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다음에, 차 한잔 하자
[교직원 칼럼] 다음에, 차 한잔 하자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1.29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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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에서 어쩌다 지인과 마주치면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몇 초간의 인사를 나눈다. 무슨 급한 일이 있다는 듯이 “다음에 차 한잔 하자”라는 말을 남기고 서로 등을 돌리며 총총히 사라진다. 차 한 잔의 약속이 잊히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짧다.

  차를 마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차 한잔을 같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혼자, 때로는 여럿이 차를 마신다. 선인들은 차를 마시는 품격에 대해 말하기를, 혼자 마시면 신령스럽고, 둘이 마시면 정취가 있고, 셋이 마시면 즐겁고, 오륙 명이 마시면 평범하고, 그 이상이면 나눔이라고 했다.

  우리 대학 고운학연구소에서는 해마다 차를 나누는 특별한 날이 있다. 학술대회가 열리는 날, 연구원들이 찻자리를 정성스럽게 만들고 차를 우려 내놓으면, 휴식 시간에 문화의 향기가 더해진다. 최치원(857~?) 학술대회에서 특별히 차를 나누는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차문화사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의 화랑들은 차를 즐기며 심신을 수양했고, <삼국유사>에는 월명사가 <도솔가>를 불러 왕으로부터 차를 하사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리산 쌍계사에 가면 국보 제47호인 ‘진감선사대공영탑’이 있다. 비문의 주인은 진감선사 혜소이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여 소림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선종의 성지인 종남산에 들어가 도를 닦고 신라로 돌아왔다. 그는 역대 왕들의 숭앙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최치원은 왕명을 받아 진감선사의 비문을 짓고 글씨까지 썼는데, 여기에는 혜소의 차 생활이 그려져 있다. 혜소는 숯이 아닌 섶으로 불을 지피고 가루로 빻지도 않고 차를 끓이면서 말하기를 “나는 차 맛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뱃속을 적실 따름이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치원은 ‘참된 것을 지키고 속된 것을 꺼림이 모두 이러한 것들이었다.’고 평가했다. 혜소의 정신세계의 지경을 이처럼 상징적으로 설명한 최치원의 혜안이 눈을 확 트이게 하는 부분이 다. 또 그때 ‘단차(團茶)’의 덩이를 절구에 빻아 가루로 만든 뒤 쇠솥에 끓여 마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의 형태는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관리로 있을 때 쓴 <새 차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글>에도 보인다. 또 차 잎을 딴 사람의 공덕, 차를 길러낸 땅, 향기를 불어넣어 준 정원의 공덕이 차의 순수하고 깨끗한 맛을 완성했다고 말한 데서 최치원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다.

  최치원은 차를 마시는 것이 ‘참선하는 중이 조용히 읍하면서 신선을 맞이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혼자 차를 마시며 선(禪)의 경계를 즐긴 그의 차 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노성미(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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