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미친 공간
대학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미친 공간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11.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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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츠가 쓴 자서전 제목은 『슈 독(SHOE DOG)』이다. 신발에 미치다는 뜻이다. 그 책을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거기 신발에 미친 사람의 이야기가 쓰여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미친 사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돈키호테다.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 『재기발랄한 시골 귀족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가상의 인물이지만 돈키호테는 지금까지도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인간형으로 상징된다.

  나는 그 소설 중에 “꿈꾸는 자가 미친 겁니까 아니면 꿈꾸지 않는 자가 미친 겁니까”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대꾸한 말이다. 그렇다 미친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를 꿈꾸며 나아가기 위해서 미치지 않고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돌이켜보면 사회에서 만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무엇에 미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미친 척이라도 해보았던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경험을 직접 해 본 적이 있느냐 없느냐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

  대학 시절 동기나 선·후배들 중에 무엇에 미쳐 있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고 작가가 됐다.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등 정치가, 미술이나 무용 등 예술가, 기자나 PD 등 언론인, 은행 등 금융권에도 우리 대학 출신들이 가득했다. 무엇이 그들을 성공한 사람들로 만들었는지 그 세세한 과정은 다를 거다. 하지만 나는 그들도 ‘미친 사람들’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고 틀림없이 확신한다.

  그럼 미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미친 사람은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혼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밥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누군가와 사랑을 하면서도, 때로는 숨 쉴 때조차도 그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치열하고 집요하게 매달려야 진정한 미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의 동기 중 한 명은 대학 입학식이 끝나고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나를 만난 뒤 이렇게 물었었다. “넌 우리 과에 왜 왔어?” 나는 초면에 그가 묻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난 만화 그리러 왔어.” 난 그때 속으로 그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국문과에 만화를 그리러 왔다니 황당해서 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드래곤 라자』라는 우리나라 판타지 소설의 한 획을 그은 작가가 됐다. 나중이지만 우연히 그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그의 방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원어로 된 일본 만화를 보고 ‘그는 이것에 미쳐 한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그들은 돈키호테처럼 환상에서 깨지 않고 현재도 미쳐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족을 꾸리게 되면 아주 현실적으로 변한다. 먹고 살기 위해 직업을 가지면서다. 꿈을 가진 자가 겪게 되는 가장 큰 고통이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한번 미쳐본 사람 혹은 미친 척 한 사람은 계속 그 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즐기기까지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살면서도 그 속에서 어떻게 계속해 꿈을 꾸고 즐기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까. 그건 물이 모양이 다른 그릇에 담기면 겉으로는 형태가 달라지지만 그 속성은 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것은 미치거나 미친 척하는 고행의 과정을 겪어야만 얻을 수 있다. 사족을 붙이면 무엇엔가 미쳐본 적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꿈꾸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도 미칠 수가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 무엇에 완전히 미쳐보지 못했다. 무엇에 미치고 싶어는 했다. 그것만으로 20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무언가 미치고 싶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있다. 그것이 책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여행이든 상관없다. 무엇에 미친 사람은 세상을 물고 늘어져 절대 나가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대학은 그런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미친 공간이 아닐까. 제정신을 가지고 교문만 들락거리기에는 너무 자유롭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곳이 아닌가.

위성욱(동문,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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