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사등’의 시인 김광균(1914~1993) 선생의 말년 시 ‘목련’이란 시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목련은 어찌 사월에 피는 꽃일까/창문을 열고 내다보시던/어머니 가신 지도 이제는 10여 년/목련은 해 저문 마당에 등불을 켜고/지나는 바람에 조을고 있다’라고 시작하는 애잔한 시다.
시인 박목월(1915~1978) 선생의 ‘사월의 노래’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라고 노래했다. 목련은 사월의 꽃이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사월의 꽃 목련이 삼월 초순에 피기 시작해 이미 지고 있다.
벚꽃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벚꽃 피는 시기가 많이 당겨질 것이라 한다. 매년 4월 1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되는 진해군항제에는 일찍 관광객이 몰릴 것이다. 월영캠퍼스의 자랑인 벚꽃도 3월 26~27일 사이 만개할 것 같다.
해마다 봄은 빨리 온다. 추운 겨울 끝에 봄을 맞이하는 가슴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다. 봄에 꽃이 피는 순서가 있다. 그걸 ‘춘서’(春序)라고 한다. 춘서는 자연의 질서다. 그 질서가 깨어진 지 오래다. 꽃들이 앞 다투듯 피어난다. 봄꽃은 살기 위해 피어나는 것 같다.
이미 식상해져 버린 ‘지구온난화’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봄이 빨리 오는 것은 여름 역시 빨리 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오래 머물다 갈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지난해 여름의 폭서를 벌써 잊었다. 올 여름 역시 지독하게 무더울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춘하추동(春夏秋冬) 중에서 여름과 겨울만 남고, 나중엔 여름만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4권의 책 중에서 여름편이 두툼해지고 나머지는 부록인 양 홀쭉하게 남을 것이다. 제일 빨리 몇 쪽의 별책부록으로 남을 봄이여, 빨리 피는 꽃이 두렵고 더욱 빨리지는 꽃이 무섭다.
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바다도 마차가지다. 서해에는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 있는 ‘민어’가 지난 1월에 ‘풍어’를 이뤘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잘 아는 현상인데 바다에 한류성 어류는 사라지고 난류성 어류가 사시사철 잡힌다. 감성돔은 겨울철 낚시의 별미인데 요즘은 일년 내내 잡히는 실정이다. 국민생선인 갈치는 가을이 최고인데 어느새 봄으로 자리를 바꿨다.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뒤죽박죽 새로운 자리를 찾아 옮겨 다닌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구라는 이 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과거로 돌아가기에 지구는 너무 뜨거운 별이 되었다.
어느 핸가 모 문예지에서 시인들의 애창곡을 조사한 적이 있다. ‘봄날은 간다’(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는 가요가 1위를 차지했다. 가는 봄에 대해 누구든 애틋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는 그 노래는 일찍 사라지는 봄을 미리 예견한 것 같다.
봄은 가는 것이 아니다. 휙- 와서 휙휙- 사라진다. 사라지는 봄이 아쉽다. 올해는 월영지 벚꽃이 만개하는 날 ‘인생사진’이나 한 장 남겨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