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지] 학우라는 호칭에 대해
[월영지] 학우라는 호칭에 대해
  • 원지현 기자
  • 승인 2024.05.23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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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의 원고를 첨삭한다. 특정 단어 찾기 기능을 통해 쳐낼 표현을 골라 낸다. 학생이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국장이 되기 전, 수습기자 시절부터 꾸준히 들어온 선배들의 말이 있다. ‘군대식 표현 쓰지 않기’, ‘학우라고 표기하기’. 군대식 표현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학우라는 표현은 굳이 왜 고집했던 걸까. 납득 가능한 이유를 떠올리는 데는 늘 실패했다.

  가끔 학보사를 거쳐 간 선배들을 만나곤 한다. 그때 기자실은 어땠냐는 둥 재밌는 취재는 없었냐는 둥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학우라는 표현에 대해 묻게 된다. ‘학우라는 표현은 왜 쓰는 거죠?’. 다들 특별히 까닭을 아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본인들도 그냥 쓰라고 하니 쓰는 거라고. 혹시 다른 표현으로 고쳐볼 순 없는 건지 선배에게 다시 묻는다. 안되는 건 아닌데, 바꾸면 옛날 선배들이 뭐라고 할 수도 있다고 한다.

  같이 공부하는 벗이라는 의미를 담은 학우(學友)는 학생 간의 친밀과 존중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고 한다. 과거 학생들이 서로를 ‘형’, ‘선배’라고 불렀듯이 말이다. 학우라는 표현은 학보에서도 마찬가지의 쓰임새를 갖는다. 가끔은 이 단어의 의미가 과연 올바른 건지 고민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회집단이나 계층을 뜻하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 적용 가능한 형태로 쓰인다. 예컨대, ‘여성’이나 ‘학생’의 경우 타인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스스로를 여성과 학생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정한 집단을 칭하는 표현은 그 집단의 정체성과 함께 그들의 주체적인 의식을 담는다. 학생을 지칭하는 경우에도 모든 인칭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우라는 단어는 그러지 못한다. 오로지 타인이 지칭할 때만 기능할 수 있는 표현은 그 대상을 비주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단어의 주체성까지 고려하지 않더라도, 단순한 물음 역시 떠오른다. 같은 대학 공간을 공유하면 모두 벗(友)인 걸까. 학내 공동체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친밀함을 내세우는 단어가 얼마나 유효할까. 친밀성의 복원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없는 언어만을 일단 사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공허하다. 실제로 친해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것 아닌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같이 앉아서 학식이라도 먹자는 에브리타임 게시글이 생각난다.

  어떤 언어를 쓰든 간에, 본래의 의미와 의도는 기표에 완전히 가닿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더 적확할 법한 말을 고민하더라도 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직은 기자들에게 학우라는 단어를 다른 표현으로 바꿔보자고 말하진 못할 것 같다. 자의적으로 학우를 대체한다고 한들, 단어가 담고자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공허함은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언어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특징을 갖기도 한다. 당장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이 학교의 구성원에 대해 말하고, 쓰려는 사람이라면 어떤 표현이 더 선명함을 가질지 고민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무언가 진짜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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