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올여름이었다. 하지만 이 뜨거웠던 여름을 우리는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청년, 3.15의 여성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다’는 주제로 창원시 양성평등사업을 전개하며 더 뜨겁게 보냈다.
3.15는 우리 지역의 시민들이 펼친 가장 대표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지역민의 자랑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기록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마산여고, 성지여고, 제일여고, 그리고 간호학교 여학생들도 남학생들 못지않게 열렬히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망은 남·녀 구분이 없었고 단결된 힘은 결국 4.19로 이어져 독재정권을 물리쳤다. 나는 소외됐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당시에 여고생으로, 간호사로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 증언자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당시 주인공들이 나이가 많이 들었고 기억이 희미해진 까닭이 가장 컸다. 어렵게 네 분의 증언 대상자를 모시고 이야기를 듣기로 한 날, 솔직히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할머니가 된 소녀들의 64년 전의 그날은 여전히 생생했다. 당시 성지여고 학도호국단 대대장이라는 직분을 맡았던 이영자 할머니, 김주열 열사 시신의 얼굴에 박힌 최루탄을 빼내던 역사적 장소에 간호사로 참여했던 정성자 할머니, 당시 남자 친구가 수배자가 돼서 경찰의 추적을 당한 최하자 할머니, 제일여고 학생으로 시위에 휩쓸려 공포의 시간을 보낸 구정자 할머니의 이야기도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과 역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여름의 한가운데를 걸어서 3.15유적지를 탐방하는 시간, 청년들은 그동안 지나간 먼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여기던 역사를 눈앞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총탄 자국이 남은 무학초등학교 담장 앞에서, 김주열 시신 인양지에서, 3.15국립묘지에서 뜨거운 분노를 함께 느꼈다. 그리고 역사를 만드는 것은 남자나 여자가 아니라 시민들의 단결된 힘임을 절감했다.
청년들이 그날의 경험을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기록하면 우리 도서관에서는 책으로 펴낼 것이다. 그리고 일본 나고야의 난잔대학교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뜻깊은 작업의 성과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가 될 수 없다. 뜨거웠던 여름에 더 뜨거운 열정으로 만든 여성들의 이야기가 기록을 통해 역사로 남아서 우리가 사는 지역을 사랑하게 하는 작은 힘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윤은주(국어국문과 졸업 동문, 수필가, 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