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지역 인물(7)-예향 마산을 새긴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이달의 지역 인물(7)-예향 마산을 새긴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8.2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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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9월~11월 ‘이달의 지역 인물’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을 선정했다.
  선생의 본명은 문안신. 우리 고장 마산에서 태어나 일본·프랑스에 유학하고 조각, 유화, 드로잉 등 3,500점에 이르는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 이달의 지역 인물 선정위원회

 

예향 마산을 새긴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예술의 본거지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린 조각가 문신(1923~1995)은 시메트리(symmetry: 대칭) 추상 조각의 거장이다. 국내·외 평론가들은 그를 ‘좌우 균제미의 대가’, ‘작품 속에 우주원리를 담아내는 작가’라고 호평했다. 문신 작품은 좌우 대칭의 추상적인 형상이지만 어떤 구체적인 형상을 연상케도 한다. ‘곤충 같다’, ‘식물 또는 인체 같다’라는 관람자의 반응에서 문신 조각의 특징을 알 수 있다.
  문신(본명: 문안신)은 마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영화 간판 그리기 등으로 미술의 꿈을 키웠다.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광복 후 1961년 프랑스 유학 가기까지 개인전을 여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주로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띠는 회화였다.
  프랑스로 가서 16세기에 만든 라브넬성의 수리 작업에 참여하면서 문신은 추상 조각으로 전환하였다. 1970년 프랑스 발카레스 조각 심포지엄에서 <태양의 인간>(13m)으로 세계적인 조각가에 이름을 올렸다. 1970년대 말까지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에서 15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1980년 마산에 돌아온 문신은 1988년 서울올림픽 공원에 그의 불후 명작 <올림픽 1988>(25m)로 다시 한 번 세계적인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예향의 도시 마산에서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며, 문신미술관도 직접 만들어 운영했다.
그의 예술 업적으로 1992년 프랑스 예술 문학 영주장, 대한민국 세종문화상, 금관문화훈장(1995년)이 수여되었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에서는 명예 문학박사 학위(1995)를 수여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라는 생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친 문신은 1995년 5월 24일 타계하였다. 지역을 사랑했던 그는 지역사회의 예술혼이 되어 예향 마산을 새기고 있다.

문신미술관
-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 문신 조각의 결정체-

문신미술관 전경
문신미술관 전경

마산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추산언덕에 서 있는 문신미술관. 조각가 문신의 작품과 예술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예술 공간이다. 상설전시실인 제1전시관, 기획전시실인 제2전시관, 석고 원형을 전시하는 원형미술관, 야외조각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각 127점, 석고 원형 116점, 유화 16점, 채화 129점, 드로잉 2,235점, 공구 489점, 기타 860여 점 등 총 3,972여 점의 소장 자료가 있다.
  주요 전시 작품으로는 <고추>(1946), <아침바다>(1952), <정물>(1959) 등의 회화가 있고,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화(和)Ⅱ>(1988), <지(志)>(1989), 청동으로 제작된 <개미>(1989), <하나가 되다>(1989) 등의 작품과 흑단, 주목, 돌로 만든 조각품도 여럿 있다. 또한, <우주를 향하여 Ⅲ>(1989) 등 116여 점의 석고 원형과 여러 드로잉과 채화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문신미술관 그 자체가 문신의 예술 작품이다. 그의 열정과 예술혼으로 만든 문신 작품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1938년 일본 유학에서 번 돈으로 지금의 미술관 터를 마련하였으나, 6·25전쟁과 프랑스 유학으로 미술관 건립이 중단되었다. 그 후 1980년 그가 유학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하여, 1994년 5월 27일 미술관을 완성하게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고향 마산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라고 유언했고, 2003년 지역사회에 기증되었다. 2004년 4월 30일 재개관되어 지역 문화 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문신 예술 50년의 꿈과 영혼이 서린 문신미술관은 그의 삶과 예술, 철학이 만들어 낸 역사이며, 예술로서 고향 마산 발전을 빛낸 조각가의 예술 결정체이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 예술 자산으로 지역민이 잘 계승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을 빛낸 조각가 문신이 지역에 남긴 예술 사랑

올림픽1988
올림픽1988

  많은 사람들은 우리 지역을 중심으로 가장 열정적으로 예술 활동을 펼친 예술가로 문신을 꼽는다. “사랑하는 고향 마산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라는 그의 뜻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가 남긴 문신미술관과 예술 작품은 지역의 문화 예술 자산으로 우뚝 서 있다.
  또한, 올해로 제17회를 맞은 문신미술상 시상식, 2018 창원 조각 비엔날레 <불각의 균형> 개최에도 문신의 지역 사랑, 예술 사랑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영원한 생명을 갈구하는 주옥같은 명작을 탄생시킨 조각가 문신이 남긴 육필 원고에서도 그의 예술관과 예술 사랑, 지역 사랑과 나라 사랑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노예처럼 작업하고, 나는 서민과 같이 생활하고, 나는 신처럼 창조한다.”……“오늘이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한국을 현대 조각의 산실로 만들겠다.”, “문신 예술이 지나온 길이 바로 이 나라 예술 역사다.”
  “한국인 문신이 작품 하나로 세계에 날리고 있습니다. 더 크게 뛰어나가 작품으로 세계만방에 한국을 알리고 싶으니”……“마지막 소원은 고향으로 돌아가 고향 땅에서 작업하면서 뼈를 묻는 것이다.”
  “예술은 우선 느끼면서 감동을 하여야 한다.” “예술가들은 오로지 자기 예술 세계 확립에만 매달려야 한다.”
  “정부는 변하여도 조국은 영원하며, 예술 또한 영원하다.”……“몸은 비록 내 고향 미술관 언덕에 안치된다고 하더라도 살아서 못다 한 예술 세계를 찬란히 부활시켜 민족 문화와 더불어 영생케 해 달라.”
  우리 지역은 문신 외에도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 박종배(1935~ ), 박석원(1942~ ), 김영원(1947~ ) 등의 세계적인 조각가를 여럿 배출한 ‘조각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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