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하루] 앉은뱅이책상 먹물에 갇히다
[시(詩)가 있는 하루] 앉은뱅이책상 먹물에 갇히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2.1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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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책상 먹물에 갇히다


                                                         김태근


붓과 벼루의 간격
먹을 갈던 시간들이 저물고
‘기역 니은’을 가르치던 아버지가
수분지족守分知足의 삶을 서까래에 매달고 육남매를
세뇌시켰다.
소화마을에 으앙으앙 울음소리 들려오면
아버지의 두꺼운 옥편에서
아이들 이름 하얀 튀밥처럼 톡톡 튀었다
축문 제문 읽는 소리 문풍지 흔들며 잠을 불러내었다
고기냄새 대신 먹내음 집안 가득 고이고
제문소리 축문소리 자장가로 안단테 안단테
매미 목이 쉬어도 불나방은 모여들고
폭풍우와 눈발 틈에 난 낡은 청마루에서
작은 종달새 먹을 갈고
아버지는 잠자리 붓을 잡고 세월을 잡으셨다
나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붓 한 자루 들고
먹물이 이끌고 가는 크나 큰 세상으로 들어가
검은 허공에 필기체로 외친다
허랑한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검은 먹물이 불러들인 우주에 갖힌다
어둠이 착륙시킨 아버지의 넓은 우주
그 끝없는 우주 속으로 작은 눈물의 소야곡이 흐른다

 

*김태근( 대학원 교육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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