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2929] 여름밤의 배웅길
[톡톡 2929] 여름밤의 배웅길
  • 노윤주 기자
  • 승인 2018.11.28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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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돌아가실 거라고 의사가 그랬는데 1년이나 버티신거 보면 대단하지요. 영국에 사는 막내 고모가 얼굴을 비추자마자 돌아가셨잖아요. 뇌가 터진 상황에도 자기 딸이 어지간히 보고 싶었나 봐요.” 숙모들의 대화를 들으며 상복을 입는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꽃 사이에 놓여진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쓰라린 침묵이 유지되는 공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가슴에 아려온다.

  “이제 입관하겠습니다. 가족들은 절 따라와 주세요.” 남자 직원을 따라가면 반듯하게 누워 있는 그가 보인다. 평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고 쓰러지듯이 울었다. 아무래도 그가 병으로 인해 입원을 하고 자주 만났던 어머니이기에 더 마음이 심란하신 듯했다. 매일 저녁, 병원에 누워 있던 할아버지를 보살피던 아버지도 두 눈이 새빨개진 채 울음을 삼켰다. 그동안 그에게 모질게 굴었던 작은 숙모도 작은 정이 남아 있는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와 할아버지 사이는 돈독했다. 우리는 영화와 양식을 좋아했다. 매주 주말이 되면 그와 나는 영화관에 가서 다양한 영화를 관람했다. <조폭 마누라>가 보기 싫어 저번 주에 봤던 <미녀는 괴로워>를 또 보겠다고 우기면, 그는 나와 같이 <미녀는 괴로워>를 관람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항상 피자를 먹었다. 그와 영화 데이트는 2년 동안 이어졌다. 이후, 그는 큰아버지 댁과 함께 섬으로 떠났다. 나는 귀찮다고, 바쁘다는 이유로 찾아가지 않았고 그의 소식이 들려온 건 4년 뒤였다. 그의 뇌에서 혈관이 터져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이었다.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며칠 만에 금방 잊고 잘 지냈다. 또다시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그를 만나러 병원에 갔다. 그의 아픈 모습을 처음 본 날, 3일 동안 엉엉 울었다. 너무나도 왜소하고 야윈 그는 몸집에 맞지 않는 작은 침대에 구부려 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내 머릿속에 깊게 박혔고 그때의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 발인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족들은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시길 바랍니다.” 직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든 가족은 깔끔하게 놓여진 관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조용한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마음이 지끈지끈 아파왔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은 가족을 제지하였다. 그리고 그가 놓여진 관은 문 너머로 사라져갔다. 가족은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머무를 수 있는 휴식 공간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음료를 마시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제야 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났다. 죽음이 아무 부질없고 한순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죽음을 부정하고 버텨왔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난 눈물을 머금었다. ‘죽으면 모든 게 한순간인 것을. 왜 그는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갔는가.’라는 생각에 목구멍이 쓰라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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