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당선: 천유진(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3)
에에올*
주인공이 소시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쳤다. 세상에, 또 들키겠군. 모르는 옆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몰래 훔쳐먹은 팝콘을 우물거리다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나 정말 어떡하지?
심장은 거짓말을 안 한다잖아. 주인공은 굶어 죽은 지 한참. 고증도 안 된 영화를 보면서 울다니. 심장은 점점 빠르게 뛰는데 사람들은 어느새 맛이 조금 변한 팝콘을 집어 먹는다.
착각들 하지만 나는 뭐든 먹는다. 가훈이란 유전보다도 끈질긴 것. 비둘기 모이, 오래된 통조림, 아니 하다못해 손이라도 좋다. 잘 먹진 못해도 많이 먹고 자랐단 건 내 오랜 자랑.
슬쩍 일어서는데 카메오가 눈치도 없이 나를 쳐다본다. 얼른 바닥에 떨어진 팝콘 따라 화장실에 간다. 손을 말리는 중에도 상영관에는 찬 바람이 새어 나올 테지만
앞자리 사람은 결말을 안다는 듯 귓속말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 휴지는 잘 버리고 왔나, 영화관 구석에 버려진 침대에서 딴청을 피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막상 주인공의 죽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가족들마저 우는 걸 본 그때. 어릴 적 잃어버렸던 손가락들이 나를 헤집고 가는 것만 같았다. 나의 영원한 당사자들이 항의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진통을 나만 느껴도 좋은 걸까. 영화 속 가족이 시체를 껴안는 걸 보며 스크린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관객석에 숨어있을 감독에게 특별 출연을 제의받을 수도 있겠지만 단지 부스럭거리는 외투를 벗을 뿐이었다.
연인들은 집에 돌아가면서 편의점에 들러 소시지를 하나씩 사 먹을 것이다.
그땐 나도 조금 슬플지도 모른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줄임말.
제5회 3·15청년문학상 시 부문 심사평
이번 심사를 통해 앞으로의 새로운 문학 세대의 젊은 선지자의 잠재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저마다의 개성과 다채로운 음색을 지닌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시 ‘에에올’은 영화에서 따온 시제만큼이나 발랄한 상상력을 여러 정황을 이어가면서 탁월한 문재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 시적 정황의 공간적 이동을 통한 문장의 타임랩스를 구가하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특히 평이한 시어를 구사하면서도 밀도 높은 심리적 감각을 생생하게 잘 표현한 점에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보는 듯했다.
시 ‘모래’는 시적 짜임새가 무척 안정적인 게 강점이었다. 단단한 시적 구성에 걸맞게 시의 풍경을 적재적소의 언어로 부리는 능력이 있어 발화자의 목소리에는 삶의 실감이 묻어난다. 문장의 비약에도 시어는 활력을 잃지 않고 인상적인 착지를 성공시킴으로써 시적 완성도도 높이고 있는 게 대단한 실력이라고 여겨졌다.
팽팽하게 경합하는 두 작품 가운데 단 한 명을 택해야 하는 일은 힘들고 어려웠다. 좀 더 젊은 세대 감각을 유지한 ‘에에올’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전하면서, 아쉽게 손을 들어주지 못한 많은 응모자들에게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우무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