전물과 잉어 배설물, 악취 등으로 인해 1년에 한 번씩 청소한다. 5월 초~중순 사이에 이뤄지는 청소는 축제 전에 끝난다. 잉어 같은 생물은 아래를 청소할 때 위로 옮겨놓고 위를 청소할 땐 아래에 옮겨놓는 식으로 관리한다. 벚꽃 잎 청소는 따로 하지 않으며, 1년에 청소하는 그 시기에 침전물과 함께 처리한다. 청소는 직접 발주해 용역을 사용하며 바람에 날려 들어간 큰 쓰레기만 일일이 줍는 정도로 관리 중이다. 빠진 물은 기존에 흘러 내려오는 물로만 충당되지는 않기에 급수시설로 충당한다.

  현재 월영지 주위에는 많은 나무와 비석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벚꽃과 영산홍은 이미 유명하며 밑동이 2개이고 줄기는 1개인 연리지나무도 있다. 이 연리지나무는 배롱나무로 굽어지며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예부터 연인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속삭였다고 한다. 월영지 옆 잔디밭에서 빗돌도 찾아볼 수 있다. ‘3·15 민주 정신으로 일어난 10·18 부마민주항쟁의 그날을 기억하며!’라고 쓰인 빗돌은 3·15와 10·18의 주역인 우리 대학을 기린다. 연리지나무와 빗돌 아래에 QR코드가 있으니 자세한 설명을 찍어서 보길 바란다.

  국어교육과 노성미 교수는 월영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말해주며 월영지에서 주목할 점을 하나 꼽았다. “고운 최치원의 인백기천(人白己千) 정신을 학우들이 꼭 마음속에 새겼으면 합니다.” 인백기천은 남이 백 번 노력할 때 나는 천 번 노력한다는 뜻으로 고운 최치원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다. 이어 노성미 교수는 “고운 최치원은 월영대에 올라 명상, 즉 철학적 사유를 자주 했습니다. 달빛을 볼 순 없어도 월영지가 여전히 사색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고운 최치원이 선택한 공간이라는 걸 알고 그 뜻을 이어가며 학우들이 우리 대학을 가치 있게 여기길 바랍니다.”라며 월영지의 진정한 뜻을 학우들에게 알렸다.

  역사적으로 뜻깊고 가치 높은 월영지를 학우들이 마음 깊이 받아들이며 벚꽃 명소뿐만 아니라 자랑스러운 우리 대학 상징물로 여겼으면 한다. 이번 봄, 벚꽃도 즐기며 월영지에서 사색에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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