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부문 가작: 박혜빈(국어교육과·4)
영도
언니를 처음 본 날 나는 언니와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잘 곳이 없어 언니를 만난 건 맞지만, 언니를 보는 순간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으니까. 언니에게는 뭔지 모를 안락함이나 당연함 같은 게 있었으니까.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를 질끈 묶고 기름 얼룩이 진 주황색 카라티를 입은, 열여덟 살짜리 여자애를 어두컴컴한 늦저녁의 골목에서 만나자고 하는 사람을 무작정 따라가는 바보 천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언니는 나를 영도라고 불렀다. 내 이름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언니는 내 이름을 묻지도 않았다. 그게 뭘 뜻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언니가 “영도야, 너 맞지.”했을 때 그냥 “네.”하고 웃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름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았으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언니가 아니어도 이름을 제대로 불린 적이 없었으니까. “영도야, 우리 집으로 가자.”하고 언니가 내 손을 잡았을 때도 나는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니와 있으면 구체적인 설명 없이도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은 것들이 많았다. 대개 그런 것들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거나, 설명 따위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언니네 집은 작은 여관방이었는데, 도심이랑은 거리가 있어서 인적이 드물었고 그렇다고 우연히 지나가는 차들이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랑 가깝지도 않았다. 주인 할머니는 방세를 내러 갈 때마다 원래 이렇게 어린 애들은 받으면 안 되는데 하도 어리고 딱해서 사정을 봐주는 것이라고 하며 혀를 찬다고 했다. 바로 옆과 그 옆에는 필리핀에서 왔다는 아저씨들이 살았는데, 이 세 방을 제외하고는 늘 사는 사람이 바뀐다고 했다. 그렇게 자주 바뀌지도 않았으니까 누구라도 들어오는 날에는 늘 낯선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언니네 방은 들어가면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났다. 허름한 여관방이 모두 그런 것처럼 언니 방에도 침구와 쓰레기통을 제외하고 가구나 전자기기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문 근처 낡은 티포트만이 유일한 전자기기인 듯하였다. 바닥에는 구석에 개어진 옷가지들이, 중앙에는 말린답시고 바닥에 널어 놓은 옷이나 속옷들이 있었다. 언니는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지 바닥에 늘어진 속옷을 줍지도 않고 발로 휘적거리며 겨우 앉을 자리만 만들어 주었다. 바닥에서 말린 옷 사이에 앉았을 때는 방에서 나는 꿉꿉한 냄새와 볕을 안 받고 말린 옷의 꼬릿한 냄새가 합쳐져 올라왔는데, 언니를 처음 봤을 때 언니에게서 나던 냄새인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귀까지 열이 올랐다.
언니는 아침이면 일을 가고 저녁이면 집에 왔다. 가끔 늦은 밤까지 일을 하는 날도 있다고 했는데, 일주일 내내 저녁에 들어오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언니가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는 나갈 때의 언니 냄새 위에 옅은 기름 냄새가 겹쳐서 났다. 주황색 카라티에 얼룩을 남겼을 그 기름. 이 방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냄새는 그 기름내뿐이었다.
언니와 나는 바닥에 앉아서 언니가 가지고 온 저녁을 먹었다. 컵라면이나 김밥일 때도 있었고, 중국집에서 배달을 시켜 준 적도 있었다.
“방에서는 취사가 안 되니까 이런 것밖에 못 먹어. 그래도 공장에 가면 밥이 나오니까 그때까지만 좀 참아.”
“저는 여기 오기 전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다녔어요. 쉼터에 가면 밥을 줬는데 저처럼 어린애들은 늘 제일 뒤에 서거든요. 그럼 반찬이 없어서 국이랑 밥만 받는 날도, 김치랑 밥만 받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저는 안 굶으면 다행이라고 쉼터 가는 날만 기다렸거든요.”
언니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듣는다는 표시를 했지만 딱히 관심 있게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고, 나는 얼마 없을 흥미를 잃고 싶지 않아 금방 입을 닫았다.
언니 집에 온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언니는 나를 언니가 일하는 공장으로 데리고 갔다. 집에서 이십 분 거리의 대기업에서 내리는 하청을 받아 유지하는 작은 공장이었다. 언니라고 해 봐야 고작 열아홉이었고 그 뒤에 붙어 다니는 나는 더 어렸으니까, 언니는 우리 같은 애를 받아 주는 곳 중에서는 공장이 가장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우리 같은 애가 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나는 언니 말뜻을 이해했다.
공장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는데 가끔 운이 좋으면 잔업까지 남아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는 게 뭐가 운이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이 되어서야 그게 더 많은 돈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공장의 이모들에게는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었고 모셔야 할 부모가 있었다. 개중 하나는 술에 젖은 남편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일들에 비하면 여관방의 방세를 낸다거나 매일 끼니를 먹을 수 있을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가볍게 취급되었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정말 운이 좋아야만 잔업을 받을 수 있었다.
공장은 작업복이랄 게 따로 없었고 주황색 카라티를 하나씩 나눠 줬다. 언니가 나를 처음 만날 때 입고 나온 그 주황색 카라티였다. 그마저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의 몫은 없어서 나가는 사람은 티를 반납하고 떠나야 했고, 들어오는 사람은 나간 사람의 옷을 입어야 했다. 그게 크든 작든 사람들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앞선 사람의 때가 여전히 묻은 티를 입었다. 내게도 때 묻은 주황색 카라티가 하나 떨어졌는데 안쪽 택에는 삐뚤하게 사인펜으로 적은 언니 이름이 있었다. 나는 왜 내가 언니 이름이 적힌 카라티를 받게 되었나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볼 수는 없었다.
공장의 일은 다행스럽게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어렵지 않아서 고민할 필요는 없지만 쉽지 않았기 때문에 늘 긴장할 수 있었다. 긴장을 하면 실수하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 실수를 하면 벌점을 받았고, 벌점이 쌓이면 운이 좋아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잔업에서도 제외당했다. 언니와 나는 당장 입이 하나 더 늘어난 상태라 잔업이 간절했기 때문에 작은 실수에도 예민했다. 이모들은 그 간절함을 일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표현했다. 덕분에 우리는 이모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잔업을 맡았다. 그래 봐야 한 달에 네다섯 번이었지만.
하루는 언니만 잔업이 잡힌 날이었다. 언니와 함께 공장에 다닌 이후로 언니 없이 집에 혼자 있는 건 처음이었다. 언니는 나 혼자 있을 것이 불안해 잔업을 빼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언니의 잔업 기회를 뺏는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기에 부득부득 혼자 집에 가서 쉬고 있겠다며 언니를 말렸다. 먼저 집에 가서 빨래를 정리하고 청소를 하고 언니를 기다릴 요량이었고, 어쩌면 퇴근한 언니가 칭찬해 주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감 같은 게 마음에 가득 차 집에 가는 길 내내 발이 들썩거렸다.
평소의 언니는 내게 빨래 정리나 빨래 따위를 시킨 적이 없었다. 사실 언니와 나는 공장 말고 나가는 곳도 없어서 주황색 카라티나 바지 몇 벌 외엔 빨래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마저도 늘 자신이 먼저 일어나 빨래를 하고 정리해 버리는 것이었다. 언니의 그런 행동들은 은근 나를 언니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언니의 일상은 내가 없어져도 달라지는 게 없을 거니까, 일말의 허전함조차 느끼지 않을 거라는 불길한 서운함이 들었다.
언니의 옷을 개어 언니가 늘 놓아두는 구석의 옷들 옆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언니는 유독 색이 밝은 옷만 입었는데, 그래서인지 언니를 생각하면 늘 뭔가 환한 느낌이 났다. 그런 언니에게도 어두운 옷이 있기는 있었다. 내가 이 방에 처음 들어왔던 순간부터 그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던, 한 번도 펼쳐지거나 입혀진 적이 없는 옷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니가 어제 입은 옷을 새벽에 빨아 다음 날 또 입으면서까지 그 옷들을 건드리지 않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어두운 옷들은 이제 너무 유행이 지나 버려 입기엔 촌스러워서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나 과거의 취향을 후회하는 것처럼 언니에게도 감추고 싶은 과거의 취향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어두운 옷을 하나 꺼내 들었지만 옷은 예상과 다르게 아무 그림도 무늬도 없었다. 다음 옷을 꺼내 들어 봐도 똑같은 무지 티셔츠일 뿐이었다. 그것들은 그냥 아무것도 없어서 유행을 타기도, 유행이 지나기도 어려워 보였다. 혹시 모른다며 언니 과거의 부끄러운 취향을 들추려던 마음이 식어 가라앉으려던 찰나에, 세 번째 옷에서는 둘둘 말려 있던 책이 옷 아래로 떨어졌다. 몇 번이고 열어 본 것처럼 표지에는 세로로 긴 주름이 나 있는, 오른쪽 구석에 ‘ㅇㅕㅇㄷㅗ’라고 적힌 검정고시 문제집이었다. 궁금증은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라 품에 안고만 있을 땐 신경 쓰이지 않다가도, 열지 말라는 말을 듣기라도 하는 날엔 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었다. 영도라는 이름은 내게 그랬다.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름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을 알게 됨과 동시에 이름의 주인에 대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자가 생긴 것이다. 그럼 당연히 어떤 상자인 줄도 모르면서 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는 것이었다.
책을 뒤적거리며 영도에 대해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책에는 문제를 푼 흔적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도는 내가 오기 전에 여기 있던 사람일까, 영도와 언니는 무슨 사이일까, 영도는 나를 닮았을까, 내가 찾은 영도가 정말 영도이긴 한 걸까. 질문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영도가 언제나 나와 언니가 있는 방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 외에 내가 영도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나는 풀리지 않는 물음들 대신 그 어두운 옷들을 다시 원래 모습으로 정리했다.
언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나는 혹시 언니가 옷이 흐트러진 것을 알아차리면 어쩌나, 개어진 옷들을 보며 자기가 옆의 옷까지 건드린 것을 알아차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언니와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걱정과는 다르게 언니는 그냥
“우리 영도, 내가 할 건데 그냥 두지 그랬어”
했고, 나는 태연한 척하며
“언니, 저 잘했죠?”
했다. 발을 들썩거리며 기대한 저녁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날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 언니가 자는 쪽을 쳐다봤지만 방에는 창이 없어 언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 불빛으로 언니의 얼굴을 비출 수 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자는 언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언니 얼굴을 몇 번이고 새로 그렸을 때 나는 확실해졌다. 나는 언니가 필요해. 나는 영도가 되어야만 해. 영도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언니에게 필요한 것이 영도라면 나는 기꺼이 영도가 될 수 있다.
공장에서 언니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밥을 먹을 때뿐이었다. 안에서도 딱히 멀리 있지는 않았지만, 대화를 한다고 한들 기계 소리에 말소리가 묻혀 제대로 전달이 되지도 않았다.
“언니, 저 검정고시 치려고요.”
“검정고시는 갑자기 왜.”
“주말에 책 사러 같이 갈래요? 검색해 보니까 가서 보고 사는 게 좋다더라고요. 공부 안 한 지도 너무 오래라 보고 제일 쉬운 걸로 살까 싶어요. 어차피 잔업 없는 날은 집에 가면 휴대폰만 했으니까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
“어차피 칠 생각이었으니까 빨리 시작하면 빨리 시작할수록 좋잖아요. 저 서점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언니는 알죠?”
언니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식판을 들고 나갔다. 언니랑 싸운 적이 없어 저게 화가 난 표정인지, 당황한 표정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혹시 내가 영도인 척을 하는 걸 언니가 알았으면 어쩌나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었지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나는 그날 처음 이해했다.
공장으로 돌아가서 마주친 언니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나와 눈조차 마주쳐 주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언니는 왜 나를 봐 주지 않을까, 정말 영도인 척하는 것을 알게 된 건 아닐까. 그게 언니가 나를 봐 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체기에 토까지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모들의 성화에 나는 결국 조퇴를 했고, 해가 떨어지지 않은 낮의 거리를 혼자 걸어 집에 왔다. 도착해서 방에 들어왔을 땐 언니나 영도에 대해 생각할 정신은 남지 않았다. 밤에 잠을 못 잔 탓인지 자꾸 눈이 감겼고, 목에 신물이 남아 목이 컥컥 걸렸다. 그렇게 기절하듯 잠들었다 깼을 때는 벌써 저녁이 되어 언니가 들어오고 있었다. 언니는 평소처럼 영도야, 하는 부름이나 인사도 없이
“약 먹어.”
하며 비상약이 담긴 약 봉투만 바닥에 던졌다. 나는 그래도 언니가 내 생각을 해 주었구나, 나를 걱정해 주었구나 하는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그제서야 아까 못다 끝낸 걱정들이 밀려왔다. 정말 내가 영도인 척을 하는 걸 알았을까.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방의 공기가 평소보다 무거워 자꾸 몸이 가라앉는 것 같았는데 언니는 나를 잡아 주지 않았다. 머리가 핑핑 돌고 깨질 것 같은데 언니는 나를 봐 주지 않았다. 언니가 봐 주면 두통이 싹 가실 것도 같은데.
약을 먹으려고 하니 마침 물이 똑 떨어졌다. 바닥에서만 찰박거리는 물을 보고 있으니 괜히 서러워져 그냥 엉엉 울었다.
“왜 울어.”
“물이 없어서요. 언니, 약을 먹어야 되는데 물이 없어요.”
왜 하필 지금 물이 떨어졌을까, 언니는 왜 약은 사다 줬으면서 물은 사다 주지 않았을까, 나는 왜 물이 없는 것도 몰랐을까, 나는 왜 영도가 될 수 없을까.
아침은 평소처럼 언니가 나를 다시 깨웠다. 언니는 어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를 대했지만 나는 언니를 볼 때마다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그러다가도 어제 울었던 게 부끄러워 몇 번이고 심장에 주먹질을 했다.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꺼내면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없을 것 같아서 다른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만 혼자 마음이 불편해져 속을 뒤집었다.
다행스럽게 그다음 날은 언니가 다시 혼자 잔업을 맡게 되었다. 언니는 내가 혼자 있을 게 걱정되니 잔업을 빼고 같이 집에 가겠다는 말을 더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내심 서운했지만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문 앞에 생수 번들이 놓여 있었다. 인터넷으로 언니가 주문했을 생수 번들. 나는 거기 그대로 서서 그때처럼 엉엉 울었다. 내가 진짜 영도가 된 것 같아서, 언니 마음에 내가 한 주먹 정도는 들어 있을 것 같아서, 언니도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는 언니와 싸우거나 냉랭해진 적이 없었다. 일을 마치고 와 내가 문제를 풀면 언니가 답지를 가지고 있다가 채점만 해 줬다. 언니가 틀렸다고 체크해 주는 게 부끄러워 문제집을 찍어 언니가 잘 때 이불 안에서 혼자 공부를 했었는데, 언니는 그것도 모르면서 내가 배움이 빨라 곧 확인해 주지 않아도 다 맞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부터 한 번도 이불 밑에서 몰래 공부하지 않았다. 가끔은 아는 문제를 풀지 않고 넘기기도 했다.
시험 전날에는 공장 이모들이 음식을 챙겨와 작은 파티를 열었다. 파티라고 해봐야 든든한 밥을 챙겨 먹여야겠다는 이모들의 식탁이 다였다. 내가 보란 듯이 합격해 주기만 하면 벌써 우리 공장에선 검정고시 합격자가 두 명이라며, 합격해서 나가더라도 이모들이 해 준 마지막 밥은 잊지 말라며. 먼저 합격한 사람이 영도라는 건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언니는 남은 음식을 집에 가지고 가서 내일 점심 도시락으로 싸 준다고 했다. 이모들은 시험을 잘 치려면 든든하게 따뜻한 밥을 먹어야 되는데 했다.
시험 문제는 문제집을 풀 때보다 쉬웠다. 풀면서 막힌 적도 없었고, 떨어질 거라는 일말의 불안감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기분 좋게 집에 가는 내내 뭐라고 자랑을 할지만 고민했다. 오랜만에 집에 가는 발걸음이 들썩거렸다.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꿉꿉한 냄새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겼다. 그 냄새는 여전한데, 널브러진 옷이 없었다. 언니가 새벽에 빨고 널었을 옷이 없다. 구석의 어두운 옷들은 여전한데, 언니의 그 밝은 옷들만 거짓말처럼 사라져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불안감이 나를 쓸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었고, 너무 기분이 나빠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도시락을 담았던 가방을 던지고 바로 공장으로 달렸는데, 달리는 내내 한 번도 숨이 차지 않았다. 나는 달려 본 적도 없으면서 꼬박 십 분을 헉헉거리지도 않고 공장으로 달렸다.
그렇게 달린 공장에도 언니는 없었다. 다들 언니를 찾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기만 했다. 당연히 내 시험 때문에 언니가 같이 쉬는 줄 알았다고 하는 이모들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아무도 언니를 찾는 걸 돕지 않았다. 언니가 어딜 나갔나 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라, 때가 되면 다 알아서 들어올 거다 하는 말만 했다. 이모들은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도 아무것도 이상하게 여기질 않았다. 나 혼자 불안함에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언니는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번호는 이미 바꿔 버렸는지 전화가 걸리지 않았다. 먼젓번엔 걔가 얘를 두고 가더니, 이번에는 얘가 쟤를 두고 가 버렸는가 보다야. 언니가 사라진 곳에는 이런 말만 남았다. 그러다 일주일 정도 흘렀을 때 공장으로 전화가 왔는데, 갑작스럽게 떠나서 죄송하다며 여태 일한 돈을 계좌로 좀 보내 달라는 언니의 전화였다. 언니는 내 안부를 묻지도 않았다. 원래 나는 언니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언니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았나 보다. 그날은 일을 하며 혼자 울었다. “언니, 저는 지수예요. 언니 저는 영도가 아니라 지수였나 봐요.”하고 울었다. 기계음이 너무 커서 아무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렇게 현실이 불청객처럼 뒤통수를 쳤지만 나는 언니의 유무 외에 달라진 것이 없었다. 거기서 열아홉을, 또 스물을 보냈다. 이제는 달에 적어도 아홉 번은 잔업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언니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이 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겨우 배웠다. 내가 영도여도 언니가 나를 떠났을까 생각도 해 봤고, 돌아오는 아침에는 눈을 뜨지 않길 바란 날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면서 자주 깼고, 아침이면 여전히 눈을 떴다. 자다가 죽길 바란다는 기도를 하면서도 몸이 조금 아플 기미라도 보이는 날엔 꼬박꼬박 약을 챙겼다.
스물한 살 생일이 되는 날에는 공장을 관뒀다. 악착같이 모았던 돈을 모두 모아 나가서 살 방도 구했다. 어쩌면 몇 년 더 일을 하고 돈을 더 모아 대학에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가서는 피시방이나 편의점 알바 같은 게 해 보고 싶었다. 요리도 배우고 싶었고, 기타나 피아노 같은 악기도 배워 보고 싶었다.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지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는데, 방에는 챙길 짐이랄 게 없었다. 들어올 때보다 늘어난 짐이라곤 주인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영도의 옷뿐이었다. 이걸 챙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면서도 일단 가방에 옷을 담았다. 짐을 다 챙기고 마지막으로 주인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할머니는 혹시 모르니 투숙객 관리서에 연락처를 하나 적어 달라고 했다. 거기 영도가 있었다. 장기 투숙객이 많지 않았던 탓인지 한 페이지를 다 넘기기도 전에 영도의 이름과 번호가 보였다. 어쩌면 언니는 그때 진짜 영도에게 가 버린 것이 아닐까.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내 이름과 번호를 적으면서 속으로는 영도 번호를 외웠다.
여관에서 나와서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차라리 걸리지 않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심하게도 신호음이 들렸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 이내 신호음은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대여섯 번의 신호음이 간 뒤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을 땐 이게 영도가 아니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차라리 예전에 이미 번호를 바꿔 버려서 생판 모르는 다른 사람이 받으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을 텐데.
- 여보세요?
“……”
- 여보세요? 누구세요?
“혹시 영도 씨 전화기 아닌가요?”
- 맞는데 누구세요?
영도의 목소리는 생각한 것처럼 낮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어쩐지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언니가 영도와 있는 것이라면 내가 찾아갈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영도가 없을 때나 영도였지 진짜 영도 앞에서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음을 잘 알았다. 결국 영도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도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가방 안의 어두운 옷들은 버려지거나 주인을 찾아야만 했다.
전화로는 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영도와는 문자로 약속을 잡았다. 여관에 두고 간 것들을 전해 줘야 한다는 말에 영도는 더 묻지도 않고 나를 만나기로 했다. 만약 언니가 영도와 같이 있지 않으면 나는 영도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언니의 무엇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는 영도가 어두운 옷을 입고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영도가 입었던 옷들 중에선 밝은 옷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영도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그 존재 자체로 내게는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언니를 만난 이야기부터 언니와 같이 살았던 이야기를 했다. 구석에는 항상 이 옷들이 있었는데, 우연히 투숙객 장부에서 번호를 찾아 연락을 했다고. 영도가 없는 거기에서 나는 언니에게 영도로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제외하곤 언니가 떠난 이야기까지 나는 모두 다 해 주었다.
영도는 내 이야기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와 언니가 살았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영도와 언니는 서로의 첫사랑이었다는 이야기, 언니보다 두 살 많은 자신은 언니와 사는 게 두려울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등. 외에도 검정고시 합격 후 언니를 버리고 돈을 탈탈 털어 고시원에 겨우 살았던 이야기, 버둥거리며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난 이야기, 지금은 아이가 있어 휴학을 했다는 이야기 등을 해 주었는데 나는 영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차마 면전에 대고 웃을 수 없어 이야기를 듣는 내내 허벅지를 꼬집었다.
나는 언니와 사는 내내 영도가 되고 싶었다. 언니가 내게 이름이라도 붙여 곁에 두고 싶던 영도라면 언니와 영영 같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영도가 되고 싶은 나머지 언니의 마음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언니에게 영도란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검증하거나, 언니에게 나를 존재하게 만들 생각이라곤 하지 않는 멍청한 실수를 해 버린 것이다. 나는 언니를 향한 사랑에 무한정의 투입을 하였지만 휘발유로 가는 차에 경유를 넣은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언니는 내가 영도가 아니라서 떠난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영도가 되어 버려서 나를 떠났다.
나는 영도가 언니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신 언니를 찾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또 다른 과거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일은 편의점이나 피시방의 구인 공고를 찾을 것이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피아노는 못 쳐도 기타는 쳐 볼 수 있겠지. 아등바등 모아서 살다 보면 나도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득하게 영도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영도와 헤어질 때 영도는 이렇게 만나는 게 반가운 일일 줄은 몰랐다며 가끔 만나자고, 번호를 저장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지 못할 게 뭐가 있겠냐며 꼭 전화하라고 대답했지만 영도와 헤어지기 무섭게 영도의 번호를 지우고, 언니의 옛 번호도 지워 버렸다. 집에 가는 걸음이 너무 가벼워 자꾸 발이 들썩거렸다.
10·18문학상 단편소설 심사평
소설 쓰는 매력 중 하나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입을 통해 무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짝사랑에 목매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왕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고양이가 될 수도 있다. 작가는 그와 같이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 참 신나는 일이다.
올해 <10·18 문학상>의 소설 부문은 이런 재미를 비껴갔다는 점이 무엇보다 아쉬웠다. 투고 작품의 수나 내용이 빈약한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 다양한 세계로 나아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한마디로 대부분 예비 작가들이 너무 정직(?)하여 딱 ‘대학생’의 시각에서 그만큼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소설이 주는 감동도 재미도 주제의 형상화도 이루어지기 어려웠고, 결국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가작으로 선정된 <영도>는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지수’라는 인물이 ‘언니’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언니가 불러주는 대로 ‘영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는 주인공 화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는 과정, ‘언니’라는 인물의 동성애적 코드, 그리고 화자인 ‘나’의 집착적인 애정 등 많은 상징과 의미들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이 되어 그 목소리로 이야기할 줄 안다. 소설의 공식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영도>를 가작으로 뽑으면서 이 예비 작가의 정진을 기원한다.
김은정(국어교육과 교수)
10·18문학상 단편소설 가작 수상 소감
우선 내 수상 총각작이 영도일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영도는 히데코의 숙희처럼 자꾸 아른거리는 작품이었다. 거의 한 달 내내 자려고만 하면 내용이 생각났는데 막상 쓰는 건 꼬박 네 시간 자고 사흘 만에 완성했다. 덕분에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다 쓴 느낌이라 다 쓰고는 문맥 수정 외에 다른 수정은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더 고치고 싶은 곳이 생길까봐 제출 후에는 읽어 보지도 않았다. 이제는 수상이 끝났으니 더는 고칠 수 없다 생각하고 세 번은 읽어 볼까 싶기도 하다.
영도의 초기 구상은 사랑의 세 가지 모습을 담아 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 세 가지 모습을 담는 과정에서 남자를 넣으면 너무 뻔해지거나 너무 비현실적일 것 같아서 일부러 남자를 빼고 사랑 이야기를 썼다. 영도의 끝은 깔끔하고 텅 빈 상자 같아야 하는데, 남자가 들어가면 끝이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악감정 없는 끝을 볼 수 있을 리도 없다. 외에는 그냥 짝사랑하는 평범한 모습을 최대한 표현하고 싶었다. 이 과정에서 짝사랑의 감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낮이고 새벽이고 같이 감정선에 대해 고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수상할 정도의 글도 적을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아무튼 영도가 가작이나마 수상을 했으니 이제는 다음 글을 또 써 볼까 한다. 교수님 심사평을 들은 후로는 정말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사실 심사해 주신 교수님을 입학하는 순간부터 좋아했는데, 졸업 전 교수님께 당선과 가작 중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글을 낼 수 없었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써서 교수님께 다시 내밀고 싶다. 그리고 글을 써서 더 좋은 술을 사 먹고, 더 정성스러운 밥을 먹고, 그러고 다시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언젠가는 장편 소설을, 또 시를, 또 수필을 적어보고 싶다.
박혜빈(국어교육과·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