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독수리는 난민이 아니라 손님이니
[정일근의 발밤발밤] 독수리는 난민이 아니라 손님이니
  • 언론출판원
  • 승인 2019.01.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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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새인 독수리들이 돌아왔다. 우리 인근 지역인 고성까지 날아온다. 몽골에서 고성까지 겨울나기를 위해 날아온다. 올해는 200~300여 마리가 날아온 모양이다. 독수리는 천연기념물 제243-1호로 지정되어 대접하는 ‘겨울 진객’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겨울철 AI(조류 인플루엔자) 발생 시기와 겹쳐 겨울 진객이 아니라 ‘난민’(難民) 꼴이다. 수리과 맹금이 신세가 가련하게 변해버렸다. 독수리뿐만이 아니다. 주남저수지서는 철새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모양이다.

  국립환경원이 지난해 야생조류 집단폐사 조사 결과 무려 1,000마리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그러나 AI는 한 마리도 검출되지 않았다. 철새와 AI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의심을 받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월동을 하기 위해 철새에게 누명을 씌우고 쪽박까지 깨고 있다.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이다. 살아있는 짐승을 잡아먹지 않는다. 죽음 짐승이나 죽어가는 짐승을 사냥해 먹이를 취한다. 사람의 손이 베풀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경우가 많다. 고성에는 전 철성고 교사의 사랑과 군과 NGO 등의 지원으로 굶어 죽는 독수리가 없어 고맙다.

  독수리는 이름이 멋지다. 그러나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 독(禿)이다. 사람의 대머리를 독두(禿頭)라 부른다. 죽은 짐승의 내장을 파먹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있다. ‘간서치’로 불렸던 이덕무의 손자인 이규경의 역서다.

  이 책에 고래 뱃속에 들어가 살아나온 사람의 머리가 대머리가 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동물의 내장기관에는 독성이 강한 모양이다. 대머리 수리는 텃세인 까치, 까마귀와의 텃세 싸움에 밀린다. 생김새는 웅장한 이 착한 철새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

  모두(冒頭)에서 독수리를 난민 신세라고 했다. 필자는 현역 기자 시절 부산 수영만에 머물고 있던 베트남 보트피플 난민을 여러 번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꿈은 부산에 머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미국 등 제3국으로 가기 위해 유엔 고등판문관실의 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트피플들은 베트남에서 들고나온 재산이 많았다. 대부분 부자였다. 그러나 독수리는 그건 아니다. 제주에서 난민 취급받는 예멘인과도 다르다. 추워서 여기까지 날아와 겨울을 나고 다시 돌아간다. 이름 그대로 철새다. 난민은 텃새가 되길 위해 조국을 떠났으니 입국한 나라의 장벽이 높은 것이다.

  고성 대가면 천황산에 안국사란 사찰이 있다. 된장, 도자기 쪽빛염색으로 유명하다. 청년작가아카데미 시절, 종강파티 대신 안국사를 찾았다. 여름에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어 반딧불 입산, 겨울에는 독수리 비행을 볼 수 있어 독수리 입산이라 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면서 산사의 밤, 그 ‘도란도란’이 좋았다. 겨울에 만나는 독수리는 천황산 위로 유유하게 바람을 탔다. 나는 그 비행이 좋았다. 긴 날개를 펼치고 날갯짓 없이 하늘을 타는 그 품새가. 왜 하늘의 제왕이라 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독수리와 철새들은 우리나라로 오는 손님이다. 예부터 손님이 오면 인심이 후한 법이다. 독수리 떼가 겨울을 잘나고 고향 몽골까지 잘 돌아가길. 내년에 또 만나길. 새해에 모두 독수리처럼 꿈을 향해 날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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