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 아고라] 기적은 내 안에 있다
[한마 아고라] 기적은 내 안에 있다
  • 언론출판원
  • 승인 2018.06.0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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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이란 상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을 일컫는다. 혹은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두루 가리킨다. 사람들이 기적을 떠올릴 때는 절망의 끝자락에서 구원을 간절히 희구할 때이다.

  절망이란 무엇인가? 사는 것이 팍팍한 것, 하는 일이 헛헛한 것, 마음 둘 길이 없어 아득한 것, 눅눅하게 썩어 가는 어둠 저편에서 바라보는 나의 얼굴이 참으로 낯선 것이다. 어쩌겠느냐. 차라리 절망하라. 사는 것이 매우면 눈을 감으라.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으면 일을 그만두라. 마음 둘 길이 없으면 마음 길마저 버리라. 나의 얼굴이 아니라고 여기면 얼굴을 지우라. 눈 감고 그만두고 버리고 지우면, 어떻게 세상을 살 것인가? 세상에 살지 말라.

  “세상에 살지 말라.”이 말은 내가 경남대학교 식품영양학과 1학년 성적 ‘All F’를 받은 둘째아이에게 던진 말이었다. 이제껏 세상이 부모의 온갖 뒷바라지에 힘입어 살아온 것이라면, 이제 그러한 세상을 버리고 네 스스로 너의 세상을 찾아 떠나라는 선언이었다. 자기 삶의 선택은 자기 몫인 까닭에 그야말로 자유롭게 살라는 것. 제 하고 싶은 데로 살라는 것. 다행히 둘째아이에겐 이제껏 알뜰하게 적립한 통장 몇 개와 결코 버릴 수 없는 조리사의 꿈이 남아 있었다. 대학의 등록금과 자신의 용돈은 오롯이 제 통장에서 사정없이 빠져나갔다. 계절 학기 등록비, 조리 학원 수강료도 역시 제 몫이었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2학년 1학기 성적 ‘All A+’를 받았고, 이후 졸업할 때까지 그에 버금가는 평점을 얻어 내었다. 특히 달라진 것은 툭 하면 제 홀로 여름 지리산, 겨울 설악산 종주 산행을 내달렸다는 것인데, 이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한 자존감의 추락, 이른바 스스로의 낯설음과 고독에 더욱 친해지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떨어지기를 밥 먹듯 하던 조리사 자격 시험도 어느덧, 한식, 양식, 일식, 중식을 거쳐, 마지막 복어에 이르러 냉동 복어 두 짝을 밤새 손질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영양사 면허를 취득하고 해외 현장에서 부대끼며 양식 조리를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을 찾아 캐나다 워홀 비자로 떠났다. 한때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다가 트립어드바이저가 캐나다 전국 5위 레스토랑으로 선정한 이태리 요리 전문점 ‘베로 비스트로’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된다.

  그러나 조리사에게 가장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캐나다 현지에서의 의료 시스템은 열악하여 무망하였고, 한국에 돌아와 치료하기에는 이제껏 일해 왔던 일터를 버려야 함과 동시에 꿈을 접어야 했던 것. 무엇보다도 친인척 운영 체제였던 레스토랑의 오너는 매일 A4 한 장 분량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온갖 편파적인 질책과 차별적 언사를 몇 년에 걸쳐 쏟아내고 있던 터였다. 이때 『맹자』의 글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골을 힘들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몸을 곤궁하게 하며, 어떤 일을 행함에 그가 하는 바를 뜻대로 되지 않게 어지럽힌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성질을 참을성 있게 하여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이다.”(告子章)를 떠올리며 마음을 추슬렀다고 한다.

  그 무렵 민들레꽃을 보았다고 한다. 캐나다 캘거리 교통안전 표시봉 상단에 그야말로 작은 구멍으로 민들레가 꽃대를 밀어 올려 꽃을 피운 것. 홀씨 하나가 작은 구멍에 빠졌을 때의 캄캄한 절망. 게다가 태생적으로 자랄 수 있는 제 몸의 키가 최대 30cm 남짓에 불과한데 그 배수에 가까운 표시봉의 높이 너머 꽃을 피우기까지 꽃대를 밀어 올린 생의 안간힘. 그러고 보니 꽃대가 여느 것에 비해 제법 굵더란다. 그 민들레꽃처럼 약할 대로 약해진 허리 근육을 잡아 줄 주변 근력을 키우기 위한 하드 트레이닝만이 살 길이었고, 한편으로 취업 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제반 자격 요건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스스로의 꿈을 접지 않는 길이었다.

  기적이란 주어진 처지를 원망하기에 앞서, 살아 내지 않으면 안 될 절체절명의 성스러운 분노에서 비롯되는 것, 세상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의 절망에 대한 분노라는 것. 인간으로서 현명하게 살 것을 설파한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나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더 큰 기적을 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기적은 내 안에 있다.

이성모(국어교육 동문, 마산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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