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의 발밤발밤] 뜨거운 노래는 나무에 새긴다
[정일근의 발밤발밤] 뜨거운 노래는 나무에 새긴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1.0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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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며, 오래 사유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다 영원히 사는 나무의 생명윤회에서 한 말씀 엿들었지요. 절집에서 나무는 남무(南無)에서 왔으니 돌아가는 것이라고요. 사람이 나무 곁에 서는 것 역시 나무 따라 돌아가는 일이라고요.

  11월입니다. 저는 11월의 나무와 나란히 서서 나무와 함께 돌아가는 중입니다. 나무는 꽃이며 열매, 잎까지 마지막엔 모두 나눠주고 돌아갑니다. 그 위대한 빈손 앞에 여전히 무엇인가를 움켜잡고 있는 제 손이 부끄럽습니다. 보십시오. 나무들이 가벼워져야 돌아가는 시간, 11월입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은 아미타불의 세계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글자 수가 6자여서 ‘육자명호’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진언(眞言)이지요. 진언을 일러 ‘어리석음의 어둠을 깨고 진리를 깨닫는 성스러운 지혜.’라고 했습니다.

  나무야나무야. 11월에 제가 나무를 부르는 말은 저의 진언입니다. 숲의 스승인 나무에게서 배우게 해달라는 지혜의 간청입니다. 나무는 나무, 돌아가는 것들이 숲에서 빈손으로 직립해 있습니다. 가벼워지고 가벼워져 새와 같이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숲에 들면 나무를 껴안고 속삭입니다. ‘고맙다, 고맙다. 나무야 고맙다.’ 속삭이면 나무는 나무의 말로 답을 합니다. 나무는 제 이야기를 다 듣지만 저는 아직 나무의 답을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공부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듣지 못하기에 11월이면 숲에 들어 나무에게 묻습니다.

  어린 시절 진해의 벚나무가 저에게 계절의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초록의 잎이, 가을에는 낙엽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그중에서 겨울나무의 빈손 휘추리가 회초리가 되어 저를 아프도록 가르쳤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던 무(無)의 가르침이었기에 더욱 아팠습니다.

  청년 시절, 월영캠퍼스의 나무들이 저에게 시를 가르쳤습니다. 대학의 교목인 설송(히말라야시다)의 품이, 청년정을 지키는 졸가시나무의 푸름이, 메타세콰이어의 굽히지 않는 기상이 가슴이 뜨거웠던 청년에게는 서사가 되었지요. 월영지에 만개한 가없는 벚꽃은 서정이 되었지요. 그래서 저는 ‘나의 사랑 나의 대학’이라 이름했었습니다.

  시인 청마(靑馬)는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하였지만, 저는 뜨거운 노래를 진해와 월영지의 나무에 새겼습니다. 나무에 새긴 노래는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변주되고 탄주되며 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숲은 위대한 대학이고, 나무는 거룩한 스승이라는 말씀입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의 소리를 얻었습니다. 미래불인 미륵은 56억7천만 년 후 용화수나무 아래서 법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11월입니다. 나무와 나무가, 사람과 사람이 나란히 서는 달입니다. 나무는 나무에게 배우고, 사람은 사람에게 배웁니다.

  사랑하는 젊은 벗들이여. 11월에는 숲에 들어 나무의 노래를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나무에 귀를 대고 강이 흐르고, 바다가 밀려왔다 밀려가고, 별이 태어났다 사라지는 자연과 우주의 가르침을 받길 바랍니다. 결국 우리 모두 나무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나무야나무야’ 나무의 진언이 깨달음의 소리로 터져 나오면서.

시인(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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