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원 칼럼] ‘연금 수급자’를 처단하랴?
[교직원 칼럼] ‘연금 수급자’를 처단하랴?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6.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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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고 꾸민 모습이 매력 있고 유행에 어울리는, 그래서 멋진, ‘스타일리시’하다는 말을 무어라고 할까? ‘칙(chick)’이 아니고 ‘식(sick)’도 아닌 ‘시크(chic)’ 하다니 프랑스말로 ‘멋진, 스마트한, 세련된’이란 뜻을 갖고 있는 패션 용어, 이 말이 물 건너오면서 한국에서는 ‘쿨하다, 도도하다, 까칠하다’란 뜻에 가깝게 쓰인다.

  인생 2막을 사는 은퇴자들, 6·25 전후의 폐허와 빈곤 속에서 태어나 가난의 시대에 배고픔을 참으며 일만 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힘으로 나라가 이만큼 살아 있다. 부모님을 모셨고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노후 준비가 제대로 안 되어 많이 받아야 월 100만 원 정도인 국민연금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하릴없이 국가 재정이나 축내고 미래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과중한 세 부담이나 떠안겨서 처단(?붲)해야 할 대상인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실, 역전의 용사! 쿨하고 시크하지 않은가? 늙지 않을 사람 어디 있는가. 감이 제 맛을 내려면 서리를 맞아야 하고 그 한참 후에야 홍시(펤뽊)가 된다. 크고 단단하다고 수박이 달고 맛있던가? 크기를 멈추고 익어야 맛이 드는 법이다. 연금과 건강보험 재정이나 축내는 버러지 같은 인간이라는 자조감이 들어서 이 ‘연금 수급자’라는 용어부터 갈아치우고 싶다. 사실 연금이라고 받아도 약값에, 자식들 뒷바라지에, 귀여운 손주들 먹이고 입히느라 아깝지 않게 주머니 털릴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형편이 더 나빠졌다는 소식이다. 수입이 감소했다는 그 저소득층이고 늙고 병들어 고통은 나날이 늘고 주위로부터 외면 받는 계층인데 다들 내 코가 석 자라 거들떠보지를 않는 것 같다.

  하고많은 아름다운 이름들 중에 하필이면 ‘연금 수급자’라니? 호텔 카페에서 커피를 드립해 마시고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을 달고 살며, 햄버거와 샌드위치, 치킨으로 배를 채우고 시크(chic)하게 살려는 우리들이 제 돈으로 넣고 찾아 쓰는 연금을 마치 배급받는 것 같은 ‘수급자’라는 말로 부르다니! 아름다운 우리말 없을까? 다들 이악하여 시적거린다면 차라리 베테랑(veteran)이나 리타이어리(retiree)는 어떤가. 온갖 풍파를 겪고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지혜의 덩어리인 이 연금 수급자들을 지혜의 신인 미네르바(Minerva)나 아테나(Athena)라고 하면 뭐가 덧나겠는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드레 있고 미립으로 가득할 뿐이다.

조기조(경영정보학과 교수,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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